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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 30권, 선조 29년 8월 1일 병신 1번째기사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김덕령이 옥에서 고문 받다가 죽으니 남도의 군민들이 원통하게 여기다

김덕령이 옥에서 고문 받다가 죽었다.

덕령이 전령(傳令)을 듣고 즉시 부하를 거느리고 길에 올랐는데 적이 이미 평정되었다는 말을 듣고 도로 진(鎭)으로 돌아갔다. 이때에 이르러 덕령을 나국(拿鞫)하려 하였는데, 조정이 그의 용력이 절륜(絶倫)하다는 말을 평소에 들었으므로 혹 그가 체포에 응하지 않을까 근심하여 여러 가지로 방략(方略)을 만들어서 그의 도망을 미리 방지하였다.

덕령이 순순히 체포되어 하옥되었는데 상이 직접 국문하였다. 이에 덕령은 사실대로 답변했으나 증거는 없었다. 그는 갑자기 유명해진 까닭에 이시언(李時言) 등의 시기를 받았으며 조정 또한 그의 날쌔고 사나움을 제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고 의심하였으므로 기회를 타서 그를 제거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놓아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였다. 상의 뜻도 역시 그러하였는데 대질하여 심문하고는 오히려 그를 아깝게 여겨 좌우에게 묻기를,

"이 사람을 살려줄 도리가 없는가?"

하니, 대신 유성룡 등이 아뢰기를,

"이 사람이 살 도리는 없습니다. 다만 아직 그대로 가두어 두고 그의 일당들을 국문한 뒤에 처리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하였고, 판의금 최황(崔滉) 등은 즉시 형신(刑訊)할 것을 청하였다. 상은 재삼 난색을 지었으나 아무도 구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

"그는 살인을 많이 했으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하며 조금도 애석할 것이 없습니다."

하기도 하였다. 정언 김택룡(金澤龍)은 아뢰기를,

"국가가 차츰 편안해지는데 장수 하나쯤 무슨 대수입니까. 즉시 처형하여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하여 사람들의 웃음을 샀다.

상이 도원수를 시켜 덕령이 출병할 적에 태도가 어떠했는지 물었으며, 또 그의 부하인 최담령(崔聃齡)최강(崔堈) 등에게도 물었는데 모두 단서가 없었다.

덕령은 여러 날 동안 갇혀 있었고 상은 혹시 변이 일어날까 의심하여 옥문을 굳게 잠글 것을 명하였고 의금부는 건장한 군사 1백여 명을 동원해서 굵은 밧줄로 묶어둔 다음 밤낮으로 에워싸고 지키기를 마치 많은 적군을 방어하듯 하였다.

수백 번의 형장 신문에 드디어 정강이 뼈가 모두 부러졌는데도 조용하게 스스로 변론하며 말씨가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신은 만 번 죽어 마땅한 죄가 있습니다. 계사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에 삼년상의 슬픔을 잊고 하늘에 사무친 원수에 격분하여 모자간의 정을 끊은 채 상복을 바꿔 입은 다음 칼을 짚고 분연히 일어나 여러 해 동안 종군하였지만 아직 조그만 공도 세우지 못해서 충성도 펴보지 못하고 도리어 불효만 하였습니다. 죄가 이에 이르렀으니 만 번 죽어도 죄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신은 지금 목숨이 다하게 되었으니 다시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신이 모집한 용사 최담령(崔聃齡) 등이 죄 없이 옥에 갇혀 있으니 원컨대 죽이지 말고 쓰도록 하소서."

라고 했을 뿐 시종 다른 말이 없이 죽었다.

덕령이 군사를 일으킨 3년 동안은 마침 화의(和議)를 한창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왜병과 교전할 수 없었지만 왜인들은 그를 두려워하여 감히 그의 진영에 가까이하지 못했다. 언젠가 왜인의 진영에서 호랑이 두 마리를 손으로 때려잡아 왜인에게 주니 왜인들이 탄복하였었다. 그의 죽음을 들은 왜인들은 기쁜 얼굴로 서로 치하하였다.

남도(南道)의 군민(軍民)들은 항상 그에게 기대고 그를 소중하게 여겼는데 억울하게 죽게 되자 소문을 들은 자 모두 원통하게 여기고 가슴 아파하였다. 그때부터 남쪽 사민(士民)들은 덕령의 일을 경계하여 용력(勇力)이 있는 자는 모두 숨어버리고 다시는 의병을 일으키지 않았다.

최담령(崔聃齡)·최강(崔堈)을 사면하여 덕령이 모집한 군사를 거느리고 양남(兩南)의 방어사에게 나누어 배속시켰다. 최담령덕령과 함께 용력의 명성을 나란히 하였는데 이 뒤로부터는 어리석은 겁보인 체하여 스스로 폐인 노릇을 하였다.

덕령의 매부 이인경(李寅卿)도 담략과 용기가 있고 술수(術數)를 알았는데 무과를 거쳐 왜적 토벌에 공을 세웠지만 덕령이 화를 입게 되자 이를 경계하여 벼슬이 변방 군수에 이르렀을 때 즉시 병을 칭탁하여 사임하고는 생을 마칠 때까지 감히 큰 장령(將領)이 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은둔한 채 쓰여지지 않음으로써 수명대로 살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 【태백산사고본】 7책 30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659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군사-특수군(特殊軍) / 군사-전쟁(戰爭) / 변란-정변(政變)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

○朔丙申/金德齡詣獄栲死。 德齡聞傳令, 卽領所部就途, 聞賊平還鎭。 至是, 將拿鞫, 朝廷素聞勇力絶倫, 憂其不就捕, 多設方略, 以防脫逃。 德齡就捕下獄, 上親鞫問之。 德齡置對, 辭証無可據, 而初以驟起有名, 李時言等忌之。 朝廷又疑其勇悍難制, 欲乘時除之, 多言其不可捨, 上意亦然之。 旣對辨, 上猶惜之, 問于左右曰: "此人有生理乎?" 大臣柳成龍等曰: "此人必無生理。 但姑仍囚, 待其同黨鞫問後處之如何?" 判義禁崔滉等請卽刑訊, 上再三持難, 皆不敢捄, 且言: "渠多殺人, 此罪亦當死, 不足惜也。" 正言金澤龍啓曰: "國家稍安, 一將何關? 須卽刑誅, 以除後患。" 人皆笑之。 上命問于都元帥, 德齡赴難時形止如何, 竝問其麾下人崔聃齡崔堈等竝無端緖。 德齡在囚累日, 上疑其有變, 命嚴其牢鎖, 禁府發壯軍百餘, 用大索綁纏, 晝夜圍守, 如防大敵。 竟致刑訊累百, 栲脛骨盡折, 從容自理, 辭氣不撓。 但曰: "臣有萬死之罪。 癸巳歲, 慈母終堂, 乃忘三年之哀, 憤一天之讐, 割情變服, 仗劍倔起, 累歲從軍, 未建寸功。 不伸於忠, 反詘於孝, 罪至於斯, 萬死難逃。 臣今命盡, 無復可言。 但臣所募勇士崔聃齡等, 無辜在理, 願勿殺而用之。" 終始無異辭而死。 德齡起兵三年, 値和議方張, 不得與交鋒, 而倭人畏之, 不敢近其陣。 嘗於倭人陣處, 手搏兩虎, 賫與倭人, 倭人歎服。 至是聞其死, 喜色相賀。 南道軍民, 常倚以爲重, 死非其辜, 聞者莫不冤傷之。 自是, 南方士民以德齡爲戒, 凡有勇力者皆晦匿, 不復稱義兵起矣。 赦崔聃齡崔崗, 領德齡募軍, 分屬兩南防禦使。 聃齡德齡勇力齊名, 自是, 佯愚怯自廢。 德齡妹夫李寅卿亦有膽勇, 知術數, 從武擧, 討有功, 每懲德齡之禍, 官至邊郡守, 卽稱病去, 終身不敢爲大將領。 人知其有隱而不用, 以壽終。


  • 【태백산사고본】 7책 30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659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군사-특수군(特殊軍) / 군사-전쟁(戰爭) / 변란-정변(政變)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