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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 36권, 선조 35년 윤2월 24일 정사 2번째기사 1602년 명 만력(萬曆) 30년

전 참찬 성혼의 관작을 삭탈하다

전 참찬 성혼의 관작을 추삭(追削)하였다.

처음 대사헌 홍이상, 장령 윤의립, 대사간 정광적, 전한 강첨(姜籤) 등이 기축 연간에 최영경을 다시 국문하도록 청한 대관들의 관작을 삭탈하기를 청하였는데, 4, 5일이 지난 뒤에 상이 답하기를,

"시공(緦功)은 자세히 살필 필요가 없다.008) "

하였다. 양사가 인피하였다. 인피한 내용의 대략에,

"제일 먼저 일을 시작한 자의 죄를 논한다면 그때의 모의는 모두 정철에게서 나온 것이고, 성혼정철과 가장 친밀하니 정철의 논의를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성혼이 힘써 구제하였다면 그가 억울하게 죽는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수수방관하고 끝내 말을 하지 않았으니, 《춘추(春秋)》의 주의법(誅意法)009) 으로 판정하면 구제하지 않은 죄를 성혼은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성교(聖敎)를 받드니 신들은 완만히 한 잘못을 모면할 길이 없습니다."

하니, 상이 또 답하기를,

"경들이 10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간당(奸黨)들을 논박했으니, 한 줄기 공론(公論)이 마치 치양(稚陽)이 처음 움직이는 것010) 과 같아 끊어졌던 맥이 다시 이어진 것이다. 상소문이 세 번 올라가도록 내가 흑백(黑白)을 분명히 말하지 않은 것은 위로할 만한 점이 있으나 역시 애처로운 점이 있어서이다. 천하의 일에는 근본이 있고 말단이 있는 것인데, 근본은 버려두고 말단만을 다스린다면 수고롭기만 할 뿐 더욱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 정철이 역옥(逆獄)이 처음 일어났을 때 자신의 당여를 시켜 영경을 논박하여 기필코 죽이고야 말았지만, 정철이 그처럼 방자하게 행동하여 꺼림이 없었던 것은 성혼이 그 일을 주도하였기 때문이다. 은 바로 의 분신이다. 그때의 대관들은 그의 뜻에 따라 아첨함에 찌들은 무리들이니 따질 가치가 있겠는가. 이제 악을 성토하는 법을 시행하여 만세의 시비를 결정하려 하는데 그 괴수를 버려두고 지엽(枝葉)만을 논한다면, 이는 이른바 그물질에 있어서 배를 삼키는 큰 고기는 놓치는 것이요, 시공(緦功)만 세밀히 살핀다는 격인 것이니 공론이 언제 시행되겠는가. 논박받는 자도 반드시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양사가 다시 이 때문에 인피하였는데 옥당에서 모두 출사하기를 청하였다. 사흘 뒤에 광적 등이 차자를 올렸는데 그 대략에,

"정철이 시기를 이용하여 영경에게 유감을 풀려고 날조하여 죄에 얽어 넣었으나 그 실정을 궁구해 보면 성혼이 실로 주도한 것입니다. 시비(是非)를 살펴 포폄(褒貶)을 결정한다면 성혼이 수죄(首罪)에 해당됩니다."

하니, 상이 답하기를,

"이 한때 소인배들의 주인이 되어 온 세상이 모두 그에게 속임을 당했으니 그 실정을 몰랐다면 그만이겠으나 이제 이미 그것을 알았으니, 언책(言責)을 맡은 사람이 곧바로 지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간원이 이에 정철을 논박하여 관작의 추삭(追削)을 청하였다. 【대사헌 홍이상(洪履祥)과 부제학 이정형(李廷馨)은 정사(呈辭)하고 참여하지 않았다.】 이틀 뒤 상이 하교하기를,

"영경을 다시 국문하기를 청했을 때의 대관을 상고하여 아뢰라."

하니, 정원이 아뢰기를,

"이조(吏曹)에 물으니 대사간 이해수(李海壽), 사간 이정립(李廷立), 헌납 이흡(李洽), 정언 구성(具宬)·이상길(李尙吉), 대사헌 윤두수(尹斗壽), 집의 송상현(宋象賢), 장령 장운익(張雲翼)·성식(成軾), 지평 민선(閔善)·이유징(李幼澄)으로, 당시 간원은 다시 국문할 것을 청했고 헌부는 멀리 유배할 것을 청했는데, 해수는 논의를 낸 사흘 뒤에 출사하였고 두수는 논의를 낸 지 엿새 뒤에 출사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답하기를,

"두수해수가 장관이었던 것은 나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해수정철의 심복으로 인품이 가장 간사하고 악독한데, 영경을 죽이자는 의논은 바로 이 사람이 한 짓이다."

하니, 헌부가 드디어 해수를 논박하였다. 얼마 안 가서 간원이 아뢰기를,

"이 산림(山林)에 자취를 의탁하여 한 시대를 철저히 속이면서 날로 경박한 무리들과 조정의 시비를 논하였는데 이 때문에 영경이 그와 절교한 것입니다. 역옥(逆獄)이 처음 일어났을 때 팔뚝을 걷어붙이고 일어나 정철과 함께 시세를 타고 합동 모의하여 드디어 영경으로 하여금 옥중에서 죽게 만들었으니, 영경을 직접 죽이지는 않았으나 영경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따라서 간인의 당이 된 죄는 이미 모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서울을 버리고 파천할 때 대가(大駕)가 그의 집 문앞을 지나는데도 끝내 마중하지 않았으니, 이미 죽었다고 해서 너그럽게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헌부 역시 잇따라 논하기를,

"이 간인을 편들어 임금을 버렸는데도 천토(天討)를 가하지 않고 당시의 대신이 도리어 ‘선인(善人)은 천지의 기강이다.’ 하여 벼슬을 올려주기를 청하였으니, 임금을 무시하고 당여를 두호한 죄가 더욱 통한스럽습니다." 【대신은 윤두수를 지적한 것이다.】

하고, 옥당도 차자를 올리기를,

"은 한몸으로 이 머리인데 뱀을 잡는 사람은 먼저 그 머리를 치는 것이 옳습니다. 이제 을 논박하면서 을 앞세우지 않는다면 이는 머리를 버려두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따르고 정철도 관작을 삭탈하였다.

살피건대, 은 일찍이 가정의 교훈을 잘 받들어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산림에서 수양하면서 실천과 행동이 독실하여 사림(士林)들이 높이 우러러 일대의 유종(儒宗)이 되었다. 따라서 이이(李珥)·정철과 교분이 매두 두터웠는데, 지난 신사년에 정인홍과 틈이 생기자 그 무리들이 질시하여 오랫동안 그림자를 쏠 계책011) 을 품고 있었다. 신묘 연간에 정철이 당로자(當路者)들의 모함을 받았고 많은 사류(士類)들이 쫓겨났는데, 한때의 떠도는 말로 중외(中外)를 선동하였으므로, 선조(宣祖)의 명철(明哲)함으로써도 시호(市虎)의 참소012) 에 대한 의심이 없을 수 없게 되었다. 파천하던 때 이홍로(李弘老)가 틈을 이용하여 죄를 얽어 모함하니, 상이 더욱 마음에 불평을 품어 온 지가 여러 해였다. 이때에 이르러 인홍이 국정을 맡게 되자 기자헌·윤의립의 무리가 그의 뜻에 영합하여 부화 뇌동함으로써 끝내 간인의 당여가 되어 선비를 살해했다는 죄를 이미 썩은 뼈에까지 마구 가했다. 정철영경을 죽였다는 것도 억지로 만든 말인데, 연좌율(連坐律)이 유현(儒賢)에까지 만연되었으니, 통탄함을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윤두수에 이르러서는 영경을 유배보내자는 의논을 할 때에는 엿새 뒤에야 비로소 출사했으니, 그 논의를 주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신(史臣)이, 영경을 죽였는데도, 당로자가 구원하여 모면하였다 하였으니, 이때 당로자는 인홍자헌이었다. 이들이 어찌 그를 구제하여 풀어줄 마음이 있었겠는가. 국가가 위급한 때를 만나 어진 선비를 추천하여 함께 시대의 어려움을 구제한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기에 헌부가 그 차자의 말을 초출하여 논박하였는가. 그 계책은 장차 차례로 죄를 얽어 날조하려는 것이니, 아, 또한 참혹하다.


  • 【태백산사고본】 8책 36권 5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685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

  • [註 008]
    시공(緦功)은 자세히 살필 필요가 없다. : 사소한 것은 따질 것이 없다는 뜻.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3년상은 잘하지 못하면서 시마(緦麻)나 소공(小功)은 따진다."고 하였는데, 중요한 것은 거론하지 않고 사소한 것만 따진다는 뜻으로 쓰였음.
  • [註 009]
    《춘추(春秋)》의 주의법(誅意法) : 사람의 마음속에 품은 뜻과 가치관이 잘못되었을 때 그것이 드러나지 않았다 해도 책망하는 필법. 공자가 《춘추》를 지을 때 이 기준을 썼다고 한다.
  • [註 010]
    치양(稚陽)이 처음 움직이는 것 : 악에 눌리던 선(善)이 처음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비유한 말. 복괘(復卦)에 "일양(一陽)이 처음 움직임에서 하늘의 마음을 알 수 있다." 하였는데, 이는 음기가 극성하다가 처음으로 양기가 자라기 시작하는 동지(冬至)를 상징한 것으로, 악에 눌리던 선의 세력이 다시 회복되는 첫 움직임을 뜻한다.
  • [註 011]
    그림자를 쏠 계책 : 불의에 공격하여 죽이는 것. 물여우가 모래를 품어 사람의 그림자에 쏘면 그 사람이 죽는다고 한다.
  • [註 012]
    시호(市虎)의 참소 : 의심스러운 일도 반복하여 말하면 정말인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세 사람이 반복하여 전하면 진실인 듯이 믿게 된다는 뜻.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

○追削故參贊成渾官爵。 初, 大司憲洪履祥、掌令尹義立、大司諫鄭光績、典翰姜籤等, 啓請削己丑間, 請再鞫崔永慶時臺諫官爵, 過四五日, 上答曰: "緦功不須是察。" 兩司引避, 略曰: "若論首事之罪, 則其時謀議, 一出於鄭澈, 至如成渾, 最親密, 之論議, 無不知之理。 若力救, 則其不至於枉死明矣, 而袖手傍觀, 終始不言, 斷以《春秋》誅意之法, 則不救之罪, 不可辭。 今承聖敎, 臣等難免疲軟之失。" 上又答曰: "卿等始論奸黨於十年之後, 一線公論, 如稚陽初動, 絶脈纔屬。 疏三上, 而予不言皀白者, 以其雖可慰, 而亦可哀也。 夫天下之事, 有本有末, 捨其本而治其末, 則徒勤而愈不治矣。 於逆獄之初, 使其黨論永慶, 必殺而後已, 然之所以恣行無忌者, 以爲之主也, 之分身也。 其時臺官不過承望風旨, 依阿淟涊之徒, 何足數也? 今擧討惡之典, 欲定萬世之是非, 而捨其魁, 論其枝葉, 此所謂網漏呑舟, 緦功是察, 公論何時而得行? 被論者亦必不服矣。" 兩司復以此引避, 玉堂竝請出仕。 越三日, 光績等上箚, 略云:

永慶, 乘時逞憾, 羅織搆捏, 而原其情, 則實主之。 若按是非, 定褒貶, 爲首罪。

上答曰: "爲一時群小窟穴之主, 擧世蒙其欺誣, 若未知其情狀則已, 旣或知之, 則爲言責者, 可不直斥乎?" 諫院仍論鄭澈, 請追削官爵。 【大司憲洪履祥、副提學李廷馨呈辭不參。】 過二日, 上, 下敎曰: "請再鞫永慶時臺諫考啓。" 政院啓曰: "問于吏曹, 則大司諫李海壽、司諫李廷立、獻納李洽、正言具宬李尙吉、大司憲尹斗壽、執義宋象賢、掌令張雲翼成軾、持平閔善李幼澄, 諫院則請再鞫, 憲府則請遠竄, 而海壽則發論後三日出仕, 斗壽則發論後六日出仕矣。" 上答曰: "斗壽海壽之爲長官, 予亦分明記得。 海壽之腹心, 其人最爲邪毒, 殺永慶之論, 定是此人所爲。" 憲府遂論海壽。 未幾, 諫院啓曰: "托跡山林, 厚誣一世, 日與浮薄之徒, 論議朝政是非, 永慶之所以絶交者也。 逆獄之初, 攘臂而起, 與乘時合謀, 竟使永慶, 瘦死獄中, 雖不殺永慶, 而永慶而死。 黨奸之罪, 已難得免, 而逮去之日, 大駕過其門閭, 而終不迎候, 不可以已死, 而有所饒貸。" 憲府亦繼而論之, 有曰: "黨奸遺君, 而天討不加。 其時大臣反謂以善人天地之紀, 啓請陞秩, 其無君護黨之罪, 尤極痛惋。" 【大臣, 指尹斗壽也。】 玉堂亦上箚曰: "合爲一身, 而其頭也。 擊蛇者, 先擊其頭可矣。 今論而不先, 是捨其頭也。" 上從之, 亦削奪官爵。 按, 早承家庭之訓, 硏究性理之學, 藏修林下, 踐履篤實, 士林景仰, 爲一代儒宗, 而與李珥鄭澈交誼甚厚。 往在辛巳, 又與仁弘有隙, 其黨媢嫉, 久含射影之計。 辛卯間, 爲當路所陷, 士類多被竄逐, 一時飛語, 煽動內外, 雖以宣廟之明聖, 不能無疑於市虎之讒。 及至去之日, 李弘老乘隙構誣, 上尤不平於心, 蓋有年矣。 至是, 仁弘當國, 自獻義立輩迎合風旨, 傅會傾軋, 終以黨奸、殺士之罪, 橫加於旣朽之骨。 之殺永慶, 已是艱難做說, 而連坐之律, 蔓及於儒賢, 可勝痛哉? 至於尹斗壽則論竄永慶時, 至六日, 始爲出仕, 其不主論可知, 而史臣謂: "殺永慶而爲當路所救得免。" 云, 其時當路, 卽仁弘自獻, 寧有救解之心哉? 當國家危急之秋, 推轂賢士, 共濟時艱, 有何所失, 而憲府摘其箚語而論之, 其計將欲次第搆捏, 吁亦慘矣。


  • 【태백산사고본】 8책 36권 5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685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