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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 2권, 선조 1년 2월 1일 신사 3번째기사 1568년 명 융경(隆慶) 2년

우의정 민기의 졸기

우의정 민기(閔箕)가 졸하였다. 민기는 비록 시론(時論)의 추중을 받기는 하였으나 성색(聲色)을 좋아하고 산업(産業)을 일삼아 사람들의 기롱을 사기도 하였다. 재상의 지위에 오르자 겉으로는 사론(士論)을 붙잡아 세운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실상 사세를 관망하며 저해하였는데, 그를 모르는 자는 어진 재상이라고 하였다. 허엽(許曄)이 언젠가 이준경을 배알하니, 준경이 말하기를, ‘지금 모두들 도학(道學)하면 조광조(趙光祖)를 추존하면서 박영(朴英)·정붕(鄭鵬)에 대하여는 세상에서 아는 이가 없다.’ 하니, 【박영·정붕은 다 선산(善山)사람으로서 역시 유자(儒者)란 이름으로 남에게 추중을 받았었지만 광조에 비한다면 그만 못하였다.】 허엽이 말하기를, ‘· 두 사람뿐만 아니라 근일 민기의 학행(學行)에 대하여도 사람들이 그를 아는 이가 없다.’ 하였다. 준경이 그의 비교가 걸맞지 않음을 괴이하게 여기자, 허엽이 말하기를, ‘민공(閔公)이 경상(卿相)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추앙을 않는 것이다. 만약 청량산(淸涼山) 【이황(李滉)이 있는 곳.】 이나 지리산(智異山) 【조식(曺植)이 있는 곳.】 에 가 있으면 경상의 자리에 있는 명망보다 더 존중을 받을 것이다.’ 하였는데 준경이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허엽은 조정에 있는 까닭으로 조식·이황과 명망이 가지런하지 않다고 여겨왔었으니, 이 말은 사실 자신을 두고 한 말이다.】

민기가 이조 판서로 있을 때 이이(李珥)가 낭관(郞官)이었는데 언제나 전선(銓選)을 공평히 함으로써 청탁의 길을 막으려 하면, 민기는 곧 너무 지나치게 하다가 일을 발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경계하였다. 이에 이이가 사람에게 말하기를, ‘민공(閔公)이 어진 재상이기는 하나 다만 소인(小人)을 두려워할 뿐 군자(君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니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었다. 이이가 대답하기를, ‘민공이 만약 군자에게 죄를 얻는다면 현반(顯班)에다 두지 않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나 소인은 성품이 각박하여 만약 서로 거슬렸을 경우 혹 멸족(滅族)의 화도 당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민공은 소인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였다. 식자들은 민기를 일러 섭세(涉世)의 재주가 뛰어났다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3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408면
  • 【분류】
    인물(人物)

○右議政閔箕卒。雖爲時論所推, 而好聲色、治産業, 人或譏之。 旣登相位, 外爲扶植士論, 而內實顧望沮撓, 不知者稱爲賢相焉。 許曄嘗謁李浚慶, 浚慶曰: "今皆以道學, 推趙光祖, 而朴英鄭鵬世無知者。" 【英、鵬皆善山人, 亦以儒名, 非不見重, 而比之光祖則下矣。】 曰: "不特二人, 近日閔箕學行, 人亦無知者。" 浚慶怪其比擬不倫, 曰: "閔公居卿相位。 故, 人不推仰。 若居淸涼山 【李滉所居。】智異山, 【曺植所居。】 當加尊重, 豈止相望而已?" 浚慶不以爲然。 【曄自以在朝, 故, 已不得與曺、李齊名, 實自喩也。】 閔箕之判銓也, 李珥爲郞, 每欲銓選以公, 以防請託之路, 輒戒勿過越生事。 語人曰: "閔公固賢相, 但畏小人, 而不畏君子。" 人問其故, 曰: "使閔公得罪於君子, 不過不置顯班而已, 小人性刻, 若相忤則或有滅族之禍, 故閔公畏之。" 識者以爲工於涉世矣。"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3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408면
  • 【분류】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