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군 송인의 졸기
여성군(礪城君) 송인(宋寅)이 졸하였다. 송인의 자는 명중(明仲)이고 호는 이암(頤庵)인데 영의정 송일(宋軼)의 손자이다. 중종의 세째 딸 정순 옹주(貞順翁主)에게 장가들었는데, 송일의 훈공을 물려받아 봉군(封君)되었다. 송인은 사람됨이 단정하고 순수하고 겸손하고 근실하였으며 호화로운 환경에서도 가난한 사람처럼 살았다. 계모를 지성으로 섬겨 효도로 이름났다. 거상(居喪) 때에 잘 견디지 못할까 미리 걱정하여 평상시에 하루 걸러 담박한 음식을 먹었다. 놋쇠 그릇으로 요강을 만들지 않았는데, 이는 뒷날 망가져 사람들의 음식 그릇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였다.
젊어서부터 경학(經學)에 통달하고 예학(禮學)에 익숙하여 명유 이황·이이 등과 강론하였다. 문장이 뛰어나고 해서(楷書)를 잘 써서 한 시대의 으뜸이었는데, 공사간의 금석문(金石文)은 모두 그에게 부탁할 정도였다. 풍채가 빼어난데다 예절에 익숙하였으므로 대신 노수신 등이 매양 송인이라면 파격적으로 종백(宗伯)을 삼거나 문형(文衡)을 맡길 만하다고 평하였다. 그래서 조사(詔使)가 올 적에는 영위사(迎慰使)로 삼기를 계청하였으니, 그로부터 의빈(儀賓)중에 문장이 뛰어난 사람이면 영위사가 될 수 있었는데, 송인의 이름이 항상 종척(宗戚) 중에 으뜸으로 꼽혔다.
이때에 죽었는데 향년은 69세이고 시호를 문단(文端)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18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539면
- 【분류】인물(人物) / 왕실-비빈(妃嬪)
○朔乙亥/礪城君 宋寅卒。 寅字明仲, 號頣庵。 領議政軼之孫, 尙中宗第三女貞順翁主, 襲軼勳嫡封君。 寅爲人端粹謙謹, 處華腴如寒素。 事繼母以孝聞。 預憂居喪不勝, 嘗間日淡食, 不以銅鍮爲溲器, 慮後日破爲人飮食器也。 自少通經服禮, 與名儒李滉、李珥等講論。 工於文辭, 楷法冠一時, 公私金石之文皆屬筆。 儀采丰秀, 禮節閑習。 大臣盧守愼等每論, 寅可破格爲宗伯、典文衡, 詔使之來, 啓請爲迎慰使。 自是儀賓有文翰人, 通得爲迎慰使, 而寅之名, 常爲宗戚之首。 至是卒, 年六十九。 追謚文端。
- 【태백산사고본】 4책 18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5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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