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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 38권, 선조 37년 7월 1일 경술 1번째기사 1604년 명 만력(萬曆) 32년

영토를 회복한 공으로 양 경리를 선무사에 배향하다

양 경리(楊經理)016)선무사(宣武祠)에 배향하였다.

상이 비변사에 하교하기를,

"지난 정유년 남원(南原)이 함락되고 적병이 기세를 몰아 올 때 백성들은 도망쳐 숨고 도성은 놀라 무너졌는데, 양 경리평양(平壤)에서 이틀길을 하루에 달려와서 곧바로 서울로 들어와 여러 장수들을 지휘하여 길을 나누어 적을 쳐서 적이 드디어 패주하였으니, 강토를 회복한 것은 이것이 기틀이 된 것이다. 또 얼음 같은 청렴한 지조는 풀잎 하나 취하지 않았고 호령(號令)이 엄명하여 사람들이 감히 범할 수가 없었는데 불행히 공을 성취하기도 전에 간신에게 모함을 당하였다. 예전에 사당을 세울 때는 반드시 배향(配享)이 있는 것인데 나는 양 경리선무사에 배향하고 싶다. 널리 공론을 모아 아뢰라."

하니, 대신 이하가 모두 옳다고 하였다. 드디어 배향할 것을 명하였고 동지사(冬至使)로 하여금 그의 화상(畫像)을 구해 오도록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38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94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외교-명(明)

  • [註 016]
    양 경리(楊經理) : 양호(楊鎬).

○朔庚戌/配享楊經理宣武祠。 上, 下敎于備邊司曰: "昔在丁酉, 南原旣破, 賊兵長驅, 人民奔竄, 都下驚潰。 楊經理平壤兼程疾馳, 直入京城, 指揮諸將, 分道擊賊, 賊遂敗逃, 恢復疆土, 此其基也。 且氷蘗淸操, 一芥不取, 號令嚴明, 人莫敢犯, 不幸功未就, 而爲奸臣所構陷。 古者立祠, 必有配享, 予欲以楊經理配于宣武祠, 可博采公論以啓。" 大臣以下皆以爲可, 遂命配享, 而令冬至使, 求得其畫像而來。


  • 【태백산사고본】 8책 38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94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