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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9월 1일 정사 6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중국 황제가 행인사 행인 설번을 파견하여 조칙을 내리고 위로하다

중국 황제가 행인사 행인(行人司行人) 설번(薛藩)을 파견하여 조칙을 내리고 위로하며 유시하기를,

"그대 나라는 대대로 동번(東藩)을 지키며 평소 공손히 순종하였고, 의관 문물(衣冠文物)이 성해 낙토(樂土)라고 불리워졌다. 그런데 요즈음 듣건대 왜노가 창궐하여 대거 침입해서 왕성(王城)을 함락시키고 평양을 점거하여 생민들은 도탄에 빠져 원근이 소란하며 국왕은 서쪽의 바닷가로 피신하여 초야에 있다고 하니, 그렇게 결딴난 모습을 생각하면 짐(朕)의 마음이 서글퍼진다. 엊그제 급박함을 고하는 소식을 받고 이미 변신(邊臣)에게 조칙을 내려 군사를 일으켜 구원하도록 하였다. 이제 또 행인(行人)을 차송하여 그대 국왕에게 알리는 것이니 마땅히 그대 조종(祖宗)이 대대로 전한 기업을 생각하도록 하라. 어떻게 차마 하루아침에 가벼이 버리겠는가? 급히 치욕을 씻고 흉적을 제거해야 할 것이니 힘써 바로잡고 회복할 것을 도모하라. 그리고 다시 해국(該國)의 문무 신민에게 잇따라 유시하여 각기 군주에게 보답하는 마음을 견고히 하고 원수를 갚는 의리를 크게 분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짐이 지금 문무 대신(大臣) 2원(員)에게 명하여 요양(遼陽)의 정병(精兵) 10만 명을 통솔하고 가서 도와 적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기필코 해국의 병마(兵馬)와 함께 전후에서 협공하여 흉적을 모조리 죽여 한 놈도 남기지 말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짐이 하늘의 명명(明命)을 받아 화이(華夷)의 군주가 되어 지금 만국이 모두 편안하고 사해가 안정되어 있는데 어리석은 소추(小醜)050) 가 감히 횡행하므로 다시 동남변해(東南邊海)의 여러 진(鎭)에 조칙을 내리고 아울러 유구(琉球)·섬라(暹羅) 등의 나라에 선유(宣諭)하여 군사 10만 명을 모집해서 동쪽으로 일본(日本)을 정벌하여 경예(鯨鯢)051) 를 주살하고 사해를 안정시키게 하였다. 그렇게 되면 작위(爵位)를 주고 포상하는 성대한 전례를 짐이 어찌 아끼겠는가.

대체로 선세(先世)의 강토를 회복하는 것은 곧 대효(大孝)이며 군부(君父)의 환란에 급히 달려가는 것은 곧 지극한 충성이다. 해국의 군사들은 평소 예의를 알고 있으니 틀림없이 짐의 마음을 잘 체득할 것이다. 옛날의 문물을 회복시켜 국왕으로 하여금 개가를 울리며 도성으로 돌아가 종묘와 사직을 굳건히 지키며 번병(藩屛)의 임무를 길이 보전하게 하라. 그리하여야 먼 곳을 보살피고 작은 나라를 사랑하는 짐의 뜻을 위로하게 될 것이다. 부디 공경할지어다. 그러므로 흠유하노라."

하였다. 설번의주(義州)에 하룻 동안 머물고 즉시 돌아가 먼저 병부(兵部)에 치자(馳咨)하였는데, 그 치자에,

"당직(當職)이 칙지를 받들고 조선의 군신(君臣)에게 선유(宣諭)하였더니 감격하여 울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모두 말하기를 ‘소국을 어여삐 여기시는 황제의 은혜는 진정 하늘과 땅의 은혜와 같다.’고 하면서, 왕사(王師)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것이 큰 가뭄에 비를 기다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군신들이 애처롭게 호소하는 절박한 사연과 고달프게 떠돌아다니는 상황을 직접 본 것에 의거하건대 존망이 호흡(呼吸) 사이에 달려 있다 하겠습니다.

돌아보건대 안타깝게 여겨야 할 상황은 조선에 문제가 있지 않고 우리 나라의 강역에 있다는 점이며 어리석은 제가 깊이 염려하는 바는 강역에만 그치지 않고 내지(內地)까지 진동할까 하는 점입니다. 그러니 군사를 징발하는 것을 한 순간인들 늦출 수 있겠습니까. 대저 요진(遼鎭)은 경사(京師)의 팔과 같으며 조선은 요진의 울타리와 같습니다. 그리고 영평(永平)은 기보(畿輔)의 중요한 지역이며 천진(天津)은 또 경사의 문정(門庭)입니다. 2백 년 동안 복건성(福建省)과 절강성(浙江省)이 항상 왜적의 화를 당하면서도 요양과 천진에까지 이르지 않았던 것은 어찌 조선이 울타리처럼 막아주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압록강에 길이 셋이 있습니다만 서쪽에 가까운 두 곳의 길은 물이 얕고 강이 좁아서 말이 뛰어 건널 만하고, 또 한 길은 동서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니 어떻게 그 곳을 거점으로 하여 방수(防守)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왜노들이 조선을 점거하다면 요양의 주민들은 하루도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순풍에 돛을 달고 서쪽으로 배를 띄우면 영평천진이 가장 먼저 그 화를 받게 될 것이니, 경사가 놀라 진동하지 않겠습니까?

직(職)이 평양 지방을 탐문(探問)해 보건대 왜적이 각기 인가(人家)의 부녀자를 차지하여 자기의 여자로 삼고 방실(房室)을 수선하는가 하면 군량과 꼴을 많이 쌓아두는 등 오랫 동안 주둔할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뜻이 작은 데 있지 않은 것입니다. 직이 도착하던 날 그들이 드러내놓고 서쪽으로 가서 압록강에서 관병(觀兵)하겠다고 하므로 조선의 군신들이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유격(遊擊) 심유경(沈惟敬)이 분발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단기(單騎)로 적장과 말을 통하여 50일을 기약하여 그들의 침범을 늦추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술책으로 저들을 우롱하는 것처럼 저들 또한 이런 술책으로 우리를 우롱하고 있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그들은 간사하고 교활합니다. 평양을 함락시키던 날에는 ‘길을 빌어 원수를 갚으려 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길을 빌어서 조공(朝貢)하려 한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중국과 서로 겨룰 수 없는 것을 천고의 한으로 여기다가 또 심유경을 만나서는 조공을 통할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거만하게 매도하는 말을 하다가 순식간에 공손한 말을 하는 그들의 간사함은 믿을 수 없습니다. 직이 그들의 계교를 헤아리건대, 거짓 화친을 요청하여 군사의 출동을 늦추려는 계산에 불과할 뿐입니다. 어쩌면 강물이 얼기를 기다렸다가 요양을 침범할지 아니면 봄철을 기다렸다가 천진을 침범할지 모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이런 때에 빨리 대병(大兵)으로 그들에 대처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들이 이르는 곳마다 감히 아무도 대적하지 못한다고 여길 것이니 어찌 기꺼이 되돌아가려 하겠습니까.

지금 조선은 위망이 조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윤음(綸音)이 한 번 선포되자 충의로운 마음을 고동시키고 적개심이 진작되어 회복하기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이 적들과는 함께 살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심을 도와 정병(精兵)을 보내서 조선과 함께 협공한다면 기일을 정하고 왜노를 소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차스럽게 세월만 기다릴 경우 그들이 빈궁한 백성을 불러 모으고 떠도는 자들을 위로하여 안정시켜 조선 사람들이 갑병(甲兵)을 일으키는 것을 싫어하고 새로운 땅을 소유하게 된 것을 즐겁게 여기도록 한다면, 백만의 군사가 있다고 한들 어떻게 구제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이는 ‘군사를 일으켜 가서 정벌하면 그들의 침입을 초래할 뿐이다.’고 하지만 직의 생각으로는 정벌을 해도 올 것이고 정벌하지 않아도 올 것이며, 정벌을 할 경우 평양의 동쪽에서 견제할 수 있어 그들이 오는 것이 더디어 화(禍)가 작게 될 수 있지만, 정벌하지 않을 경우 그들이 평양 서쪽에서 저희 마음대로 할 수 있어 그 침입의 속도가 빠르고 화도 커지게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빨리 정벌하면 우리가 조선의 힘을 빌릴 수 있지만 늦게 정벌하면 왜노가 조선 사람을 거느려 우리를 대적할 것이기 때문에 직은 군사를 동원하여 정벌하는 일을 한시라도 늦출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돌아보건대 군사를 일으키는 비용으로는 양향(粮餉)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직이 그 저축되어 있는 것을 물어본 바 겨우 7천∼8천 명의 한 달 양식에 불과했으니, 그 부족량은 우리가 계속 대주어야 할 것입니다. 해국에서도 인마(人馬)를 많이 징발하여 강변에 두고 있습니다. 그 나라 신민들도 우리 군사가 그들의 부모 형제의 원수를 갚아주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 즐거이 곡식을 수송하며 자진하여 지역을 따라 양식을 대줄 것인데, 더구나 왜놈들이 쌓아둔 것이 있음이겠습니까. 직이 말한 것은 여러 신하들이 모두 먼저 말한 것입니다. 다시 생각건대 이번의 거사를 하루라도 빨리 하면 조선이 하루라도 빨리 멸망하는 화를 면할 것이고, 하루 늦게 하면 우리 강역에 하루의 근심을 더 끼치게 될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예단(睿斷)을 내리시어 해부(該部)에 조칙을 내려 병마를 어서 떠나도록 재촉하신다면 강역과 종묘 사직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다. 이때에 석성(石星)이 아뢴 의논도 그러하였기 때문에 이론(異論)이 끼어들 수 없었다. 설번이 우리 나라에 사신으로 왔다가 맨 먼저 이 의논을 아뢰었는데, 중국 조정에서 시종 군사를 출동시켜 접응하며 구원하게 된 것은 대체로 이렇게 아뢴 때문이다.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28면
  • 【분류】
    군사-병참(兵站) / 군사-전쟁(戰爭)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註 050]
    소추(小醜) : 왜적을 가리킴.
  • [註 051]
    경예(鯨鯢) : 악인을 가리킴.

○帝遣行人司行人薛藩, 降勑慰諭曰:

爾國世守東藩, 素效恭順, 衣冠文物, 號稱樂土。 近聞, 奴猖獗, 大肆侵凌, 攻陷王城, 掠占平壤, 生民塗炭, 遠近騷然。 國王西避海濱, 奔越草莽, 念玆淪蕩, 朕心惻然。 昨傳告急聲息, 已勑邊臣, 發兵救援。 今差行人, 諭爾國王, 當念爾祖宗世傳基業, 何忍一朝輕棄? 急宜雪恥除兇, 力圖匡復。 更當繼諭, 該國文武臣民, 各堅報主之心, 大奮復讐之義。 朕今命文武大臣二員, 統率遼陽精兵十萬, 往助討賊, 與該國兵馬, 前後夾攻, 務期勦滅兇賊, 俾無遺類。 朕受天明命, 君主華夷, 方今萬國咸寧, 四溟安靜。 蠢玆小醜, 輒敢橫行, 復勑東南邊海諸鎭, 竝宣諭琉球暹羅等國, 集兵十萬, 東征日本, 務令鯨鯢授首, 海波晏然。 爵賞茂典, 朕何愛焉? 夫恢復先世土宇, 是爲大孝; 急赴君父患難, 是爲至忠。 該國君臣, 素知禮義, 必能仰體朕心, 匡復舊物, 俾國王奏凱還都, 固守宗廟、社稷, 長保藩屛, 庶慰朕恤遠字小之意。 欽哉! 故欽諭。

薛藩義州一日卽還, 先馳咨兵部云:

當職奉勑, 宣諭朝鮮君臣, 莫不感泣。 咸謂: "皇恩垂恤小國, 眞若覆載之恩。" 而引領王師, 又若大旱之望雲霓也。 據其君臣哀籲迫切之辭及目覩困苦流離之狀, 存亡係於呼吸之間。 顧事勢之可悶者, 不在朝鮮, 而在吾國之疆場, 愚之所深慮者, 不止疆場, 而恐內地之震動也。 其調兵征討, 可容頃刻緩乎? 夫鎭, 京師之臂, 而朝鮮者, 鎭之藩籬也。 永平, 畿輔之重地, 而天津, 又京師之門庭也。 二百年來, 常遭患, 而不及於遼陽天津者, 豈不以朝鮮爲之屛蔽乎? 鴨綠一江, 雖有三道, 然近西二道, 水淺江狹, 馬可飛渡, 一道東西相去, 不滿二對之路, 豈能據爲防守乎? 若使奴據有朝鮮, 則遼陽之民, 不得一夕安枕而臥矣。 風汛一便, 揚帆而西, 則永平天津首受其禍, 京師其震驚否乎? 職探問平壤地方賊, 各占人家婦女, 配爲室家, 繕治房室, 多積糧草, 爲久住之計。 此其志不在小也。 職到之日, 聞聲言西向, 觀兵鴨綠, 朝鮮君臣, 彷徨罔極。 幸得遊擊沈惟敬奮不顧身, 單騎通言, 約五十日緩其侵犯。 然而我以此術愚彼, 亦安知彼非以此術愚我乎? 其人狙詐狡猾, 方陷沒平壤之日, 則曰: "欲假道復仇。" 今則曰: "欲假道朝貢矣。" 方以不得與中國抗衡, 爲千古恨, 又以得沈惟敬可通朝貢爲幸。 其倐然而爲慢罵之辭; 倐然而爲恭遜之語, 其狙詐難憑。 職料其計, 不過詐請和好, 以緩兵計耳。 或候河凍, 以犯遼陽; 或候春期, 以犯天津, 皆未可知。 若非是時速以大兵臨之, 則彼以爲所至, 莫敢誰何, 其肯怡然返棹者乎? 今朝鮮危亡, 在於朝夕, 然綸音一布, 皷其忠義之心, 作敵愾之氣, 莫不以恢復爲念, 誓不與此賊俱生。 乘此人心, 加以精兵, 與彼夾攻, 則倭奴必可計期勦滅。 苟候歲時, 則彼招集貧窮, 安撫流離, 朝鮮之人厭起甲兵, 樂有新土, 則雖有百萬, 其能濟乎? 或謂興兵往征, 徒速其來, 職之謂: "征之固來, 不征亦來。 征之則牽制於平壤之東, 其來遲而禍小, 不征則肆意於平壤之外, 其來速而禍大。 速征則我藉朝鮮之力, 遲征則朝鮮之人以敵我, 故職謂, 調兵征討, 不容頃刻緩者也。" 顧興兵之費, 莫甚糧餉。 職詢其所積, 僅足七八千人一月之糧, 有不足者, 資我繼之。 該國亦多發人馬, 在於江邊, 其國臣民, 亦幸我兵, 爲其父母、兄弟報仇, 樂輸粟餉, 自可隨地資糧, 況有倭奴所積者乎? 職之所言, 諒諸臣皆先言之。 顧念, 此擧早一日, 則朝鮮免一日覆亡之禍, 遲一日, 則貽我疆場一日之憂。 懇乞聖明睿斷, 勑下該部, 催促兵馬前行, 則疆場幸甚, 宗社幸甚。

是時, 石星奏議亦然, 故異論不得間之。 以使至我國, 首奏此議, 皇朝終始出兵接捄, 大槪此奏意也。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28면
  • 【분류】
    군사-병참(兵站) / 군사-전쟁(戰爭) / 외교-명(明)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