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수정실록26권, 선조 25년 7월 1일 무오 3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왜병이 전주에 침입하였다가 퇴각하다
왜병이 전주(全州)에 침입하였다가 퇴각하였다. 적이 이미 이치(梨峙)에서 패하고 나서 다시 상로(上路)를 따라 재를 넘어 전주를 침입하였다. 이에 본 고을 사람인 전 전적 이정란(李廷鸞)이 주민(州民)을 이끌고 주성(州城)에 들어가 지켰으며, 감사 이광(李洸)은 주성 밖 용함대(龍凾臺)에 진을 치고서, 낮에는 의병(疑兵)을 설치하여 기치(旗幟)가 산골짜기에 가득하게 하고 밤이면 횃불을 줄지어 세워 서로 응하게 하였다. 정란이 군사를 엄히 단속하며 주성에 웅거하니 왜적이 고군(孤軍)으로 깊이 들어와서 대적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퇴각하였는데, 이로부터 다시 침입하지 못하였다.
전주(全州)의 경기전(慶基殿)에 봉안(奉安)하였던 태조(太祖)의 수용(晬容)을 묘향산(妙香山)에 이안(移安)하였다. 당시 전주가 위급해지자 경기 전 참봉(參奉)이 어용을 받들고 적병을 피하여 해로(海路)를 경유해서 의주(義州)에 도달하니, 상이 행궁(行宮)에서 곡하며 제사지내고 산사(山寺)에 이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22면
- 【분류】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왕실-종사(宗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