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유생 김덕령이 의병을 일으키다
광주(光州) 유생 김덕령(金德齡)이 의병을 일으켰다.
김덕령은 신력(神力)의 소유자로서 비호처럼 용건(勇健)하고 자못 기절(氣節)이 있었으며 집에서 유업(儒業)을 익혀 겸회(謙晦)한 태도로 남에게 자신을 낮추었으므로 그의 역량을 아는 자가 없었다. 전란이 있은 뒤로 그는 거상(居喪)을 하며 집에 있었다. 이때 관군(官軍)과 의병(義兵)이 무려 수백 둔(屯)이나 되었지만 적을 보고는 곧 궤산(潰散)하였다. 그의 자부(姉夫)인 김응회(金應會)는 강개(慷慨)한 선비였다. 그가 누차 김덕령에게 군사를 일으켜 적을 치도록 권하였으나 김덕령은 회의를 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때 마침 담양 부사(潭陽府使) 이경린(李景麟)과 장성 현감(長城縣監) 이귀(李貴)가 상소하여 대장의 임무를 맡길 만하다고 김덕령을 추천하였고 당시 무군사(撫軍司)가 남하하여 또 세자의 영지(令旨)를 가지고 효유하였다.
이에 김덕령이 친구인 장사(壯士) 최담령(崔聃齡) 등 수십 명과 함께 기병하였는데, 전택(田宅)을 팔아 무기를 마련하고 격문(檄文)을 띄워 군사를 모집하니, 응모자가 운집하였으므로 정장(精壯) 5천여 명을 확보하였다. 김덕령이 손수 지획(指畫)하여 행진(行陣)을 가르치니, 군사들이 모두 자신을 단속하여 규율에 맞게 되었다. 감사(監司) 이정암(李廷馣)이 계문(啓聞)하니, 상이 선전관(宣傳官)을 명하고, 충용장(忠勇將)이란 이름을 내리게 하는 동시에 교서(敎書)를 내려 포장(褒奬)하였으며, 관원을 보내 그의 군사를 살펴본 뒤 영남에 보내게 하였다. 김덕령의 군사의 명성이 이미 떨쳤으므로 적이 이 소식을 듣고는 작은 둔진(屯陣)을 거두어 큰 둔진으로 만들어 항거하였다. 그런데 마침 조정에서는 강화(講和)하는 일 때문에 그의 진병(進兵)을 중지시켰으므로 김덕령은 산음(山陰)과 거창(居昌) 사이에 주둔하게 되었다.
- 【태백산사고본】 7책 27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644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군사-특수군(特殊軍) / 군사-병참(兵站) / 외교-왜(倭) /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光州儒生金德齡起義兵。 德齡有神力, 勇健如飛, 頗有氣節, 而家習儒業, 謙晦下人, 故人無知者。 亂後, 守喪居家。 時, 官義兵無慮數百屯, 見賊輒潰。 姊夫金應會慷慨士也。 屢勸使起兵討賊, 德齡疑未決。 適潭陽府使李景麟、長城縣監李貴上疏薦德齡, 可任大將, 時撫軍司南下, 又諭以世子令旨。 德齡乃與所善壯士崔聃齡等數十人俱起, 賣田宅爲器仗, 傳檄募兵, 應者坌集, 得精壯五千餘人。 德齡手自指畫, 敎以行陣, 軍皆團束就律。 監司李廷馣啓聞, 命宣傳官賜號忠勇將, 下敎褒奬, 遣官視其軍, 送赴嶺南。 德齡軍聲先振, 賊中聞之, 撤小屯爲大陣以拒之。 會, 朝廷以講和, 止其進兵, 屯山陰、居昌間。
- 【태백산사고본】 7책 27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644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군사-특수군(特殊軍) / 군사-병참(兵站) / 외교-왜(倭) /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