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9월 1일 정사 18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왜적이 연안성을 공격하자 초토사 이정암이 격퇴시키다

왜적이 연안성(延安城)을 공격하니, 초토사 이정암(李廷馣)이 그들을 격퇴시켰다. 적장 갑비수(甲斐守) 풍신장정(豊臣長政) 등은 연안성을 굳게 지키고 떠나지 않는다 하여 해주(海州)·평산(平山)의 여러 주현(州縣)에 주둔하고 있는 군사를 모두 징발하여 대거 침입해 왔다.

이에 성 안에서는 기가 질려 모두 말하기를 ‘초토사는 성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니 이 예봉(銳鋒)을 피하여 뒷날에 거사를 도모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하니, 이정암이 울면서 달래기를 ‘내가 경악(經幄)에 있던 늙은 신하로 말고삐를 잡고 행재를 수행하지 못했다. 이제 왕세자의 초토하라는 명을 받았고 보면 빨리 한 성의 수비라도 맡아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마땅하니, 어떻게 차마 구차하게 살겠는가. 그리고 주민을 이끌어 성으로 들어오게 하였다가 적이 왔다고 해서 버리는 짓을 내가 어찌 차마 하겠는가.’ 하고, 명령을 내리기를 ‘함께 죽고 싶지 않은 자는 마음대로 빠져 나가라.’ 하였다. 그리고는 노복을 시켜 섶을 쌓고 횃불을 가지고 기다리게 하면서 경계시키기를 ‘적이 만약 성에 오르거든 나는 여기에 앉아 있을 것이니 너는 즉시 태워서 적의 손에 내가 더럽게 죽지 않도록 하라.’ 하고, 의견을 달리하는 인사는 타일러서 보내니 종사관 우준민(禹俊民)이 나가서 군중에게 거듭 약속을 밝히고 마음과 힘을 합하기로 맹세하자 군중이 감동하고 분격해서 일제히 외치기를 ‘대장이 죽기로 결단하는 판에 우리들이 어찌 살기를 도모하랴.’ 하였다.

적이 드디어 성을 포위하였다. 한 장수가 흰 기를 등에 지고 백마를 타고는 성을 돌며 두루 살피던 중에 기가 갑자기 바람에 넘어졌다. 무사 장응기(張應祺)가 그것을 보고 화살 한 대를 쏘아 가슴을 꿰뚫어 죽였다. 이정암이 좌우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것은 적이 패할 징조이다.’ 하였다. 적이 밤낮으로 공격하며 수천 개의 조총(鳥銃)으로 일제히 사격하니 연기가 자욱하고 탄환이 비오듯 하였다. 그러나 이정암은 태연 자약한 모습으로 성가퀴를 지키는 자에게 명하여 경솔히 활을 쏘지 말고 적이 성에 기어 오르거든 반드시 쏘아 죽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문짝·다락 등을 뜯어 방패(防牌)로 삼고 쌓아둔 풀을 묶어 횃불을 만들고 가마솥을 벌여 두고 물을 끓이면서 늙은이 어린이 부녀자 할 것 없이 모두 그 일에 달려들도록 하였다.

적이 시초를 참호에 채우고 올라오면 횃불을 던져 태우고, 적이 긴 사다리로 성에 오르거나 판자를 지고 성을 훼손시키면 나무와 돌로 부수고 끓는 물을 퍼붓게 하니 죽지 않는 자가 없었다. 적이 남산에다 높은 다락을 세워 판자 벽에 구멍을 내고 내려다 보며 총을 쏘니, 성 안에서도 이에 대응하여 흙담을 쌓아 막았다. 적이 밤 안개를 틈타 몰래 서쪽 성으로 기어 오르는 것을 성가퀴를 지키는 군사가 횃불로 에워싸 40여 명을 태워 죽였다. 포위당한 지 4일 동안 밤낮으로 크게 싸웠는데 적도 탄환이 떨어져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성 안에서는 또한 승리한 기세를 틈타 환호하며 쇠북을 치자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다. 적이 이에 시체를 모아 불을 지르고 퇴각하니, 즉시 군사를 출동시켜 추격하여 수급을 베고 노획한 것이 매우 많았다.

이정암이 양조(兩朝)에 헌첩(獻捷)하면서 단지 어느 날에 성이 포위당하고 어느 날에 풀고 떠났다고만 하였을 뿐 다른 말이 없었다. 조정에서 모두 말하기를 ‘전쟁에 이기는 것도 쉽지 않지만 공을 자랑하지 않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고 상으로 가선 대부 동지중추부사를 더하고, 함께 지킨 장사로 공이 있는 장응기·조종남(趙宗男)·조서룡(趙瑞龍)·봉요신(奉堯臣) 등에게는 차등있게 관직으로 포상하였다.

세자가 관원을 파견하여 호군(犒軍)하고 장려하며 유시하기를,

"경(卿)이 흩어져 도망하는 군사를 불러모아 외로운 성을 굳게 지키며 섶을 쌓아 스스로 타죽을 결심을 하였기에 기꺼이 함께 죽으려고들 하여 높은 사다리와 조총이 끝내 무용지물이 되도록 하였다. 이는 안시성주(安市城主) 외에는 일찍이 듣지 못했던 일이다. 그리하여 사방에서 소문을 듣고 모두 성을 굳게 지킬 것을 생각하며 양호(兩湖)의 뱃길도 거리낌없이 왕래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경의 힘이 아니겠는가. 지금부터 더욱 지키는 기구를 손질하여 적이 날마다 와서 싸움을 걸더라도 성의 수비를 더욱 튼튼히 하여 영영 침범하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 처음에 부사 신각(申恪)조헌(趙憲)의 말을 따라 성 밖의 물을 끌어다 서문 안에 큰 못을 만들었다. 전쟁 때에 오로지 물을 끓여 적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미리 못을 파둔 덕분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37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29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인사-관리(管理)

倭賊延安城, 招討使李廷馣擊却之。 賊將甲斐豐臣長政等以延安城守不去, 悉發海州平山諸州縣屯兵, 大擧而來。 城中色沮多言: "招討非受命守城, 宜避此銳鋒, 以圖後擧。" 廷馣泣諭之曰: "余以經幄老臣, 不能執羈的從行。 今承王世子招討之命, 亟宜乘一障效死, 安忍苟活? 且誘民而入城, 敵至而棄之, 吾豈忍爲也?" 下令曰: "不欲同死者, 任其出走。" 使奴僕積草持炬以待, 戒曰: "賊若登城, 余當坐此, 汝卽焚之, 毋令賊手汚我。" 乃諭遣異議之士。 從事官禹俊民出去, 申明約束, 誓一心力。 於是, 軍中感憤齊呼曰: "大將判死命, 我輩何用生爲?" 賊遂圍城。 有一將負白旗, 乘白馬環城周視, 旗忽爲風所倒, 武士張應祺發一矢, 洞胸殪之。 廷馣指示左右曰: "此賊敗兆也。" 賊晝夜進攻, 鳥銃數千齊放, 烟焰籠塞, 丸下如雨。 廷馣意色安閑, 令守陴者, 矢無輕發, 俟賊攀城, 發必中殺。 撤門扉、樓檻爲防牌, 縛積草爲炬, 列鼎煮湯, 令老幼兒婦供役。 賊以草柴塡塹以上, 則擲炬以焚之; 賊以長梯登城, 或負板以毁城, 則碎以木石, 注以沸湯, 無不殞斃。 賊起飛樓于南山, 穴板壁臨射, 則城中隨起土墻以障之。 賊乘夜霧, 潛上西城, 守陴者以炬圍燒殺四十餘人。 受圍四日, 晝夜大戰, 賊亦丸盡, 唯叫噪而已。 城中亦乘勝歡呼, 金鼓震地。 賊乃聚積尸, 焚之而退, 卽出兵追擊, 斬級鹵獲甚多。 廷馣獻捷兩朝, 但言: "某日圍城, 某日解去。" 無他語。 朝廷皆言: "戰勝不易, 不伐功尤難," 賞加嘉善同知中樞。 同守將士有功者, 張應祺趙宗男趙瑞龍奉堯臣等, 賞職有差。 世子遣官犒軍, 奬諭曰: "卿招集散亡, 堅守孤墉, 積薪待燃, 甘與同斃, 使雲梯、鳥銃, 終不得售, 安市城主外, 曾所未聞。 四方聞風, 皆思嬰壘, 兩湖船路, 往來無礙, 非卿之力歟? 自是, 益治守具, 賊日來索戰, 而城守益堅, 終歲不敢犯。" 始, 府使申恪趙憲言, 引城外水, 作大池于西門內, 戰時專以沸湯殺賊, 賴其預瀦也。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37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29면
  • 【분류】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