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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220권, 선조 41년 1월 26일 갑인 3번째기사 1608년 명 만력(萬曆) 36년

정언 구혜가 전 참판 정인홍·전 사인 이경전·전 정랑 이이첨의 귀양을 요청하다

정언 구혜가 내계하기를,

"신들이 삼가 정인홍의 상소를 보니, 그 뜻은 대개 유영경을 모함하려고 하는 것인데 임금을 동요시키고 지친(至親)을 이간시킨 정상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예로부터 소인이 집정자를 모함하고 자기의 사사로운 일을 성취시키고자 한 자가 한없이 많지만 이처럼 지극히 흉악하고 교활한 자는 있지 않았습니다. 저 인홍은 남의 사주를 들어 시행한 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는 실로 몹시 간사한 자가 흉계를 품고 유언 비어를 날조하여 초야(草野)에 있는 사람의 손을 빌어 남몰래 흉악한 계책을 성취시키려고 한 것이니 몹시 애통한 일입니다.

신들이 듣건대 작년 초겨울 성후가 미령하여 전섭(傳攝)한다는 명을 내릴 때, 약방(藥房)이 약을 잘못 썼다는 말과 전섭(傳攝)을 방계(防啓)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말이 모두 이산해(李山海)의 집에서 나왔으며, 이경전(李慶全)·이이첨(李爾瞻)의 무리가 낮에는 흩어지고 밤에는 모여 백방으로 모함을 꾀한 것은 입이 있는 자는 모두가 말하고 귀가 있는 자는 모두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유경종(柳慶宗)에게서 약을 잘못 썼다는 논란이 갑자기 이때에 나왔으니, 경종은 바로 그들의 붕당(朋黨)입니다. 일국의 공론이 모두 이경전이이첨의 흉계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으므로 그때 대간의 계사(啓辭) 중에 이른바 뜻을 잃은 무리라고 한 것은 이를 지적하여 말한 것인데, 군자가 소인을 다스릴 때에는 항시 너무 후하여 우선 그대로 두고 논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음흉한 무리들이 흉악함을 반성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계책을 성취시키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겨 또 근거가 없고 불측한 말로 남몰래 인홍에게 사주하였으니, 인홍은 바로 산해(山海)의 심복입니다. 한 번 그 말을 듣고는 소매를 걷어 올리고 일을 도맡아 터무니 없는 거짓을 꾸미는 데 온갖 힘을 다했고 흉악하고 참혹한 말을 하는데 조금도 꺼리는 바가 없었으며, 영경 한 사람을 모함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하로서 차마 말하지도 듣지도 못할 일로 동요시키고 이간시키는 데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이정원(李挺元)의 상소에 연명한 사람으로 말하면 대부분 그 무리들의 친속(親屬)이니, 이 상소가 그들 무리에게서 나온 것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 계책이 이루어진다면 어찌 사림(士林)에게만 화를 전가시킬 뿐이겠습니까. 종사(宗社)에까지 화가 미칠 것이니, 이를 생각하면 심장이 다 찢어지는 듯합니다.

아, 우리 세자는 천성이 효성스럽고 명위(名位)가 이미 정해졌으며, 위로는 천자에게 아뢰어 천자가 알고 아래로는 팔방(八方)에 고하여 팔방이 추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온 중국 장수들이 몸소 뵙지 않은 자가 없으니 이는 천하가 본 것이고, 무군(撫軍)의 명을 받고 재조(再造)를 도왔으니 공로가 종사에 있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결정하고 천자께서 알며 천하가 보고 종사가 의탁하였으니, 위태로운 시기에 선위(禪位)한다는 전교를 내려 근본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계획은 전하의 원대한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까. 사부에게 간절히 유시하여 전교를 내릴 때 지성으로 임금의 뜻을 돌이키도록 한 것은 세자의 효성스러운 심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하의 전교와 세자의 말은 비록 문왕(文王)의 지극한 사랑과 지극한 효도라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때를 당하여 설령 인홍의 무리들이 곁에 있었다 한들 아무 말없이 전교를 받들기만 하고 방계(防啓)하지는 않았겠습니까. 아니면 운운한 것처럼 순종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심사를 추구해 보건대 만약 다른 일로 영경을 모함하면 해치지 못하고 반드시 부자간(父子間)의 일로 임금의 마음을 동요시킨 뒤라야 이에 제거할 수 있다 여겨 마침내 근거없는 말로 불측한 화를 구성하여 시배(時輩)를 모두 없애버리겠다고 스스로 생각하였으니, 만약 전하와 같은 아버지, 세자와 같은 아들이 아니었다면 양궁(兩宮)이 틈이 생기지 않았겠으며 사류가 어육(魚肉)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임금이 신하에 대하여 간사한 자 모르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알면서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간흉들이 더욱 꺼리는 바가 없어 장차 계속하여 일어나 반드시 국가를 전복시키고야 말 것입니다. 양궁을 이간시키고 사림에게 화를 전가시킨 그들의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 참판 정인홍, 전 사인(舍人) 이경전(李慶全), 전 정랑 이이첨을 아울러 우선 멀리 귀양을 보내어 국시(國是)를 정하고 인심을 진정시키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6책 220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390면
  • 【분류】
    왕실(王室)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 / 왕실-국왕(國王)

○正言具寭來啓曰: "臣等伏見鄭仁弘之疏, 其意蓋欲構陷柳永慶, 而其動搖君父, 離間至親之狀, 不一而足。 自古小人之謀陷當事, 圖濟己私者何限, 而未有若此之至兇且巧者也。 彼仁弘不過被人指嗾, 而爲之者耳, 此實大姦人含沙伺影, 捏造流言, 假手草野之人, 陰售鬼蜮之謀, 可勝痛哉? 臣等聞, 上年冬初, 聖候未寧, 傳攝命下之日, 藥房用藥失當之言、傳攝防啓不當之說, 皆出於李山海之家, 而李慶全李爾瞻輩, 晝散夜聚, 百端謀陷之計, 有口皆言, 有耳皆聞矣。 柳慶宗用藥失當之論, 遽發於此時, 慶宗卽其餘黨也。 一國公論, 皆知其出於慶全爾瞻之兇計, 故其時臺諫啓辭中, 所謂失志之徒, 指此以言, 而君子之治小人, 常失於厚, 姑置而不論矣。 鬼怪之輩, 不唯不懲其惡, 憤其計之不得售, 又以無形不測之說, 陰嗾仁弘, 而仁弘山海之腹心也。 一聽其言, 攘臂當之, 構虛捏無, 不遺餘力; 兇辭慘說, 略無顧忌。 不但構陷一永慶而已, 至以人臣不忍言、不忍聞之事, 動搖離間, 無所不至。 至於李挺元上疏聯名之人, 多是其黨之親屬, 則此疏之出於此輩, 亦可知矣。 若使此計得售, 則豈但嫁禍於士林? 亦將禍及於宗社。 言念及此, 心膽俱裂。 噫! 我世子仁孝出天, 名位旣正, 上聞天子, 天子知之也; 下誥八方, 八方戴之也。 東征將士, 莫不親覩, 天下見之也; 受命撫軍, 贊成再造, 功在宗社也。 殿下定之, 天子知之, 天下見之, 宗社託之。 故 降敎傳禪於危疑之日, 益固根本之計者, 非出於殿下遠大之圖耶? 懇諭師傅, 血誠回天於下敎之時者, 非出於世子誠孝之感耶? 殿下之敎, 世子之辭, 雖文王之止慈、止孝, 無得以加矣。 當此之時, 設令仁弘輩在傍, 其將無辭承奉, 而不爲防啓乎? 抑將不爲將順, 如所云云乎? 原其心事, 若以他事, 謀永慶則不足以陷之, 必以父子間事, 動君父之心, 然後乃可除也。 遂以無形之說, 構成不測之禍, 自謂 一擧網而時輩赤矣。 若非 殿下爲父, 世子爲子, 兩宮不幾於有間, 士類不幾於魚肉乎? 人主之於臣下, 不患不知其姦, 旣已知之, 而不能討, 則姦兇益無所憚, 將接迹而起, 必至於覆國而後已。 其離間兩宮, 嫁禍士林之罪, 不可不治。 請前參判鄭仁弘、前舍人李慶全、前正郞李爾瞻竝命爲先遠竄, 以定國是, 以鎭人心。" 答曰: "依啓。"


  • 【태백산사고본】 116책 220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390면
  • 【분류】
    왕실(王室)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