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광해군일기[중초본] 14권, 광해 1년 3월 19일 경자 3번째기사 1609년 명 만력(萬曆) 37년

홍문관 부제학 정협 등이 환경전을 더 건조하지 말기를 아뢰다

홍문관 부제학 정협(鄭協), 〈전한 김신국(金藎國), 부응교 이성(李惺), 교리 이빈(李馪)·김지남(金止男) 등이〉 상차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신들은 모두 변변치 못한 몸으로 논사(論思)의 자리에 있으면서 성상께서 즉위하신 지 1년이 넘도록 한 번도 성상을 가까이 모시고서 품고 있는 생각을 펴서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매우 두렵고 걱정되어 날마다 부르짖으며 인접(引接)해 주시기를 청하고자 하였으나, 일전에 일단 며칠 기다리라는 전교가 계셨으므로 물러나 삼가 성상의 분부만을 기다렸습니다.

다만 오늘날 국사는 날로 점점 어려워지고 천재(天災)·시변(時變)은 근고에 없던 바이며 북로(北虜)의 흔단과 백성의 곤궁이 이에 극심해졌습니다. 게다가 산릉을 수개(修改)하는 일도 아직 다 끝나지 않았고 조사를 영접할 날이 또 가까이 닥쳤으니, 군신 상하가 두려워하며 날마다 계책을 강구하더라도 오히려 소기의 성과를 이루지 못할까 두려운데, 하물며 이런 때에 다른 일을 생각하겠습니까. 궁궐을 영선(營繕)하는 것 또한 그 적당한 시기가 아닙니다만, 성상의 거처가 여염 사이에 끼어 있으므로 궁궐의 중건(重建)을 시작하신 것은 실로 선왕의 뜻을 계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모아놓은 재목을 가지고서 역사(役事)를 거의 완성하여 정전 법궁(正殿法宮)이 다행히 대략 완성되어 거처를 옮기실 날도 길일(吉日)을 잡아 놓았으니, 그 가운데 비록 미비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현재 거처하고 계신 좁고 누추한 곳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이제 이미 완성된 궁전으로 서둘러 거처를 옮기시고, 기타 전우(殿宇)는 형편에 따라 추후에 건조하는 것이 가합니다.

신들이 삼가 궁궐 도감에 내리신 전교를 보건대 자전(慈殿)께서 임시로 저승전(儲承殿)에 거처하고 계시는 것이 미안하기 때문에 도감이 양화당(養和堂) 사정합(思政閤)을 자전의 처소로 삼고, 또 환경전을 세워 어재실(御齋室)로 삼고자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로부터 임금은 정전에 거처하고 태후(太后)는 동전(東殿)에 거처하기 때문에 태후의 거처를 동조(東朝)라고 하였으니, 임시로 저승전에 몇 달을 거처하더라도 불가할 것이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성상의 마음은 실로 공경을 다하고 예를 다하는 지극하신 생각에서 나온 것이니, 신들은 진실로 받들어 따르는 데 겨를이 없어야겠으나, 환경전을 더 건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전과 혼전의 거리는 여휘전(麗輝殿)에 비교하면 비록 차이가 있으나 또한 그리 멀지 않으므로, 건축하는 사이에 소리가 혼전까지 들릴 것이니 그 고요함을 숭상하는 도리에도 이미 미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10월에 거처를 옮기기로 결정하신다면 부묘일(祔廟日)과 다만 3개월의 간격이 있을 뿐입니다. 일이 많은 이 때를 당하여 다시 작지 않은 역사를 일으켜 실낱 같은 국력을 다 들여 석 달 동안의 비용을 마련한다는 것은 사세로 헤아려 볼 때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도감은 공사를 주관하는 관원으로 그 폐단을 알면서도 감히 진술하지 못하고 대간은 간하는 일을 맡은 신하로 그 말을 듣고도 능히 아뢰지 못하고서, 이리저리 눈치만 살피면서 그 책임은 지지 않고 한편에서는 피난할 계책을 강구하고 한편에서는 토목 역사를 일으키니, 신 등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바라건대 성명께서 다시 재결하시어 〈속히 정지하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 보니 그대들의 지극한 뜻을 잘 알겠다. 마땅히 도감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하게 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405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사(宗社) / 건설-건축(建築)

○弘文館副提學鄭協(典翰金藎國、副應敎李惺、校理李馪·金止男)等上箚曰: "伏以臣等俱以無似, 待罪論思, 臨御經年, 一未得近天光, 敷奏所懷, 憂惶悶迫, 思欲日日籲呼, 以請引接, 而頃日有姑俟數日之敎, 玆以退伏, 恭聖敎矣。 第以今日國事, 日漸艱虞, 天災時變, 近古所無, 虜釁、民困於玆孔棘。 加以山陵之修改未畢, 詔使之迎接在邇, 君臣上下所當慄慄危懼, 日日籌畫, 猶恐其不濟, 況於此時, 念及他事乎? 至於營繕宮闕, 亦非其時, 而御所介在閭閻, 經始實繼先志, 故將已鳩之材, 擧垂成之役, 正殿法宮, 幸已粗完, 移御之期, 旣又卜吉, 其中雖有未備之處, 豈不愈於時御之 乎? 今宜就其已完, 汲汲移御, 其餘殿宇, 隨力追造可也。 臣等伏見下都監之敎, 以慈殿權御儲承殿爲未安, 故都監欲以養和堂 思政閤爲慈殿御所, 又建(懽慶殿)[歡慶殿] 爲御齋室云。 自古人君處正殿, 太后處東殿, 以此謂之東朝, 權御數朔, 似無不可。 而然聖心所在, 實出於致敬、盡禮之至意, 則臣等固當承順之不暇, 至於加建(懽)[歡慶] , 竊以爲不可也。 (懽慶)[歡慶] 之去魂殿, 比諸麗輝殿, 則雖似有間, 而亦不至甚遠, 營構之際, 聲亦徹聞, 其於尙靜之道, 旣云未安。 而若於十月決定移御, 則祔廟之日, 只隔三朔。 當此多事之時, 更興不貲之役, 竭盡一線之力, 以辦三朔之用, 揆以事勢, 未知何如。 都監爲董工之官, 知其弊而莫敢陳, 臺諫爲任事之臣, 聞其言而莫能白, 左顧右眄, 無任其責, 一邊講避亂之策, 一邊興土木之役。 臣等竊愍焉。 伏願聖明更加睿裁。 (速令停止。)" 答: "省箚, 具見至意。 當令都監議處。"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31책 405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사(宗社) / 건설-건축(建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