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 절제사 권율이 왜적을 웅치에서 물리치다
전라 절제사 권율(權慄)이 군사를 보내어 왜적을 웅치(熊峙)에서 물리쳤는데 김제 군수 정담(鄭湛)이 전사하였다. 왜병이 또 이치(梨峙)를 침범하니 동복 현감 황진(黃進)이 패배시켰다.
이때 적이 금산(錦山)에서 웅치를 넘어 전주(全州) 지경으로 침입하려고 했는데, 나주 판관 이복남(李福男)이 황박(黃璞)·정담 등과 요해지에 웅거하여 적을 맞아 공격하였으므로 감사 이광(李洸)이 군사를 보내어 싸움을 돕게 하였다. 왜적의 선봉(先鋒) 수천 명이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정면으로 돌진해 왔는데, 복남 등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활로 쏘아 죽인 것이 헤아릴 수 없었으며 적이 패하여 물러갔다.
이튿날 새벽에 적이 병력을 총동원하여 산골짜기에 가득하였고 총포 소리가 우레처럼 쏟아졌다. 복남 등이 적의 일진(一陣)을 맞아 싸웠으나 결국 당해내지 못하고 퇴각하였으며, 황박의 군사도 패하여 복남의 진으로 들어갔다. 정담은 처음부터 힘을 다해 싸웠는데 붉은 기 아래 백마(白馬)를 타고 있는 적장을 쏘아 죽이니 적이 와해되어 물러갔다. 조금 뒤에 나주(羅州) 군사가 퇴각하자, 정담이 고군(孤軍)으로 포위당했는데 부하 장수가 정담에게 후퇴시키기를 권하니 정담이 말하기를 ‘차라리 적병 한 놈을 더 죽이고 죽을지언정 차마 내 몸을 위해 도망하여 적으로 하여금 기세를 부리게 할 수는 없다.’ 하고 꼿꼿이 서서 동요하지 않고 활을 쏘아 빠짐없이 적을 맞추었다. 이윽고 적병이 사방으로 포위하자 군사들이 모두 흩어져 버리고 정담 혼자서 힘이 다하여 전사하였다. 종사관 이봉(李葑)도 전사하였다. 복남이 퇴각하여 재 아래 안진원(安鎭院)에 진을 쳤는데, 적이 방비가 있음을 알고 감히 재를 넘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정담은 군상(君上)이 도성을 떠나 피난했다는 사실을 듣고부터 눈물을 흘리고 분격해 하며 반드시 죽음으로 국가의 은혜를 보답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군사를 일으키던 날에는 희생(犧牲)을 잡아 사사(社祠)에 제사를 지내고 맹세를 고한 뒤 떠났는데, 고을 사람들이 그의 충의(忠義)에 감복하였다. 뒷날 조정에 아뢰어 관직을 추증하고 정문(旌門)을 세웠다.
왜장(倭將)이 또 대군(大軍)을 출동시켜 이치(梨峙)를 침범하자 권율이 황진을 독려하여 동복현의 군사를 거느리고 편비(偏裨)038) 위대기(魏大奇)·공시억(孔時億) 등과 함께 재를 점거하여 크게 싸웠다. 적이 낭떠러지를 타고 기어오르자 황진이 나무를 의지하여 총탄을 막으며 활을 쏘았는데 쏘는 대로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종일토록 교전하여 적병을 대파하였는데, 시체가 쌓이고 피가 흘러 초목(草木)까지 피비린내가 났다. 이날 황진이 탄환에 맞아 조금 사기가 저하되자 권율이 장사들을 독려하여 계속하게 하였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 왜적들이 조선의 3대 전투를 일컬을 때에 이치(梨峙)의 전투를 첫째로 쳤다. 이복남·황진은 이 전투로 이름이 드러났다. 왜적이 웅치(熊峙)의 전진(戰陣)에서 죽은 시체를 모아 길가에 묻어 몇 개의 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조선의 충간의담을 조위한다[吊朝鮮國忠肝義膽].’라고 썼다.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622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註 038]편비(偏裨) : 부장(副將).
○全羅節制使權慄遣兵敗倭賊于熊峙, 金堤郡守鄭湛死之。 倭兵又犯梨峙, 同福縣監黃進敗之。 是時, 賊自錦山踰熊峙, 欲入全州之境。 羅州判官李福男與黃璞、鄭湛等, 據險迎擊, 監司李洸遣兵助戰。 賊先鋒數千, 放丸麾劍直前, 福男等冒死血戰, 射殪無算, 賊敗却。 翌曉, 賊擧軍大至, 彌漫山谷, 銃火如雷。 福男等鏖戰一陣, 不敵而退, 黃璞軍潰, 入福男陣。 鄭湛自初力戰, 親射殺紅旗下白馬賊將, 賊披靡而郤。 旣而羅州軍退, 湛孤軍被圍, 將佐勸湛退陣, 湛曰: "寧殺一賊而死, 不忍奉身而走, 使賊長驅也。" 堅立不動, 發矢必中。 俄而賊兵四圍, 兵皆散逸, 湛力詘死之, 從事官李葑亦死之。 福男退屯嶺下安鎭院, 賊知有備, 不敢踰嶺而止。 湛自聞君上播越, 嘗涕泣奮憤, 誓以必死報國。 發兵之日, 殺牲祭社, 告誓而行, 郡人感其忠義。 追聞于朝, 贈官旌門。 倭將又擧大軍犯梨峙, 權慄督黃進提縣兵, 與偏裨魏大奇、孔時億等, 據峴大戰。 賊攀厓而上, 進依樹禦丸, 射矢如破, 發無不中。 終日交戰, 賊兵大敗, 伏尸流血, 草木爲之腥臭。 是日進中丸少沮, 慄督將士繼之, 故得捷。 倭中稱朝鮮三大戰, 而梨峙爲最。 李福男、黃進由此著名。 賊聚熊峙陣亡之尸埋路邊, 作數大塚, 書其上曰: "弔朝鮮國忠肝義膽。"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622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