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정에서 왜의 전영에 사자로 보낸 유격 심유경이 돌아오다
중국 조정에서 왜의 진영에 사자로 보낸 유격(遊擊) 심유경(沈惟敬)이 돌아왔다. 당초 조승훈(祖承訓)이 패하고 나자 적이 더욱 교만해져 우리 군대에 글을 보내어 장차 서쪽으로 올라가겠다고 큰소리치므로 행조(行朝)에서 두려워하였다. 심유경은 본래 절강성(浙江省) 사람으로 평소 왜국의 실정에 익숙하였으므로 병부 상서 석성(石星)이 유격이란 칭호를 붙여주면서 그로 하여금 적의 사정을 정탐하게 하였다. 순안(順安)에 이르러 먼저 한 사람의 가정(家丁)을 왜군의 진영에 보내어 황제의 칙지로 책망하기를 ‘조선이 일본에 무엇을 잘못했기에 일본이 어찌 마음대로 군사를 일으켰는가?’ 하니, 행장(行長)이 글을 보고는 직접 만나 일을 의논하자고 의보하였다. 심유경이 즉시 3∼4명을 거느리고 가니, 행장 등이 군사를 위엄있게 진열하고 성 북쪽의 산 위로 나와서 만났다. 행장이 구봉(求封)과 통공(通貢)에 대한 일을 말하자, 심유경이 행장 등에게 말하기를,
"이곳은 바로 중국 조정의 지방이니 그대들은 물러나 주둔하면서 중국 조정의 다음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
하니, 행장이 지도(地圖)를 보이면서 말하기를,
"이곳은 분명히 조선 지역이다."
하였다. 심유경이 말하기를,
"평상시에 여기서 조서(詔書)를 영접하는 까닭에 많은 궁실(宮室)들이 있다. 비록 여기가 조선 지역이라 하더라도 바로 중국의 지경이니 여기에 머물 수는 없다."
하니, 행장이 다시 회보할 때까지 기다릴 것을 청하고 물러갔다. 심유경이 갔다가 돌아오는 기간을 50일로 정한 뒤, 그 동안에는 왜군의 무리가 평양의 서북쪽 10리 밖을 나오지 못하고 조선의 군사도 10리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는 나무를 세워 금표(禁標)를 하고 돌아왔다.
이튿날 행장이 사람을 보내 심유경을 달래고 또 말하기를,
"어제 대인(大人)이 병기가 삼엄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으니, 일본 사람이라도 그보다 더할 수는 없다."
하니, 심유경이 말하기를,
"그대들은 당(唐)나라 곽영공(郭令公)049) 이 단기(單騎)로 회흘(回紇)의 대군 속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듣지 못하였는가. 내가 어찌 그대들을 두려워하겠는가."
하였다. 심유경이 바로 말을 달려 돌아갔다.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27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註 049]곽영공(郭令公) : 곽자의(郭子儀).
○朔丁巳/皇朝遣遊擊沈惟敬, 使倭營而還。 初, 祖承訓旣敗, 賊愈驕, 投書我軍, 聲言將西上, 行朝震懼。 惟敬本浙民, 素習倭情, 兵部尙書石星假以遊擊之號, 使來覘賊。 至順安, 先遣一家丁于倭營, 以皇旨責問: "朝鮮有何虧負於日本, 日本如何擅興師旅?" 行長見書, 回報求面見議事。 惟敬卽率三四人赴之, 行長等盛陳兵威, 出會于城北山上, 行言求封通貢事。 惟敬謂行長等: "此乃天朝地方, 爾等可退屯, 以待天朝後命。" 行長示以地圖曰: "此明是朝鮮地。" 惟敬謂: "常時迎詔於此, 故有許多宮室。 雖是朝鮮地, 乃上國界, 不可留此。" 行長請待更報退去。 惟敬約以往還間五十日爲期日, 其間倭衆毋得出平壤西北十里外, 朝鮮兵亦不得入十里內, 乃立木爲禁標而還。 翌日, 行長使人諭惟敬,且曰: "昨日, 大人在白刃叢中, 顔色不變, 雖日本人無以加也。" 惟敬曰: "爾不聞唐朝郭令公單騎入回紇萬軍中乎? 我何畏爾也?" 惟敬卽馳歸。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27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