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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203권, 선조 39년 9월 7일 계유 3번째기사 1606년 명 만력(萬曆) 34년

일본에 갈 사신의 명칭을 회답사라 칭하는 것이 어떤가 하고 묻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이번에 사신을 보내는 것은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조처이기는 하지만 적의 정세를 상세히 알지 못하는데 문득 통신사(通信使)라 호칭하는 것은 실로 타당한 것이 아닙니다. ‘유(諭)’자를 이웃 나라에 쓰기 어려울 듯하다는 것은 성려(聖慮)가 지극히 마땅합니다마는, 사신의 명칭은 문서 가운데에는 나오지 않으므로 혐의할 것이 없을 듯합니다. 그가 먼저 글을 보내어 오고 우리는 회답하는 것이므로 회유사(回諭使)라 칭하는 것이 체모에 맞을 듯하나 해관(該官)이 다시 더 상의하여 결정해서 미진한 뜻이 없게 하시라고 한 데 대해 윤허한다고 전교하셨습니다. 이번 사신의 명칭을 정하는 것은 관계되는 일이 가볍지 않으므로 묘당(廟堂)에서 이미 상세히 강구하여 적의함을 얻었으니, 신들에게는 다시 다른 의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회유사라 칭하기는 어려울 듯하니, 차라리 회답사(回答使)라 칭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1책 203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259면
  • 【분류】
    외교-왜(倭)

○備邊司啓曰: "今遣使, 雖出於不得已, 而賊中情形, 未能詳知, 而遽以通信稱號, 實非妥當。 諭字似難用於隣國, 聖慮所及, 極爲允當。 但使臣名號, 不出於文書中, 似無所嫌。 且渠先致書, 我乃回答, 稱以回諭, 似乎得體。 然, 該官更加商確定奪, 俾無未盡之意。 傳曰: ‘允’ 事, 傳敎矣。 今此使臣名號之定, 事係非輕, 自廟堂已爲詳講得宜, 臣等不容更有他議。 敢啓。" 傳曰: "似難稱以回諭, 寧稱回答何如?"


  • 【태백산사고본】 111책 203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259면
  • 【분류】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