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수 김명원이 순찰사 이원익 등으로 평양을 공격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다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이 순찰사 이원익(李元翼)과 순변사 이빈(李薲)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평양으로 진군하여 공격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당시 이원익 등은 순안(順安)에 주둔하여 천여 명의 군사를 불러 모았는데 정예 군사가 제법 많았다. 방어사 김응서(金應瑞), 별장 박명현(朴命賢) 등은 용강(龍岡)·삼화(三和)·증산(甑山)·강서(江西) 등 바닷가 여러 고을의 군사 만여 명을 거느리고 20여 둔(屯)에 배치하고 평양의 서쪽을 압박하며 때로 영세한 적을 소탕하면서 성 밖까지 이르렀으나 적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별장 김억추(金億秋)는 수군을 거느리고 대동강(大同江) 입구에 웅거하였고, 중화(中和)의 별장 임중량(林仲樑)은 2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보루를 쌓아 주둔하며 지켰다.
행조(行朝)에서는 평양의 적세(賊勢)가 쇠약해져 우리 군사가 충분히 진격하여 취할 수 있고 또 중국 군사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여겨 영(令)을 내려 진격하기를 재촉하였다. 이에 삼로(三路)의 군사가 함께 나가 정탐하는 적을 만나 두어 명을 쏘아 죽였는데, 얼마 안 되어 적병이 크게 이르자 관군이 놀라 강가에서 흩어져 도망하였다. 이에 용병(勇兵)이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세 번 싸워 모두 불리하였으므로 물러나 본소(本所)에 주둔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624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명(明) / 외교-왜(倭)
○朔戊子/都元帥金命元使巡察使李元翼、巡邊使李薲率兵進攻平壤, 不克。 時元翼等屯順安, 召集千餘兵, 精銳頗多。 防禦使金應瑞、別將朴命賢等, 將龍岡、三和、甑山、江西沿海都邑之兵萬餘人, 列二十餘屯, 以逼平壤之西, 時鈔擊零賊, 至城外而賊終不出。 別將金億秋將水軍, 據大同江口, 中和別將林仲樑領二千兵, 築壘屯守。 行朝以爲: "平壤賊勢衰, 而我軍足以進取, 又不可等待唐兵。" 促令進攻。 於是三路俱進, 遇探賊射殺數人, 俄而賊兵大至, 官軍驚潰, 江邊勇兵多折傷, 三戰皆不利, 退屯本所。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6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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