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등의 곡식·전세의 조운·공물의 수납·곡식 사용 등에 관한 호조의 상소문
호조가 아뢰기를,
"국가에서 세(稅)를 받고 공(貢)을 받아들여 경비에 이바지하는 데는 각기 조리(條理)가 있으니 문란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이 일어난 뒤로 모든 일이 새로 시작되어서 규모(規模)가 서지 않았으므로 구차함이 예(例)가 되었는데 지금까지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을 추려 말하면 사도시·풍저창·내자시·내섬시·예빈시·양현고·광흥창·군자감 등 항목의 미면(米麪)입니다. 해사(該司)에서 받아들이는 전세(田稅)는 각기 연조(年條)가 있어 진성(陳省)에 기록하는 것이니 마땅히 장부를 들고 수납(收納)해야 하는데도 조운(漕運)하여 강(江)에 도착하면 창리(倉吏)가 분주하게 오가며 이 창고의 사람은 저 창고에 바치는 것을 빼앗으려 하고, 저 창고의 사람은 이 창고에 바치는 것을 빼앗으려 하여, 정공(正供)의 국세(國稅)가 도리어 모리배의 다투는 단서가 되고 있으니, 한심합니다.
옛날에 이른바 분창(分倉)이라는 것은 군자감(軍資監)에 삼감(三監)이 있어 군자조(軍資條)의 전세(田稅)를 삼감에 나누어 납입하도록 설치한 것이니 어찌 오늘날처럼 각창에 바치는 것을 모두 돌려서 쓰는 것과 같겠습니까? 간리(奸吏)들이 인연하여 부서(簿書)를 훔치는 것이 간혹 이에 말미암고 있습니다. 매년 각도(各道)에서 수조안(收租案)을 올려 보내면 해조에서 세입(稅入)의 증감(增減)을 조사하여 한결같이 진성(陳省)에 의하여 각창에 나누어 보내 법에 따라 받아들이고 자문(尺文)056) 을 만들어 주어 전처럼 마음대로 이송(移送)하지 못하도록 하여 세법(稅法)을 신명하는 것이 진실로 편당(便當)합니다.
공물(貢物)에 이르러서는 제용(祭用)·공상(供上)·진헌(進獻)·군기(軍器) 등 각종 바치는 물건을 각기 받아들이는 관청이 있는데 때로는 혹 호조에서 별정(別定)이란 핑계로 직접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이는 필시 당초 각사에서 협잡하는 폐단을 바로잡기 위하여 설치한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관(官)을 설치하고 직(職)을 나누어 각기 관장하는 일이 따로 있는 것이고 보면 해조는 다만 문서를 다루고 검찰(檢察)을 주관해야 할 뿐인데, 받아들이는 것까지 한다면 시간마저 부족할 것이니 사정으로 보아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더구나 서리(胥吏)가 간사한 짓을 하는 것이 어느 곳인들 없겠습니까? 지난날 은자(銀子)를 호조에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데 받아들였다가 끝내 간세(姦細)한 자들에게 도둑질당하였으니, 해조에서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사리를 참작해 보건대 즉시 개혁하여야 합니다.
어람(御覽)에 회부(會付)한 곡식이나 매년의 정세(正稅)는 비록 탁지(度支)가 된 자이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써서는 안 되는데, 근래에는 수령이 감사(監司)에게 보고하고 해조에 점이(粘移)057) 하면, 해조에서는 성지(聖旨)를 품하지 않고 바로 떼어줍니다. 그 사이에 혹 법을 고집하여 허락하지 않는 이가 있으면 도리어 일을 모른다고 비방합니다. 미세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이미 어람을 거쳤으면 해당 관원이 어찌 감히 마음대로 쓸 수 있겠습니까? 지금부터는 한결같이 국가의 곡식은 장계(狀啓)로 품지(稟旨)를 거치지 않으면 마음대로 처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체에 마땅할 듯합니다. 이는 모두 신들의 직분상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이므로 성상께 번거롭게 아뢰는 것이 부당한 듯하나 폐습(弊習)이 이미 고질이 되어 계하(啓下)한 공사(公事)가 아니면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모두 승전을 받들어 통지하여 시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4책 212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345면
- 【분류】재정(財政)
○戶曹啓曰: "國家收稅收貢, 以供經費, 各有條理, 不可紊也。 兵興以來, 庶事草創, 規模不立, 苟簡成例, 因循至今。 撮其大者而言之, 司䆃、豐儲、內資、內贍、禮賓、養賢、廣興、軍資等項米麪。 該司所納田稅, 各有年條, 陳省懸錄, 所當控簿收納, 而漕運到江之後, 倉吏奔走, 此倉之人欲奪彼倉之所納; 彼倉之人欲奪此倉之所納, 正供國稅, 反爲牟利人爭端, 言念寒心。 古之所謂分倉, 軍資有三監, 軍資條田稅, 分入三監之設, 豈如今日, 各倉所納幷皆那移乎? 姦吏之因緣竊簿書, 未必不由於此。 每年各道收租案上送, 自曹査考稅入增損, 一依陳省, 分送各倉, 依法收捧, 尺文成給, 勿許如前擅便移送, 申明稅法, 允爲便當。 至於貢物, 則如祭用、供上、進獻、軍器, 種種該納之物, 各有應納之司, 而時或戶曹諉以別定, 親自收捧者有之。 此必當初, 欲矯各司刁蹬之弊而設也。 然而設官分職, 各有所掌, 該曹但治文書, 主檢察而已, 竝與收捧而自爲, 日亦不足, 勢所難能。 況胥吏之作姦, 何往而不然? 頃日銀子, 戶曹不當捧而捧, 竟被姦細之偸竊, 該曹自捧, 果何益哉? 參以事理, 宜卽革改。 若其御覽會付之穀、每年惟正之稅, 雖身爲度支者, 不當擅用。 而近來守令報監司, 粘移于該曹, 該曹不稟聖旨, 便卽截給。 其間或執法不許者, 反以不解事謗之。 凡物雖微, 旣經御覽, 則該官安敢任意擅用? 自今以往, 一應國穀, 非經狀啓稟旨, 則勿許擅行處置, 其於事體, 亦似宜當。 此皆臣等職分內應行事, 似不當仰煩天聽, 而弊習已痼, 非啓下公事, 將無以捄正。 幷捧承傳, 知會施行何如?" 傳曰: "允。"
- 【태백산사고본】 114책 212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345면
- 【분류】재정(財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