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진의 부병과 길주 이북의 속오군을 토병으로 모집 할 것 등에 관해 함경도 순검 어사 강홍립이 치계하다
함경도 순검 어사(咸鏡道巡檢御史)인 홍문관 수찬 강홍립(姜弘立)이 치계하기를,
"근일의 변보(邊報)는 감사와 병사가 이미 모두 치계하였으니 신이 감히 낱낱이 들어 진달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본도의 군정(軍情)은 지난해 상패(喪敗)한 이후 더욱 위축되어 위태로움이 날이 갈수록 심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조석(朝夕)을 보존할 수 없다는 헛된 소문이 떠돌고 있습니다. 변정(邊情)이 이와 같으니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이것은 대개 오랑캐들이 강성하여 반드시 국경을 침범할 형세가 있는데다 우리의 병력은 단약(單弱)하여 위급할 때 버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변상(邊上)에 당당히 적을 방어할 만한 형세가 없은즉 백성이 믿고 의지할 곳이 없으니 의혹을 갖는 것은 형편상 필연적인 것입니다.
신은 삼가 살피건대, 도내의 군사는 정군(正軍) 이외에 속오군(束伍軍)과 삼수군(三手軍)이 있는데, 실상은 모두가 역(役)이 있는 사람이고 모두가 농민입니다. 징발하기 어려움과 정예롭지 못한 점은 남방 입방군(入防軍)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북변에 있는 각 고을 군사는 추위를 견디는 참을성이 남쪽 고을 보다는 약간 나으나 역시 모두 기계가 갖추어지지 않았고 기예(技藝)가 미숙하며 춥고 배고픔에 시달리어 군대다운 위용이 없습니다.
육진(六鎭)의 토병은 본디 정병(精兵)이라고 칭하나 현재 전마(戰馬)가 있어 전진에서 버틸 만한 자는 통틀어 수백 명에 불과합니다. 수백 명의 군사를 다 합쳐 지킨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부족할까 걱정인데 각기 지방을 지키고 있으니 매우 엉성합니다. 사변이 발생하더라도 결코 이를 힘입어 성사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군대를 주관하는 사람은 부득이 매번 증병(增兵)의 요청이 있는데 변방에 들어가 수어(守禦)하는 남군이 매년 2천∼3천 명을 밑돌지 않으나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오랑캐의 실정을 몰라서 한 번 소식을 들으면 벌벌 떨면서 어쩔 줄 모릅니다. 정장(精壯)한 남군이 피잔(疲殘)한 토병만도 못하니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면 오늘의 사세는 토병을 모집하는 이외에 다시 다른 묘책이 없습니다.
길주(吉州) 이북의 속오군은 남에게 고공살이하는 장정들입니다. 만일 법을 만들어 모집한다면 수천 명의 군사는 하루도 안 되어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모적(募籍)에 오른 사람은 공사천(公私賤)을 막론하고 모두 토병을 만들면 토병의 위세가 진작될 것입니다. 신은 듣건대 ‘남군이 부방(赴防)할 때 기마병은 말값을 민간에게 내도록 요구하고 뒤따르는 비용과 식량의 준비도 면포(綿布) 수십 필을 밑돌지 않으며 보군(步軍)의 비용도 10여 필을 밑돌지 않는다.’ 하니, 이 남군의 말 값을 토병에게 주어 말을 사게 하고 치장(治裝)하는 비용을 토병에게 주어 의복을 갖추게 하고 남군이 먹을 식량을 토병의 식량으로 삼는다면, 남군은 멀리 부방한다는 원망이 없을 것이고 열읍(列邑)은 맞이하고 보내는 폐단이 없을 것이고 각도는 징발하는 소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토병은 의식(衣食)과 전마(戰馬)가 있어서 병사는 배불러 노래부르고 말은 마구에서 뛰노는 것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군민(軍民)의 소원이 이같을 뿐 아니라 장수들도 모두 이렇게 말합니다. 신이 이미 들은 바가 있어 부득이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니 모병(募兵)과 조련(操練)·성행(聲行)의 절목을 특별히 순찰사·병사·방어사 등으로 하여금 회동(會同)하여 의논한 다음 조목조목 기록, 계문하여 시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황공하게 감히 품달합니다."
하니,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5책 21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366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군사-지방군(地方軍) / 군사-부방(赴防) / 군사-휼병(恤兵) / 신분-천인(賤人) / 물가-운임(運賃)
○咸鏡道巡檢御史弘文館修撰姜弘立馳啓曰: "近日邊報, 監、兵使已盡馳啓, 臣不敢枚擧陳達, 而本道軍情, 先年喪敗之後, 窮縮危迫, 日以益甚。 以此, 訛言流行, 莫保朝夕。 邊情如此, 良可寒心。 此蓋彼虜方强, 狺然有必犯之形, 而在我兵力單弱, 緩急無以抵當故也。 邊上旣無堂堂禦敵之勢, 則民情無所依恃, 旣惑且疑, 勢所必然。 臣伏見道內軍兵, 正軍之外, 又有束伍、三手, 而其實皆是有役之人; 其實皆是農民, 徵發之難, 不精之甚, 無異於南方入防之軍。 迤北各官軍兵, 則耐寒堅忍之性, 稍勝於南官, 亦皆器械不備, 技藝未熟, 飢寒困窮, 不似軍容。 六鎭土兵, 素稱精兵, 而卽今有戰馬, 可堪戰陣者, 通共不過數百。 以數百之卒, 合而守之, 猶患不足, 各守地方, 甚爲零星。 雖有事變, 決難賴此而濟事。 故主兵之人, 不得已每有添防之請, 南軍之入守邊上者, 年年不減二三千之數, 而不能耐寒, 不知虜情, 一聞聲息, 戰慄失措, 南軍之精壯, 不如土兵之疲殘。 以此見之, 今日事勢, 除非募集土兵之外, 更無他策。 吉州以北束伍軍人, 乃閑遊丁壯之爲人雇工者。 若然設法募聚, 則數千之兵, 不日可得, 其隷募籍之人, 勿論公私賤, 皆爲土兵, 則土兵之勢, 庶有振作之路。 臣竊聞, 南軍赴防之時, 騎兵則責辦馬價於民間, 隨身資糧之備, 不下綿布數十匹, 步軍所費, 亦不下十餘匹云。 以此南軍之馬價, 給土兵買馬; 以此治裝之資, 給土兵衣服; 以南軍所食之糧, 爲土兵之食, 則南軍無遠涉之怨; 列邑無迎送之弊, 各道無徵發之擾, 而土兵有衣食、有戰馬, 士飽而歌, 馬騰於槽, 或可見之。 不但軍民之願如此, 將領之人亦皆如是言之。 臣旣有所聞見, 不得不冒昧陳稟, 其募兵、操練、聲行節目, 特令巡察使、兵使、防禦使等官, 會同討議, 逐一開錄, 啓聞施行何如? 惶恐敢稟事。" 啓下備邊司。
- 【태백산사고본】 115책 21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366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군사-지방군(地方軍) / 군사-부방(赴防) / 군사-휼병(恤兵) / 신분-천인(賤人) / 물가-운임(運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