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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7월 1일 무오 16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함경남·북도가 적에게 함락되다

왜장 청정(淸正)이 북계(北界)로 침입하니 회령(會寧)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두 왕자(王子)039) 와 여러 재신(宰臣)을 잡아 적을 맞아 항복하였다. 이로써 함경남·북도가 모두 적에게 함락되었다.

당초 청정이 재를 넘어 왕자 일행을 끝까지 추격하니 왕자가 경성(鏡城)으로 도망하였다. 북병사 한극함(韓克諴)마천령(摩天嶺)에서 항거하여 싸웠으나 해정창(海汀倉)이 왜군에게 차단 당하자 군사들이 패하여 도망하였다. 왕자가 진로를 바꾸어 회령부(會寧府)로 들어갔는데 적병이 가까이 추격했다는 말을 듣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진(鎭)의 토병(土兵)이 이미 모반(謀叛)하여 거짓으로 성을 지키겠다고 청하면서 자진하여 문의 자물쇠를 가지고서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튿날 토관 진무(土官鎭撫) 국경인(鞠景仁)이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고는 스스로 대장이라 일컬으며 갑기(甲騎) 5천으로 진(陣)을 결성하였다. 그때 순변사 이영(李瑛)과 부사 문몽원(文夢轅)은 남문(南門)의 누상(樓上)에 있다가 깜짝 놀라 어쩔줄을 몰랐다. 고령 첨사(高嶺僉使) 유경천(柳擎天)은 과감하고 용맹한 장사였는데 이영에게 귓속말로 말하기를 ‘경인이 반역하자 본부의 군사로 따른 자가 절반이지만 모두 그의 심복(心腹)이라고 할 수 없다. 공(公)은 여기서 일행의 군관(軍官)과 원역(員役)을 모아 경계를 엄중히 하면서 기다리라. 나는 가서 경인을 달래어 군사를 해산시키도록 하겠다. 만약 즉시 들어주지 않으면 곧바로 머리를 베고 여러 사람에게 깨우쳐 해산하게 할테니 공은 여기서 그들을 불러 모아 항복을 받도록 하라. 그러면 저절로 안정이 될 것이다.’ 하였으나, 이영은 용렬하고 나약하여 머리를 저으며 말하기를 ‘신중히 하고 이런 말은 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경인이 은밀히 그 계책을 듣고 사람을 시켜 건장한 군관들을 잡아 모두 목을 베게 하였다. 유경천은 자기의 말이 시행되지 않음을 보고 즉시 휘하의 몇 사람과 함께 서문(西門)을 열고 나갔는데 적이 감히 추격하지 못하였다. 경인이 마침내 객사(客舍)를 포위하고 두 왕자 및 부인(夫人), 여시(女侍) 노비 등과 재신(宰臣) 김귀영(金貴榮)·황정욱(黃廷彧)·황혁(黃赫)과 그들의 가속을 잡아 모두 결박하고 마치 기물(器物)을 쌓아놓듯 한 칸 방에 가두었다. 김귀영의 후처(後妻)인 이씨(李氏)는 나이가 젊었는데 적이 그를 겁탈하려고 하자 곧바로 관중(館中)의 병주(屛柱)에 나아가 목을 매어 죽었다. 이영이 갑옷을 벗고 적중에 나아가 왕자를 놓아주도록 애걸하였으나 적이 그를 결박하였다.

경인이 문서로 청정에게 치보(馳報)하니, 청정회령부에 이르러 성 밖에 진을 치고 단여(單輿)로 성에 들어와 왕자와 여러 신하들을 본 뒤 경인 등을 책망하기를 ‘이 사람들은 바로 너희 국왕의 친자(親子)와 조정의 재신(宰臣)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곤욕을 가하는가?’ 하고는, 결박을 풀게 하고 군중(軍中)에 두도록 하여 후하게 대접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군사를 인솔하여 두만강(豆滿江)을 건너 깊숙이 노토 부락(老土部落)까지 들어가 성(城)을 공격하니 호인(胡人)이 사방에서 일어나 요격하여 사졸(士卒)들의 사상자가 많았다. 이에 진로를 바꾸어 종성(鍾城)문암(門岩)을 경유하여 강을 건너 온성(穩城)·경원(慶源)·경흥(慶興)에 차례로 들어갔다가 해변의 협로(峽路)를 따라 경성(鏡城)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여러 진(鎭)과 보(堡)의 토병(土兵)과 호수(豪首)가 모두 관리를 붙잡고 배반하며 항복하였으므로 왜인들은 칼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점령하게 되었다. 경성 호장(戶長) 국세필(鞠世弼)이 맨 먼저 배반하여 판관 이홍업(李弘業)을 붙잡아 적에게 넘겨 주었으며, 한극함(韓克諴)번호(藩胡)의 부락으로 도망해 들어갔으나 호인(胡人)이 받아주지 않고 경원(慶源)의 민가(民家)로 보냈는데 즉시 잡혔다. 청정이 수천 명의 군사로 길주(吉州)를 지키게 하고, 【적장(賊將)의 이름은 충정(忠正)이다.】 명천(明川) 이북의 8진(鎭)은 모두 반민(叛民)으로 수령(首領)을 삼아 진압하게 하였는데 형백(刑伯), 예백(禮伯)이란 호(號)가 있었다. 강 건너 잡호(雜胡)가 이때를 틈타 노략질하였는데 변보(邊堡)의 토민(土民)들은 도리어 그들과 결탁하였다. 청정이 안변부(安邊府)로 돌아와 웅거하니 관남(關南)의 주진(州鎭)도 반민들이 웅거하게 되어 모두 청정의 절제를 받았다. 그러나 단천 군수(端川郡守) 강찬(姜燦)은 평소 민심을 얻었으므로 양민을 많이 모아 군사로 삼아 스스로 방위하면서 군계(郡界)에 웅거하니 산골짜기에 살던 토민들이 귀의하는 자가 많았다.

당초 이혼(李渾)이 잡히자 김귀영(金貴榮) 등이 편의로 회령 부사에 임명된 이영(李瑛)을 남병사로 삼았는데, 이영이 남쪽으로 나가기를 꺼려 하며 남북도 순변사를 겸직하려고 하므로, 왕자를 배행(陪行)하여 북쪽으로 들어가게 하고, 문몽원(文夢轅)을 회령 부사로 삼았었는데 모두 붙잡혔다. 김귀영은 늙어서 정신이 흐리고 황정욱 부자(父子)는 모두 하인들을 단속하지 못하여 궁노(宮奴)의 무리가 이르는 곳마다 침탈하며 소란을 피웠기 때문에 인심을 크게 잃었었다. 이 때문에 그들의 반란을 재촉하게 되었다. 윤탁연(尹卓然)은 간사한 꾀로 남도(南道)에 쳐져 있었는데 조정에서는 그의 죄를 알지 못하고 유영립(柳永立) 대신으로 기용하였으며, 또 성윤문(成允文)으로 이영을 대신하게 하였는데, 모두 삼수(三水)의 산골짜기에 숨어 있었다. 얼마 있다가 행조(行朝)의 소식이 통하여 와언(訛言)이 차츰 없어지면서 난민도 조금 기세가 수그러졌기 때문에 두 장수가 화를 면하게 되었다.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23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왕실-종친(宗親) / 변란-민란(民亂) / 인사-임면(任免)

  • [註 039]
    두 왕자(王子) :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

淸正入北界, 會寧人叛, 執兩王子、諸宰臣迎降, 關南北皆陷于賊。 初, 淸正踰嶺, 而窮追王子行, 王子奔, 至鏡城。 北兵使韓克誠拒戰于磨天嶺, 海汀倉軍所綴, 軍潰而走。 王子轉入會寧府, 聞賊兵追迫, 欲向前, 鎭土兵已謀叛, 佯請守城, 自守門鑰, 使不得出。 翌日土官鎭撫鞠景仁聚徒作亂, 自稱爲大將, 以甲騎五百結陣。 時, 巡邊使李瑛、府使文夢轅在南門樓上, 愕不知所爲。 高嶺僉使柳擎天果悍壯士也。 咡謂曰: "景仁叛, 而本府兵從者半, 未必盡其腹心。 公於此團集一行軍官、員役, 戒嚴而臨之。 吾則往諭景仁使解兵, 卽不聽便斬首, 諭衆使散。 公自此呼聚受降, 自然定矣。" 庸懦, 搖首曰: "愼勿爲此言。" 景仁微聞其計, 使人執軍官壯健者盡斬之。 擎天見言不用, 卽與麾下數人, 開西門出去, 賊不敢追。 景仁遂圍客舍, 就執兩王子及夫人、女侍, 一行奴婢等與宰臣金貴榮黃廷彧黃赫, 竝其家屬, 皆綁縛置一間房, 如積峙器物。 貴榮後妻李氏年少, 賊欲刼之, 卽就館中屛柱縊死。 李瑛解甲就賊中, 哀乞請釋王子, 賊執之。 景仁以文書馳報于淸正, 淸正至府, 結陣城外, 單輿入城, 見王子、諸臣, 責景仁等曰: "此乃汝國王之親子及朝廷宰臣, 何困辱至此?" 解縛置軍中, 饋供頗厚。 遂引兵渡豆滿江, 深入老土部落, 攻陷城塢, 胡人四起邀擊, 士卒多死傷。 還由鍾城 門岩渡江, 歷入穩城慶源慶興, 從海邊峽路, 還入鏡城。 諸鎭堡土兵、豪首皆執官吏叛降, 倭人兵不血刃。 鏡城戶長鞠世弼首叛, 執判官李弘業與賊。 韓克誠遁入藩胡部落, 胡人不受, 送于慶源民家, 卽被執。 淸正留兵數千, 據吉州, 【賊將名忠正。】明川以北八鎭, 皆以叛民爲首領以鎭之, 有刑伯、禮伯之號。 江外雜, 乘時寇掠, 邊堡土民, 反與連結。 淸正還據安邊府, 關南州鎭亦爲叛民所據, 皆受淸正節制。 端川郡守姜燦素得民心, 頗集良民爲兵, 自衛據郡界, 谷中土民多歸之。 初, 李渾被執, 金貴榮等以便宜, 除會寧府使李瑛爲南兵使。 憚南出, 求兼南北道巡邊使, 陪行王子入北, 以文夢轅會寧府使竝被執。 金貴榮老昏, 黃廷彧父子皆不戢下, 宮家奴輩到處侵擾, 大失人心, 以此促其叛亂。 尹卓然以詭計, 落留南道, 朝廷不省其罪, 用以代柳永立, 又以成允文, 皆匿三水山谷間。 旣而行朝聲聞復通, 訛言稍息, 亂民頗戢, 故二帥得免。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23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왕실-종친(宗親) / 변란-민란(民亂)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