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에서 유황상과 원황이 군무를 찬획할 일로 나오다
명나라의 병부 원외랑(兵部員外郞) 유황상(劉黃裳)과 병부 주사(兵部主事) 원황(袁黃)이 군무(軍務)를 찬획(賛畫)할 일로 나왔다.
유황상은 터무니없이 과장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의주(義州)에 있을 때 평양이 수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군중(軍中)으로 달려가 글을 올리기를 ‘신이 실로 함께 갔었다.’고 하였고, 또 경략(經略)을 무고(誣告)하기를 ‘부산에서 철수하지 않은 적은 바로 원래 살고 있던 왜인이다.’ 하였는데, 호부(戶部)와 병부의 과도관(科道官)이 사검(査檢)하고서야 그만두었다. 또 부산 관명(釜山館銘)을 자찬(自撰)하여 ‘천병(天兵)이 왜적을 소탕하여 해상(海上)에 이르렀다.’고 하였으니, 그의 말은 너무나도 터무니가 없었다.
원황은 불교(佛敎)를 좋아하여 몸가짐을 승려와 같이 하였으므로 접대하기가 편하였다. 그가 지은 글을 우리 나라에 전하였는데, 모두가 주자(朱子)를 배척한 내용이었다. 얼마 안 가서 언관(言官)이 그가 좌도(左道)007) 라는 것으로 탄핵하였으므로 파직되어 돌아갔다. 【들으니 그 뒤에 머리를 깎고 입산하였다 한다.】
- 【태백산사고본】 7책 27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637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註 007]좌도(左道) : 사도(邪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