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독 이여송이 적을 추격하여 문경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서는 해변에 주둔하다
제독 이여송이 적을 추격하여 문경(聞慶)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경략(經略)이, 왜적이 경성을 버리고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비로소 패(牌)를 내어 제독을 재촉해 추격케 하였으나 적이 떠난 지 이미 수십 일이 지난 뒤였다. 제독은 길에서 천천히 행군하는가 하면 혹은 머물러 날짜를 지연시키기도 하면서 겨우 새재를 넘어갔다가 되돌아왔다. 연도에 있는 우리 군사도 모두 좌우에서 자취를 감추고 감히 출격하는 자가 없었다.
적이 물러가고 나서는 군사를 나누어 해변에 주둔하였다. 울산(蔚山)·서생포(西生浦)에서부터 동래(東萊)·김해(金海)·웅천(熊川)·거제(巨濟)에 이르기까지 수미가 서로 연하였는데, 16둔진(屯陣)이 모두 산과 바다를 의거하여 성을 쌓고 참호(塹濠)를 파서 오래 머물 계획을 하였다.
명나라 조정에서 사천 총병(四川總兵) 유정(劉綎)을 연달아 파견했는데 복건(福建)·서촉(西蜀)·남만(南蠻) 등처의 소모병(召募兵) 5천 명을 거느리고 성주(星州)에 둔을 쳤으며, 절강(浙江)의 장수 오유충(吳惟忠)은 선산(善山) 봉계(鳳溪)에, 이영(李寧)·조승훈(祖承訓)·갈봉하(葛逢夏)는 거창(居昌)에, 낙상지(駱尙志)·왕필적(王必迪)은 경주(慶州)에 둔을 쳤다. 이들은 사면을 빙 둘러서 서로 대치한 채 진군하지 않았는데, 군량을 양호(兩湖)에서 거두어 험한 재를 넘어서 여러 둔지에 흩어주었으므로 민력이 더욱 곤핍해졌다.
- 【태백산사고본】 7책 27권 9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39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朔甲寅/提督李如松追賊, 至聞慶而回。 經略聞倭棄京城, 始出牌, 促提督追擊, 賊去已數十日矣。 提督在道徐行, 或留止延日, 才踰嶺而還。 我軍之在沿途者, 皆左右屛迹, 無敢出擊者。 賊旣退, 分屯於海邊, 自蔚山 西生浦, 至東萊、金海、熊川、巨濟, 首尾相連, 十六屯皆依山憑海, 築城掘壕, 爲久留計。 皇朝繼遣四川總兵劉綎, 率福建、西蜀、南蠻等處召募兵五千, 來屯星州。 浙將吳惟忠屯善山、鳳溪, 李寧、祖承訓、葛逢夏屯居昌, 駱尙志、王必迪屯慶州, 環四面, 相持不進, 糧餉取之兩湖, 踰越險阻, 散給諸陣, 民力益困。
- 【태백산사고본】 7책 27권 9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39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