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수정실록15권, 선조 14년 2월 1일 을미 7번째기사
1581년 명 만력(萬曆) 9년
전 판서 박충원의 졸기
전 판서 박충원(朴忠元)이 졸하였다. 충원은 문명(文名)으로 벼슬길에 진출하였으나 임백령(林百齡)에게 미움을 받아 영월 군수로 쫓겨났다. 영월에 요사스런 일이 발생하여 여러 명의 관리가 갑자기 죽는 일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노산군(魯山君)의 빌미라고 하였다. 그러자 충원이 제문(祭文)을 지어 묘소에 제사를 올렸는데 그 제문에 ‘왕실의 원자로서 어리신 임금이었네. 청산의 작은 무덤 만고의 쓸쓸한 혼이로다.’ 하였다. 그 뒤로 이 제문을 축문으로 사용하였다. 충원이 6년 동안 군수로 있었으나 끝내 탈이 없었고 요사스런 말도 사라졌는데 사람들이 이 일로 인하여 그를 칭송하였다. 그런데 문형(文衡)002) 의 자리에 있으면서 허국(許國)·위시량(魏時亮) 두 조사(詔使)를 영접할 때 문사(文詞)가 졸렬하여 비웃음을 받았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만호 대제학(萬戶大提學)’이라고 하였다. 양조(兩朝)의 벼슬을 역임하면서 시세의 흐름에 따라 처신하였으므로 청의(淸議)가 흠스럽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3책 15권 3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491면
- 【분류】인물(人物)
- [註 002]문형(文衡) : 대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