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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17권, 선조 16년 2월 1일 갑신 6번째기사 1583년 명 만력(萬曆) 11년

적호가 훈융진을 포위 공격하매 신립·이박이 구원하다

적호(賊胡)가 훈융진(訓戎鎭)을 포위하고 충교(衝橋)를 만들어 사면으로 성을 공격하니, 첨사 신상절(申尙節)이 밤낮으로 항거하며 싸웠으나 화살이 떨어지고 힘이 다하여 성이 장차 함락될 지경이었다. 그때 온성 부사 신립이 유원 첨사(柔遠僉使) 이박(李璞)황자파(黃柘坡)에서 사잇길로 달려와 포위를 뚫고 들어가 한 개의 화살로 적의 추장을 쏘아 죽였다. 이에 신립의 얼굴을 알아보는 호인들이 서로 놀라며 말하기를 ‘온성(穩城)의 영공(令公)이다.’하면서 활을 휘두르며 물러갔다. 상절도 문을 열고 나와 공격하면서 신립과 합세하여 기세를 타고 적을 추격해서 70급을 베고, 곧바로 그들의 부락까지 쳐들어가 소굴에 불을 지르고 돌아왔다.

이때 경원(慶源)·종성(鍾城)·회령(會寧) 등 진(鎭)의 번호가 모두 배반하였으나 온성의 번호만은 배반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신립의 무용(武勇)에 승복했기 때문이었다. 신립은 평소에 철기(鐵騎) 5백여 명을 훈련시켜 사냥을 하며 전술을 익히게 하고 연안에서 치돌(馳突)하는 연습을 시켰는데 그 빠르기가 귀신같았다. 이 광경을 오랑캐들이 모두 모여서 구경하였던 것이다.

당시 태평 세월을 오래도록 누린 나머지 군사들이 싸울줄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성벽이나 지키면서 마치 먼 거리의 과녁을 맞추는 것처럼 활을 쏠 뿐이었다. 그래서 적이 혹시라도 육박전을 하며 성에 올라오기라도 하면 모두 겁에 질려 활을 제대로 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신립이 칼날을 무릅쓰고 육박전을 벌이며 싸울 때마다 공을 세우는 것을 보고 변방의 군사가 비로소 분발하여 이에 과감하게 야전(野戰)을 벌여 적을 공격했으니, 육진을 보전하여 지킬 수가 있었던 것은 신립이 앞장서서 용맹을 떨쳤기 때문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4책 17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510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군사-전쟁(戰爭)

    ○賊訓戎鎭, 作衝橋, 四面攻城, 僉使申尙節晝夜拒戰, 矢盡力竭, 城將陷。 穩城府使申砬, 與柔遠僉使李璞, 從黃柘坡, 間道直馳, 突圍以入, 以一箭射殪賊酋, 人識面者, 相驚曰: "穩城令公也。" 揮弓而退。 尙節亦開門出擊, 與乘銳追賊, 擊斬七十級, 直擣其部落, 焚穹廬而還。 是時, 慶源鍾城會寧等鎭藩胡皆叛, 獨穩城胡不叛, 蓋服武勇也。 常時, 練鐵騎五百餘名, 校獵習戰, 沿江馳突, 捷疾如神, 胡人皆聚觀之。 時, 昇平日久, 兵不知戰, 但守埤放矢, 如射帿然。 賊或肉薄登城, 則皆恇惑, 不能發失。 及見接刃摶戰, 戰比有功, 邊兵始奮勵, 乃敢野戰擊賊, 得保守六鎭, 由倡勇也。


    • 【태백산사고본】 4책 17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510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군사-전쟁(戰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