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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203권, 선조 39년 9월 13일 기묘 3번째기사 1606년 명 만력(萬曆) 34년

부사과 전계신 등이 대마도에서 서계와 왜인과의 문답내용을 치계하다

부사과 전계신, 역관(譯官) 사역원 판관(司譯院判官) 이언서(李彦瑞), 부사정 박대근(朴大根)이 치계하였다.

"신들이 8월 17일에 부산(釜山)에 이르러 4경 초에 배를 띄워 한꺼번에 돛을 달고 무사히 바다를 건너 사시말(巳時末)에 대마도(對馬島) 풍기(豐岐)에 이르렀는데 지방의 왜인이 나와 맞이할 뿐이고 별로 기다리는 듯한 상황이 없었습니다. 괴이하게 여겨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상관(上官)이 온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데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세 돛을 바라보고 곧 도주(島主)가 있는 곳에 치보(馳報)하였다.’ 하기에, 신들이 또 묻기를 ‘9일에 먼저 온 배가 있었는데 어찌하여 모른다 하는가?’ 하였습니다. 등왜(藤倭)가 뭍에 내려 인가(人家)를 청소하고 신들에게 들기를 청하고 고하기를 ‘지난번 먼저 온 배는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도주의 의향이 어떠할지 몰라서 답답하고 염려되니, 상관이 바다를 건너 온 본의를 알려 주면 가서 고할 생각이다.’ 하므로, 신들이 대답하기를 ‘너는 우리가 하는 일을 물을 것 없다. 다만 평의지(平義智)에게 아무 상관이 특별히 처치할 일이 있어서 왔다고 치보하면 된다.’ 하였습니다. 등왜가 비선(飛船)으로 떠나고 나서 스스로 도주의 군관(軍官)이라 하는 젊은 왜인이 와서 어채(魚菜)를 바치고 말하기를, ‘저는 마침 회선(回船)을 후망(候望)하는 일 때문에 이곳에 와 있는데 만나보지 않을 수 없으므로 와서 뵙니다.’ 하였습니다.

18일 한낮에 귤지정(橘智正)이 비선으로 달려와 말하기를 ‘어제 망군(望軍)이 신보한 것에 따라 비로소 조선 상관의 배가 왔다는 말을 듣고 달려왔는데, 이제 세 분 족하(足下)를 보니 이 또한 다행이다. 다만 온 뜻을 몰라 몹시 염려되니, 상세한 것을 알려주면 우리의 사생(死生)을 점치겠다.’ 하기에, 신들이 답하기를 ‘이번에 온 것은 다름이 아니다. 땅이 멀리 떨어지고 바다가 가로막혀 진위(眞僞)를 알기 어려우므로 일본의 동정을 다시 탐지해야 너희를 대신하여 만전하게 일을 끝내어 전일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어찌 너희 섬의 복이 아니겠는가.’ 하였습니다.

귤지정이 발끈 노한 기색을 보이며 말하기를 ‘세 분 족하의 뜻을 알았다. 이렇게 오가면 일이 끝날 기약이 없을 것이니, 우리들이 먼저 내부(內府)에 돌아가 말하여 뒷날의 화(禍)를 면하는 것이 옳겠다.’ 하기에, 신들도 노하여 말하기를 ‘그렇다면 너희 마음대로 하라. 우리들은 다시 이 일을 맡지 않고 너희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앉아서 보겠다. 또 우리 나라는 너희 나라와 불공대천의 원한이 있으므로 삼척동자도 화친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제 덕천가강(德川家康)이 풍신수길(豊信秀吉)이 한 짓을 돌이키고 사람들을 잇따라 쇄환(刷還)하고 또 글도 보내고 헌부(獻俘)093) 한다 하기에, 그렇다면 제왕의 도리로서 본디 하나만을 고집할 수 없으므로 우리들을 보내 너희 나라의 진위를 탐지하게 한 것이다. 만약 너희들이 하는 짓이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면 우리가 온 것을 더욱 좋아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귤지정이 말하기를 ‘우리 사정을 알면서 번번이 이렇게 말하니 죽고 싶을 뿐이다. 우리들이 중간에서 속인 일은 없으나 다만 사체(事體)가 지연되어 일이 생기게 될까 염려된다. 또 지난번 내부(內府)의 글을 어렵게 얻어와 이 연유를 귀국에 비보(飛報)하였는데 귀국이 우리 사세가 급박한 것을 헤아리지 않고 세 분 족하를 또 보내어 지연시키려 하니, 이것은 또한 잘못된 생각으로 본디 장구(長久)한 방법이 아니다.’ 하기에, 신들이 대답하기를 ‘그대가 어찌하여 우리 나라의 사정을 경망하게 헤아리고 이렇게 말하는가. 우리들이 배를 타고 바람을 기다릴 때에 너희 섬의 신보를 보았으나 감히 마음대로 중지할 수 없어서 왔다. 그대는 잘 판단하여 앉아서 기회를 잃지 않도록 하라.’ 하였습니다.

귤지정이 말하기를 ‘지난번 내부의 글을 얻어낼 때 내부가 처음에는 허락하려 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어찌 먼저 글을 보내어 구구하게 화친을 청할 수 있겠는가. 」 하고는 도리어 병세(兵勢)를 과장하므로 참으로 작은 염려가 아니었는데, 다행히 총신(寵臣) 정순(政純)의 도움에 힘입어 이 글을 얻어 냈으니, 그 다행함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제 중지하고 나아가서 다시 사정을 탐지한다고 말하면 그가 반드시 일본을 우롱한다고 생각하여 노할 것이다. 노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처럼 차관(差官)이 백 번 간들 백 번 후회를 끼치어 일을 잘못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기에, 신들이 대답하기를 ‘너희 섬이 일을 살피지 않아서 스스로 일을 낭패시킨 것이니, 우리들도 어쩔 수 없다. 의지(義智)를 만나 보고 진퇴(進退)를 상의할 뿐이다.’ 하니, 귤지정이 말하기를, ‘의지와 상의하더라도 내 말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다 박 첨지(朴僉知)가 굳이 이번 행차를 만들어 나를 사지(死地)에 빠뜨리려는 것이니, 또한 어쩔 수 없다.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하였습니다. 드디어 신들에게 가기를 청하므로, 신들이 곧 일어나서 밤새워 배를 타고 가서 19일 오시(午時)에야 비로소 부중(府中)에 이르니, 경직(景直)이 항구에 나와 맞이하여 배 위에서 문안하고 바라보며 읍(揖)하고 갔고, 의지는 문에서 기다렸다가 신들에게 경운사(慶雲寺)에 오르도록 청하였습니다. 그런 뒤에 현소(玄蘇)·의지·경직이 한꺼번에 보러 와서 안부만 묻고 나가고는, 곧 신들을 의지의 집에 청하여 위로연(慰勞宴)을 베풀었습니다.

이날 밤 귤지정이 와서 신들에게 말하기를 ‘어제 강구한 일을 다 좌우에게 말하였더니 좌우 사람들이 모두 노여워하였다. 이번 행차는 말할 수 없이 낭패스럽게 될 것이다.’ 하기에, 신들이 웃으며 대답하기를 ‘우리들은 이미 너희 섬에 들어왔으니 참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어찌하여 낭패라는 말을 하여 협박하는가?’ 하니, 귤지정이 말하기를 ‘어찌 감히 협박하겠는가. 6∼7년 이래로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절박하게 간청한 것은 내부가 노할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일본 국왕의 글이 있어도 일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반드시 내부의 노여움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니, 이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하므로, 신들이 대답하기를 ‘가강이 노하더라도 우리의 도리로서는 본디 구구하게 일을 끝낼 수 없다.’ 하였습니다. 귤지정이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하고 말하기를 ‘이것도 운명이다. 일이 이루어져 가는데 다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끝까지 밀고 가는 것만 못할 것이다. 매우 염려스럽다. 족하가 일본 국왕의 글을 가져다 본 뒤에 곧 조정에 회보(回報)하여 빨리 사신을 보내게 하여 주면 정말 다행하겠다.’ 하기에, 신들이 대답하기를 ‘일본에 온 것은 진실로 오고 싶지 않았으나, 조정에서 내린 명령이므로 어쩔 수 없이 왔다. 너희가 막는다면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니 돌아갈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이미 여기에 왔고 또한 가강의 글을 보기를 청하니, 잠시 그 가부를 보는 것이 옳겠다.’ 하였습니다.

20일 아침에 귤지정이 한 장의 종이를 가져와서 신들에게 비밀히 말하기를 ‘이것은 내부의 글을 베껴 온 것인데, 본 뒤에 조정에 아뢰어서 빨리 사신을 보내게 하면 다행이겠다.’ 하기에, 신들이 그 글을 펴 보았더니 간혹 불손하고 또 도둑을 포박하여 보낸다는 말도 없었습니다. 신들은 이 일을 상관하지 않는 체하며 타이르기를 ‘우리들은 처음부터 이 글 때문에 오지 않았으므로 그대와 굳이 따질 것 없으나, 사세로 말하면 이 글을 우리 나라에 바치더라도 사신을 보낼 리가 만무하다. 그대들이 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들 장난이라 하겠다.’ 하였습니다.

귤지정이 말하기를 ‘지난번 먼저 온 배가 표류하여 일본에 닿아서 이제 비로소 들어왔는데 귀국이 회답한 서계(書契)를 얻어 보니, 글 가운데에 「글을 보내고 포박하여 보낸다면 어찌 서로 보답하는 도리가 없을 수 있겠는가. 」 하는 말이 있었다. 이것으로 보면 조정에서는 이미 허락하였는데 족하가 숨기는 것이다.’ 하기에, 신들이 대답하기를 ‘그대들이 전에 한 가지 일을 우리 나라에 간절히 바랐으므로 우리 나라가 마지못하여 어찌 보답이 없을 수 있겠느냐는 말로 답하였다. 그렇기는 하나 글을 보내기를 청한다는 말은 이 글을 청한다는 뜻이 아니다.’ 하니, 귤지정이 크게 놀라며 말하기를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하기에, 신들이 답하기를 ‘우리들도 모르겠다.’ 하자 ‘이것이 무슨 말인가. 잘 일러주기 바란다.’ 하므로, 신들이 대답하기를 ‘그만둘 수 없으면 고치는 것이 옳겠고 고치고 싶지 않으면 포기하여도 괜찮다.’ 하였습니다.

귤지정이 말하기를 ‘고치기도 매우 어렵고 중지하기도 어려우니, 힘을 다하여 주선하더라도 될 수 있겠는가? 내부가 이 말을 들으면 허락하지 않을 뿐더러 반드시 분노를 일으킬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분노가 없던 사람을 무사한 가운데에서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니, 대마도가 바다가 되더라도 결코 제기(提起)할 수 없다.’ 하기에, 신들이 대답하기를 ‘오늘의 일을 누가 바란 것인가. 그대는 이것을 헤아려야 한다. 고치기 어렵다는 말은 참으로 우리가 바라던 것이다.’ 하니, 귤지정이 말하기를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므로, 신들이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가 어찌 이 일에 바쁘겠는가.’ 하였더니, 귤지정이 말하기를 ‘이것은 먼저 대마도를 모함하려는 꾀이다.’ 하였습니다. 신들이 말하기를 ‘우리들이 대마도를 모함하려 한다면 이는 우리 울타리를 치우는 것이 될 것인데, 어찌 그럴 리가 있겠는가.’ 하니, 귤지정이 말하기를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하고 물러갔습니다.

21일에 경직지정을 시켜 신들을 제 집에 청하여 현소와 함께 이 글을 고치기는 어렵다는 것을 조용히 강론하였습니다. 신들이 전에 말한 것과 한결같게 말하자, 이어서 신들을 청하여 의지의 집으로 옮겼습니다. 현소가강의 글을 가져와 신들에게 주면서 펴 보게 하였는데, 대서(大書)일 뿐더러 말뜻이 과연 전일 보인 초본(草本)과 같았습니다. 신들이 한 번 보고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이것은 불손할 뿐더러 격례에 어긋나는 것이 있으니 볼 것도 없다.’ 하였더니, 의지 등이 잠자코 서로 돌아보며 말하지 않았는데 자못 마음이 초조한 듯하고 노여워하는 기색이 있었습니다. 가만히 현소와 귀엣말을 하더니 한참 만에 말하기를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하였으나, 신들이 대답한 것은 전에 말한 것과 같았습니다.

현소가 대답하기를 ‘우리들도 글자가 크고 분명하지 못한 줄은 알지만, 감히 모든 일을 일일이 여쭈어 고칠 수 없으니 어찌하는가. 또 일본 사람 중에는 글을 아는 자가 많지 않고 또 규례를 모른다. 혹 한마디 말이 불손하더라도 이것이 과연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 이 때문에 망설이지 말기 바란다.’ 하기에, 신들이 대답하기를 ‘우리들이 죽으면 죽어도 끝내 이 글이 격례에 어긋나는 것을 보고서 잠자코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귀도(貴島)는 우리 나라의 사체(事體)와 예모(禮貌)를 모르지 않는데, 경망하게 이 글을 가지고 일을 수행 하려 하니, 우리 조정에 대하여 경근(敬謹)한 뜻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이에 의거하여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의지가 겸손한 말로 대답하기를 ‘근일에 귤지정이 전한 말을 상세히 들었으므로 진실로 고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을 알기는 하지만, 내부가 고쳐주려 하지 않으니 말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또 능(陵)을 범한 도둑은 우리가 처치하기에 달려 있으므로, 이 때문에 일본의 글 가운데에 말하지 않은 것이다.’ 하기에, 신들이 대답하기를 ‘글을 보내고 포박하여 보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우리 나라가 바란 것이 아닌데, 다만 6∼7년 이래로 귀도가 화친을 요구하여 마지않으므로 우리로서는 진실로 거절할 말이 없어서 우선 이 뜻으로 귤지정에게 타이른 것이다. 귀도가 하고 아니하는 것은 우리들이 알 바가 아니다.’ 하니, 의지·경직이 자못 언짢아하며 파하였습니다. ,

이날 밤에 다시 귤지정을 시켜 신들에게 와서 말하기를 ‘두 나라의 사세가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 그 사이에서 힘을 다하여 길이 근심이 없기를 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이어서 갖가지 광언(狂言)으로 협박하여 우리 마음을 시험하기에, 신들이 매우 분노하여 또한 광언으로 대답하였습니다.

22일 현소가 극진히 환대하고 결말을 듣기를 바랐으나 신들이 끝내 대답하여 주지 않고 배를 띄울 생각인 체하였더니, 귤지정이 또 뭇 장수의 뜻으로 와서 말하기를 ‘여러 해 동안 힘쓴 것을 하루아침에 헛되이 버릴 수 없으므로 내부가 허락할지 않을지 알 수 없더라도 내일 내부에 치보할 것이니, 가벼이 움직이지 말고 마음 편히 기다리기 바란다.’ 하기에, 신들이 대답하기를 ‘우리들은 이 일 때문에 온 것이 아닌데 어찌 그 글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23일 의지경직이 두세 번 사람을 보내어 신들에게 간절히 빌기를 ‘오늘 아침에 이미 비선(飛船)을 보냈는데 일이 되고 안되는 것은 헤아릴 수 없지만 열흘만 지나면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하기에, 신들이 이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더니, 귤지정이 또 와서 말하기를 ‘사람이 서로 사귀는 데에는 서로 믿어주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 더구나 두 나라가 교린(交隣)할 때에 믿지 않는 것이 옳겠는가.’ 하므로, 신들이 대답하기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그대들을 말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귤지정이 말하기를 ‘우리들에게 믿음이 없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족하의 믿음이 있는 것보다 낫다. 이미 어려운 일을 명대로 따라서 일본에 사람을 보냈는데도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지레 떠나려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기에, 신들이 대답하기를 ‘우리들이 이곳에 있더라도 어찌 그 진위를 알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지레 돌아가려는 것이다.’ 하니, 귤지정이 말하기를 ‘의지 이하가 무상하기는 하지만 설사 그들이 중간에서 거짓 글을 만들어 냈더라도 뒷날에 귀국의 회답에 대해 어찌하겠는가. 이것을 의심할 것은 없다.’ 하였습니다. 저녁 무렵에 경직이 와서 신들에게 한 말도 이와 같았습니다.

24일 아침에 경직이 또 와서 신들에게 청하기를 ‘모쪼록 어제 일본에 사람을 보냈다는 뜻을 귀국에 먼저 알려서 사행(使行)을 미리 준비하게 하여주면 천만 다행이겠다.’ 하기에, 신들이 대답하기를 ‘우리 조정이 허락할지 않을지는 귀도가 가강의 뜻을 모르는 것과 같은데, 어찌 감히 가벼이 먼저 알릴 수 있겠는가. 돌아가서 아뢰는 것만 못하다.’ 하니, 경직이 머물기를 간절히 청하며 말하기를 ‘잠시 반 달 동안 기다렸다가 큰일을 끝내고서 이름을 만세에 드날리는 것이 또한 아름답지 않겠는가.’ 하므로, 신들이 대답하기를 ‘이 일을 주관하기 위하여 이곳에 머무는 것은 명분과 실제가 모두 추악한 일이므로 진실로 그 사이에 간여하려 하지 않았으나 이미 이 직임을 받았으니, 우선 형세를 보아 진퇴를 결정하겠다.’ 하였습니다. 경직이 말하기를, ‘나라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은 본디 신하의 직분이고 이것은 피차가 마찬가지이다. 만약 일을 완수한다면 곧 당대를 구제한 귀한 사람이 될 것인데, 어찌 추악한 일이 되겠는가.’ 하기에, 신들이 대답하기를 ‘그 말은 바로 우리를 위로하는 말이다. 귀도가 끝내 면목을 고쳐서 정성을 다하여 간명하게 끝을 맺는다면 제왕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도량으로 어찌 끝내 거절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들은 이 때문에 왔으므로 헛되어 돌아갈 수 없으니, 우선 머물러 기다림으로써 귀도의 희망에 따르겠다.’ 하니, 경직이 감사해 하며 말하기를 ‘간명하게 끝을 맺는 것은 참으로 우리 섬이 바라는 바이니, 고민하지 말기 바란다. 한 번 통신할 뿐이다. 만약 일본 사람과 함께 귀국에 왕래하게 된다면 우리 섬을 위해 좋은 계책이 못될 것인데 어찌 스스로 만전을 꾀하지 않겠는가…….’ 하였습니다.

신들이 또 말하기를 ‘잡혔다가 달아나 돌아온 사람의 말을 듣건대, 다들 6월에 나온 자들이라 하는데 이제까지 조선으로 보내지 않으니, 이것은 무슨 뜻인가? 일본에 있는 사람이라도 오히려 쇄환(刷還)해야 할 것인데, 더구나 이들 스스로 온 경우이겠는가. 도리어 섬에 있는 무리를 낱낱이 쇄환하려 하지 않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하니, 경직이 대답하기를 ‘스스로 왔다고는 하지만 다 우리 힘에 의한 것이다. 전일 평조신(平調信)이 살아 있을 때에 내부에 힘껏 아뢰어서 놓아보내도록 허락받았는데, 이 때문에 출입을 금하지 않는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사로잡힌 사람들을 죄다 내어 보내고도 일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죄책을 면하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지정은 한꺼번에 내어 보내어 큰일을 끝낼 생각을 한다.’ 하였습니다. 이에 삼가 별록(別錄)을 갖추어 아룁니다."


  • 【태백산사고본】 111책 203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263면
  • 【분류】
    외교-왜(倭)

  • [註 093]
    헌부(獻俘) : 포로를 바침. 싸움에 이기고 돌아와 포로를 종묘(宗廟)에 바치고 고하는 것. 이 책에서는 왜란 때에 능을 범한 도둑을 일본이 스스로 잡아보내어 바치는 것을 말하는데, 종묘에 고하는 행사를 분리하여 헌부고묘(獻俘告廟)라 적기도 하고 합하여 헌부라고 적기도 하였다.

○副司果全繼信、譯官司譯院判官李彦瑞、副司正朴大根馳啓曰: "臣等八月十七日到釜山, 四更頭開船, 一掛風帆, 無事過海, 巳時末, 得到對馬島豊崎, 只有地方子出迎, 別無待候之狀。 怪而問之則對曰: ‘曾不聞上官之來, 今朝始望三帆, 登時馳報于島主之處。’ 臣等又問曰: ‘初九日旣有先來船隻, 何謂不知也?’ 藤倭下陸, 淨掃人家, 請宿臣等而告之曰: ‘頃日先來船隻, 不知去向云。 未知島主所向如何, 私自悶慮。 願聞上官渡海本意往告是計。’ 臣等對曰: ‘汝不須問我行事。 但當馳報于義智曰: 「某某上官, 別有處置之事來。」 云可矣。’ 藤倭飛船去訖, 有年少子, 自稱島主軍官, 來獻魚菜曰: ‘小的適以候望回船事, 來在此地, 不可不見, 故來謁耳。’ 十八日晌午, 橘智正飛船馳來曰: ‘昨 因望軍所報, 始聞朝鮮上官船來, 達夜馳進, 今見三足下, 是亦幸也。 第未知來意, 無任奉慮, 願聞其詳, 以卜我之死生耳。’ 臣等答曰: ‘此來, 無他。 地絶海隔, 難審情僞, 更探日本動靜然後, 庶可以替爾, 萬全完事, 無效前日之敗。 此豈非汝島之福也?’ 智正勃然有怒色曰: ‘我知三足下之意也。 以此往返, 自爲事完無期。 我輩莫如先自反觜於內府, 以免他日之禍可矣。’ 臣等亦心怒曰: ‘然則任汝爲之。 吾等更不管此事, 坐看汝等作何樣耳。 且我國與爾國, 旣有不共戴天之讎, 雖三尺童子, 猶知其不可許和。 但今者, 家康盡反其秀吉所爲, 而連刷人口, 又欲致書獻俘云, 若然則爲帝王之道, 固不可執一, 故使吾等來探爾國眞僞。 若爾輩所爲, 有眞無僞, 則尤善吾輩之來也。’ 智正曰: ‘知我事情者, 每言如此, 欲死無地。 我輩雖無中間作僞之事, 但恐事體遲緩, 以致生事也。 且日者, 艱得內府書來, 將此緣由, 飛報于貴國。 貴國不諒此間事勢之急迫, 而又送三足下, 欲以延緩, 是亦末計, 固非長久之術也。’ 臣等答曰: ‘汝何妄度我國事情, 發言如是乎? 吾等已爲乘船待風之時, 得見汝島之報, 不敢任意中止而來矣。 爾愼勿英銳, 坐失機會。’ 智正曰: ‘頃日討出內府書時, 內府初不肯從曰: 「豈可以先自遣書, 區區乞和乎?」 反以兵勢誇張, 誠非細慮。 幸賴寵臣政純之贊助, 得出此書, 其幸可言。 今若中止而前往, 更探事情爲言, 則彼必以爲: 「愚弄日本」 怒之也。 雖曰無怒, 如此差官, 百往百悔, 不可失也。’ 臣等答曰: ‘汝島不省事, 自家壞了。 自家事, 吾等亦沒奈何。 往見義智, 相議進退耳。’ 智正曰: ‘雖與義智相議, 無異我言。 此皆朴僉知强作此行, 欲以陷我死地, 亦沒奈何。 死則一樣死矣。’ 遂請臣等前往, 臣等卽爲起身, 連夜行船, 十九日午時, 始達府中。 景直出迎港口, 船上問安, 望揖而去。 義智候門, 請上臣等于慶雲寺然後, 玄蘇義智景直, 一時來見, 只敍寒暄而出, 卽請臣等于義智之家, 設酌慰行。 是日夜, 智正來謂臣等曰: ‘昨日所講之事, 具陳左右, 左右之人, 莫不怒聽。 此行實爲狼狽, 不可說也。’ 臣等笑而答曰: ‘吾等旣入爾島, 誠不怕死。 何以謂狼狽之言而脅之耶?’ 智正曰: ‘豈敢脅之? 六七年來, 竭誠殫力, 懇乞切迫者, 蓋懼內府之發怒也。 今者有日本國王書, 而事不速成, 則必不免內府之怒, 是以言之耳。’ 臣等答曰: ‘家康雖怒, 在我之道, 固不可區區完事。 智正仰天長吁曰: ‘此亦命也。 事若垂成, 則更生別意, 莫如究竟, 極爲可慮。 願足下, 取見日本國王書然後, 卽以回報朝廷, 從速遣使, 不勝幸甚。’ 臣等答曰: ‘日本之行, 固不欲去之, 而出於朝廷之命令, 不得已來也。 汝若攔阻, 則無由可達, 回去而已。 但吾等旣爲到此, 而汝且請見家康書云, 暫見其可否可矣。’ 二十日朝, 智正持一紙, 密謂臣等曰: ‘此是內府書謄來草也。 見後啓知, 從速遣使幸甚。’ 臣等披閱其書, 則間或不遜, 又無縛送之語。 臣等佯爲不管此事, 而開諭曰: ‘吾等初不爲此書而來, 不可與汝强辨。 然以事勢言之, 則此書雖呈我國, 萬無遣使之理。 爾輩所爲, 眞可謂兒戲。’ 智正曰: "頃日先來船隻, 漂到日本, 而今始入來, 得見貴國回答書契, 則書中有 「致書、縛送則豈無相報之道」 語。 以此觀之, 則朝廷已許, 而足下諱之也。’ 臣等答曰: ‘汝輩曾以一件事, 懇切於我國, 我國不得已以 「豈無相報」 之言爲答。 雖然, 其謂致書之言, 非請此書之謂也。’ 智正大驚曰: ‘然則何以爲之?’ 臣等答曰: ‘臣等亦未之知也。’ 智正曰: ‘此何言也? 願安承敎。’ 臣等答曰: ‘無已則改之可也; 若不欲改之則棄之亦可也。’ 智正曰: ‘改之極難; 中止亦難。 雖欲盡力周旋, 其可得乎? 內府若聞此語, 則非但不聽, 必以生怒。 然則是使無怒之人, 生怒於無事之中, 雖沒島爲海, 決難提起。’ 臣等答曰: ‘今日之事, 誰所欲也? 汝須量之。 難改之說, 實吾等之固所願也。’ 智正曰: ‘是何謂也?’ 臣等答曰: ‘我國何忙乎此事?’ 智正 〔曰〕 : ‘是則先陷馬島之謀也。’ 臣等曰: ‘吾等欲陷馬島, 則是, 撤我藩籬, 豈有此理?’ 智正曰: ‘今始覺悟。’ 云而退。 二十一日, 景直使智正, 請臣等于其家, 與玄蘇, 從容講論此書之難改。 臣等所言, 一如前辭, 仍請臣等轉往義智家。 玄蘇家康書, 付與臣等展看, 非但大書, 辭意果如前日所示之草。 臣等一覽大笑曰: ‘此則非惟不遜, 有違格例, 不須看也。’ 義智等默然相顧不語, 頗有心焦怒氣。 密與玄蘇附耳良久曰: ‘然則何以爲之耶?’ 臣等所答, 又同前言。 玄蘇答曰: ‘我等亦知字大, 措語未瑩。 然, 不敢種種稟改, 奈何? 且日本之人, 不多解文, 又不知規例。 雖或一語不遜, 此果何妨? 願勿以此留難焉。’ 臣等答曰: ‘吾等死則死矣, 適見此書之違格, 不可默默而歸, 是以言之。 貴島非不知我國事體禮貌, 而妄將此書, 欲爲就事, 殊無敬謹我朝廷之意, 據此可見。’ 義智以遜辭答曰: ‘近日詳聞智正傳言, 固知其不可不改之意也。 倘內府不肯改給, 則不如不言。 且犯陵之賊, 在我處置。 是以, 日本書中不言矣。’ 臣等答曰: ‘書與縛送, 初非我國之所望。 而但六七年來, 貴島求和不已, 在我固無可拒之言, 姑以此意, 開諭於智正矣。 貴島之爲與不爲, 非吾等之所管也。’ 義智景直, 頗有不悅而罷。 是夜復使智正, 來謂臣等曰: ‘兩國事勢, 旣爲如此, 何不盡力於其間, 永圖無虞乎?’ 仍以狂言,脅之萬端, 試我深淺。 臣等不勝痛憤, 亦以狂言答之。 二十二日, 玄蘇又請臣等于其所寓之處, 極爲款待, 要聽結末。 臣等終不許答, 佯爲發船計料, 則智正又以衆將之意, 來言曰: ‘累年工夫, 不可一朝虛棄。 雖不料內府之許不許, 明將馳報于內府, 請勿輕動, 安心待之。’ 臣等答曰: ‘吾等旣不爲此事而來者, 何敢待其書之回乎?’ 二十三日, 義智景直再三送人, 謝懇于臣等曰: ‘今朝已爲發送飛船, 事之成不成, 未可臆料, 僅過旬日, 可似往返矣。’ 臣等答以不管此事云, 則智正又來曰: ‘人之相交, 貴相知信。 況兩國交隣, 不信可乎?’ 臣等答曰: ‘不信者, 正謂汝輩也。’ 智正曰: ‘我輩雖曰無信, 猶勝於足下之有信也。 旣以難事從命, 送人于日本, 不待其回來, 欲爲徑發何也?’ 臣等答曰: ‘吾等雖在此地, 豈知其眞僞乎? 是以, 徑欲歸去矣。’ 智正曰: ‘義智以下雖無狀, 設使中間做出假書, 其於後日貴國回答, 何? 不須以此爲疑慮焉。’ 向夕, 景直來謂臣等之言, 亦如是。 二十四日朝, 景直又來, 請臣等曰: ‘須將昨日, 送人于日本之意, 先報貴國, 預備使行, 千萬幸甚。’ 臣等答曰: ‘我朝廷之許不許, 亦如貴島之不知家康意也。 何敢輕以先報乎?, 莫如歸去陳達耳。’ 景直懇切請止曰: ‘暫俟半月, 以完大事, 流名萬世, 不亦美乎?’ 臣等答曰: ‘幹此事之留, 名實爲醜事, 固不欲干預其間, 旣受此任, 姑且觀勢進退。’ 景直曰: ‘爲國勤勞, 固臣子之職, 此則彼此一樣。 若能完事, 是爲濟時之翁, 何其爲醜事乎?’ 臣等答曰: "此言, 正是慰我之言。 貴島終始革面輸誠, 從簡結末, 則以帝王包荒之量, 豈有終絶之道乎? 吾等旣以此來, 不可虛還, 姑留待之, 以副貴島之望矣。’ 景直謝曰: ‘從簡結末, 實我島之所願, 幸勿煩惱, 只一番通信而已。 若與日本人, 往來貴國, 則是我島之末計, 豈不爲自家萬全圖之?’ 云云。 臣等又曰: ‘今聞被擄走回人言, 皆是六月間出來者也。 至今不送, 此何意思? 雖在日本之人, 猶可刷還, 況此自來者? 反在島之類, 不肯一一刷還, 又何意也?’ 景直答曰: ‘雖謂自來, 皆我力也。 前日調信生時, 力陳內府, 許令放還, 因此不爲呵禁出入矣。 但所恐者, 盡出擄人, 而事易不成, 則不免罪責。 智正一時出送, 欲完大事之計。’ 云, 故謹具別錄以啓。"


  • 【태백산사고본】 111책 203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263면
  • 【분류】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