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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216권, 선조 40년 9월 3일 계사 4번째기사 1607년 명 만력(萬曆) 35년

비변사에서 노추의 대군에 대비해 삼수와 감영 병사 파견, 함흥과 재덕 산성·성진 산성 경비 강화 등을 건의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지금 함경 감사 장만(張晩)과 병사 유형(柳珩)의 장계를 살펴보면 노추(老酋)의 대군이 벌써 여포차(汝包車)에 도착한 것 같은데, 보을하(甫乙下)의 치보(馳報)를 살펴보면 ‘말을 탄 호인(胡人)들이 수하(水下)의 길로 줄을 지어 내려갔다.’ 하니, 그렇다면 군대를 두 패로 나누어 내려간 듯 합니다. 적이 지향하는 곳에 대하여는 아직 확실한 보고가 없다고 하더라도 대적이 이미 우리 경내에 가까이 와 있으니 우리는 적에 대한 대책과 방비를 조금도 늦출 수 없습니다. 순찰사는 남관(南關)의 삼수(三手)와 감영에 소속된 아병(牙兵)·무사(武士)를 징발하여 속히 전진시켜 성원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어제 계하한 도감 포수는 군장(軍裝)을 꾸린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특별히 재촉하여 수일 내에 보내도록 하소서. 경성(鏡城) 신 판관(判官) 이괄(李适)은 부임하는 것이 하루가 시급하니 해조(該曹)로 하여금 교대(交代)를 면제하고 재촉하여 들여보내게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지난번 번호(藩胡)의 진고(進告)에 이른바 ‘경성함흥(咸興) 두 길로 곧바로 나간다.’고 한 말은, 우연히 전해지는 말에 비길 것이 아닙니다. 오랑캐 중에는 이렇듯 흉계를 꾸미는 자가 있어서 종전부터 우리 나라의 형세를 살펴보고서 이런 말을 한 것이니 우리는 임기 응변하여 주밀하게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육진(六鎭)에 성식(聲息)이 있어서 순찰사를 북로(北路)에 진주(進駐)시킨다면 함흥 일대를 방어하는 일이 매우 소략하게 될 것입니다. 듣건대, 함흥은 이미 토성(土城)을 신축하였고 수비도 대략 완비되었다 하니, 남도 방어사(南道防禦使)로 하여금 순찰사의 절제(節制)를 받아서 함흥에 주차(駐箚)하여 남쪽 고을의 남은 병사를 수습하여 굳게 지킬 계획을 세우게 하고, 또 정평 부사(定平府使) 윤홍(尹鴻)을 보내어 약간의 정예병을 뽑아 주어 별해보(別害堡)로 통하는 길을 지키게 하여 의외의 환란을 방비하게 해야 합니다.

명천(明川)재덕 산성(在德山城)길주(吉州)성진 산성(城津山城)도 이미 보수가 끝났으니 이 두 산성을 굳게 지킨다면 북로(北路)의 보장(保障)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산 찰방(居山察訪)이 성진 산성에 입주(入駐)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미 계하하셨습니다. 그러나 찰방 박명부(朴明榑)는 백면 서생으로 병법을 익히지 않았으니 위급한 시기에 장수로 삼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박명부를 체직하고 품질이 높은 무관 가운데에서 사려가 깊고 장수가 될 만한 자를 직질(職秩)의 높낮음을 가리지 말고 각별히 가려 찰방에 임명하여 그로 하여금 관할의 역졸을 수습하게 하소서. 그리고 길주 경내(境內) 성진 부근의 병력을 헤아려 주게 하소서. 재덕 산성은 순찰사의 부장(副將) 중에서 직질이 높고 재략이 있는 자를 별장(別將)이라고 호칭하고 본부(本府)의 민병(民兵)을 헤아려 주어 각각 성안으로 들어가 지키고 있다가 형세를 보아 서로 연락하게 하면 혹시 갑작스런 환란이 있더라도 대항하여 막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뜻을 순찰사와 남북도의 병사·방어사에게 함께 알리는 것이 마땅하겠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였는데,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5책 216권 2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361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통신(通信) / 군사-관방(關防) / 외교-야(野) / 인사-임면(任免)

○備邊司啓曰: "今見咸鏡監司張晩、兵使柳珩狀啓, 老酋大軍, 似是已到汝包車, 而以甫乙下馳報見之, 騎馬胡人水下之路, 魚貫而下云, 若然則亦似有分兵下去之狀。 賊之指向處, 雖未有的報, 而大賊已逼於我境, 在我策應防備, 不少有緩忽。 巡察使調出南關三手及營下牙兵、武士, 速爲前進, 以爲聲援宜當。 昨日啓下都監砲手, 裝束已久, 別爲催督, 數日內發送。 鏡城新判官李适, 赴任一日爲急, 令該曹除交代, 催促入送爲當。 前日藩進告所謂: ‘直出鏡城咸興兩路’ 之說, 此非偶然傳說之比。 如是虜中有兇計者, 從前揣摩我國形勢, 爲此言也。 在我應變, 不可不周密處之。 六鎭如有聲息, 而巡察使進駐於北路, 則咸興一帶守禦之事, 甚爲疎虞。 聞, 咸興土城已爲新築, 守備亦且粗完。 令南道防禦使, 聽巡察使節制, 駐箚於咸興, 收拾南官餘兵, 以爲堅守之計。 且遣如定平府使尹鴻, 抄給若干精銳, 把截別害之路, 以防意外之患爲當。 明川 在德山城吉州 城津山城亦已修完, 此兩城若能堅守, 則亦可謂北路之保障, 而居山察訪入駐城津山城事, 曾已啓下定奪矣。 但察訪朴明榑書生, 不閑軍旅, 緩急恐難爲將。 朴明榑遞差, 以秩高武弁中, 有計慮堪爲將領者, 勿論職秩高下, 各別擇授察訪, 使之收拾所管驛卒。 而且量給吉州境內城津附近之兵。 在德山城則巡察使偏裨中, 秩高有才略者, 別將稱號, 量給本府民兵, 使各入守, 形勢連絡則脫有倉卒之患, 庶可控扼而沮遏。 此意巡察使、南ㆍ北道兵、防禦使處, 幷爲行會宜當。 敢啓。" 傳曰: "允。" 【嗚呼晩矣!】


  • 【태백산사고본】 115책 216권 2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361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통신(通信) / 군사-관방(關防) / 외교-야(野)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