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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 31권, 선조 30년 8월 1일 기미 1번째기사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적이 안음의 황석 산성을 함락시키니 곽준과 조종도가 전사하다

적이 안음(安陰)황석 산성(黃石山城)을 함락시켰다. 현감 곽준(郭逡)과 전 함양 군수(咸陽郡守) 조종도(趙宗道)가 전사하였다.

처음에 가등청정서생포에서 서쪽으로 전라도로 들어와 행장과 함께 남원을 공격하려고 했는데, 원수 이하가 모두 소문을 듣고 도망하였다. 안음 현감 곽준은 관직에 있은 지 겨우 2년이었는데 이민(吏民)의 마음을 얻고 있었다. 체찰사 이원익황석 산성이 호남과 영남의 요충지이므로 적이 반드시 빼앗고자 할 것이라 여겨서 세 고을의 군사를 예속시키어 곽준에게 지키도록 명하고, 김해 부사 백사림(白士霖)으로 하여금 돕도록 하였다.

수많은 적이 남문으로 쳐들어오자, 곽준은 밤낮으로 독전(督戰)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나, 사림은 사세가 위급함을 알고는 그의 처자를 줄에 매달아 내려보내고 도망하였다. 곽준의 아들과 사위 및 이민(吏民)들이 모두 울면서 빨리 계책세울 것을 청하자, 은 웃으며 ‘이곳이 내가 죽을 곳인데, 무슨 계책을 다시 세운단 말인가.’ 하고는 태연한 기색으로 호상(胡床)에 걸터앉아서 끝내 해를 당하였다. 그의 두 아들 곽이상(郭履常)곽이후(郭履厚)가 시체를 부둥켜 안고 적을 꾸짖으니, 적이 함께 죽였다. 의 딸은 유문호(柳文虎)에게 시집을 갔는데, 문호가 적에게 사로잡히자 이미 성을 빠져 나왔다가 그 말을 듣고는 여종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나 같이 죽지 않은 것은 남편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제 남편도 사로잡혔으니 내가 어찌 차마 홀로 살아 있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목매어 죽고 말았다.

조종도(趙宗道)는 전에 함양 군수(咸陽郡守)를 지내고 집에 있었는데, 일찍이 ‘나는 녹을 먹은 사람이니, 도망하는 무리와 초야에서 함께 죽을 수는 없다. 죽을 때는 분명하게 죽어야 한다.’ 하고는 처자를 거느리고 성으로 들어가,

공동산 밖의 생활도 즐거웠지만 장순·허원처럼 성을 지키다 죽는 것도 영광일세003)

라는 시를 지었는데, 마침내 곽준과 함께 전사한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7책 3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62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인물(人物)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03]
    장순·허원처럼 성을 지키다 죽는 것도 영광일세 : 은자(隱者)의 생활도 좋지만 나라를 위하여 성을 지키다 죽는 것도 영광스럽다는 뜻. 공동산(崆峒山)은 중국 황제(黃帝) 때의 은자 광성자(廣成子)가 있던 곳으로, 은자의 대명사로 쓰인다. 《장자(莊子)》 재유(在宥). 장순(張巡)과 허원(許遠)은 안녹산(安祿山)의 난 때에 회양(淮陽)에서 고립되어 사력을 다해 성을 지켜 싸우다가 죽은 당(唐)의 충신이다. 《당서(唐書)》 권192.

○朔己未/賊陷安陰 黃石山城。 縣監郭䞭、前咸陽郡守趙宗道死之。 初, 淸正西生浦西入全羅道, 將與行長會攻南原, 元帥以下皆望風引去。 安陰縣監郭䞭居官僅二載, 得吏民心。 體察使李元翼黃石爲湖嶺咽喉, 賊所以爭, 隷三邑兵, 命守之, 令金海府使白士霖助之。 賊大至于門南, 督戰晝夜不懈, 士霖知事急, 縋下其妻子而遁。 子壻吏民皆號泣, 請早爲計, 笑曰: "此吾死所, 何計之更爲?" 踞胡床, 神色不變, 竟遇害。 二子履常履厚抱持罵賊, 賊幷殺之。 女嫁柳文虎, 文虎爲賊所擄, 郭氏已出城聞之, 謂其婢曰: "父死而不死, 爲有夫在耳。 今夫又被執, 吾何忍獨生?" 遂自經死。 趙宗道以前咸陽郡守家居, 嘗曰: "吾是食祿之人, 不可與奔竄之徒同死草間。 死當明白死耳。" 率妻子入城, 作詩曰: "崆峒山外生猶喜, 巡遠城中死亦榮。" 遂與同死。


  • 【태백산사고본】 7책 3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62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인물(人物)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