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변사에서 홀적을 회유하기 위해 직첩과 녹봉을 이용하자고 회계하다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지금 이시발(李時發)·이시언(李時言)의 장계를 보니 ‘정충신(鄭忠信)이 직첩을 전해 주자 하호(何胡) 및 여러 호인들이 기뻐하며 후대하고, 전일의 조약 중에서 포로 56명을 또 출송하여 1백의 숫자를 채웠고, 이 외에도 다섯 사람을 더 출송하였다. 그러나 녹봉을 강정(講定)하는 일은 하추(何酋)가 끝내 따르지 않아 말로 따지기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정충신의 문견록(聞見錄)으로 보면 그 말이 비록 매우 번다하나 약조 가운데 일을 명백하게 강정하지 못하여 일이 매우 소루합니다. 전일 이난(李蘭)이 홀온(忽溫)으로부터 돌아와 말한 가운데 ‘홀추(忽酋)가 말하기를, 「허다한 구호(舊胡)는 다 도로 보낼 수가 없고, 투입한 명간내(明看乃)·가질동(加叱同) 등은 마땅히 출송하겠다. 」고 하였다.’ 하였는데, 이 한 조항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니, 당초 들여보낼 때에 병사(兵使)가 분부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정충신이 듣고도 빠뜨린 것인지 매우 괴이합니다. 녹봉은 홀추가 지난 겨울부터 말하기를, ‘직첩 1백장 가운데 50장은 녹봉용 무명베 각 40필(疋)씩을 받아 내가 쓰고, 나머지 50장은 무명베 각 20장씩을 받아 휘하의 호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본사(本司)에서 복계(覆啓)하기를 ‘구호 중 우리 나라에 복종하여 직을 받은 자는 모두 오랫동안 공로를 세운 자들로 상으로 관직을 주는 등급과 녹을 받는 고하가 모두 규정이 있는데, 난리 후에는 20필을 기준으로 했다. 이번 홀호의 녹봉은 공이 없이 지나치게 줄 수가 없으니, 한결같이 구호의 예에 의하여 모두 20필로 정해야 한다.’ 하였었습니다. 이번 정충신이 ‘홀호가 녹봉을 허락하여 주는 여부로 반복(叛服)의 계책을 삼는다.’ 하고, 감사와 병사 역시 말하기를 ‘이번에 녹봉에 대해 한결같이 굳게 고집하면 이로 인해 변경이 소란할 걱정이 없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근래 이 적들이 하는 짓을 보면 모두가 욕심이 한정없는 도적들이니, 어찌 20동(同)의 녹봉을 가지고 그들과 다시 따지겠습니까. 더군다나 40필의 녹봉은 금일 처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요, 바로 평소 구호의 녹봉에 대한 옛규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들 역시 이를 고집하는 것입니다. 이제 전일에 홀추가 써 보낸 대로 홀추에게 주는 50장 녹봉은 각 40필로, 휘하 호의 녹봉은 각 20필로 기준하되, 이미 수송한 40동 이외에 해조로 하여금 20동을 더 준비해 급히 내려보낸 다음 그들이 와서 진상(進上)을 바치기를 기다렸다가 주어 보내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명간내(明看乃) 등을 약속대로 출송하라는 뜻을 소롱이(小弄耳)에게도 분명히 신칙해 보내야 합니다. 또 그들이 이미 직첩을 받았으니 우리 나라의 구호(舊胡)와 같습니다. 그들이 비록 사을자고(沙乙者古)·현성(縣城) 등의 호와 원한을 맺고 있으나 군사를 동원해 국경 가까이 있는 호를 침범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무리하게 침범한다면 ‘구호를 침범하지 않는다.’는 약속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부터는 한결같이 약속을 지켜 영원히 좋게 지내라는 뜻도 아울러 정녕하게 말해 보내야 마땅합니다. 이런 뜻을 선전관(宣傳官)을 보내 감사와 병사에게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홀적(忽賊)이 몰래 흉계를 품고 엿본 지가 여러 해 되었으니 이번에 직첩을 애걸한 것이 어찌 복종하겠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겠는가. 우리의 허실을 정탐하고 우리의 강약을 엿보아 침범하려는 것인데도 조정에서는 막을 계책은 힘쓰지 않고 관직과 녹봉을 주는 것으로 기미(羈縻)하는 양책을 삼고 있다. 아, 현성(縣城)은 바로 우리 나라의 번호인데도 군사를 동원해 침략하였는 바, 그뜻은 반드시 멸망시킨 후에 그만 두려는 것이니, 흉계가 어찌 현성에만 국한되겠는가. 순망치한의 형세가 참으로 염려되는데도 그럭저럭 날짜만 보내면서 아무 근심이 없는 듯하니, 통탄을 금할 수 없다.
- 【태백산사고본】 108책 199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192면
- 【분류】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역사-사학(史學) / 인사(人事) / 재정-국용(國用)
○備邊司回啓曰: "今見李時發、李時言狀啓: ‘鄭忠信傳給職牒則何胡及群胡等喜而厚待, 前日約條中, 被擄人五十六名, 又爲出送, 以準百名之數, 此外五人, 加出送。 而祿俸講定一事, 何酋終不聽順, 難以口舌爭辨。’ 云。 以鄭忠信 《聞見錄》見之, 其所說話, 雖甚煩多, 而約條內事不爲明白, 講定踈漏莫甚。 前日李蘭自忽溫回來言內: ‘忽酋云: 「許多舊胡則似難盡還, 而投入明看乃、加叱同等當出送。」 云云。’ 此一款, 全不語及, 當初入送時, 兵使不爲分付耶? 抑忠信聞之, 而闕却耶? 殊爲可怪。 祿俸則忽酋自上年冬以爲: ‘職牒百張中, 五十張則俸木各四十匹, 以爲自己之用; 又五十張則俸木各二十匹, 分給麾胡。’ 云。 其時本司覆啓以: ‘舊胡之嚮國授職者, 皆是積年效勞者, 而賞職等級、受祿高下, 皆有定規, 而亂後則以二十匹爲準。 今此忽胡祿俸, 不可無功濫給, 一依舊胡之例, 皆以二十匹爲定矣。’ 今者鄭忠信以爲: ‘忽胡以祿俸準給與否, 爲叛服之計。’ 監、兵使亦以爲: ‘今於祿俸, 一向堅執, 則不無因此擾邊之患。’ 云。 近觀此賊所爲, 全是狼貪無厭之賊, 豈可爲二十同之俸, 與之更爲相較也哉? 況四十匹之俸, 非創於今日乃是平時舊胡祿俸舊規, 故, 渠等亦執此爲言。 今依前日, 忽酋書送, 忽酋所授五十張祿俸則各以四十匹; 麾胡祿俸則各以二十匹爲準, 除已輸送四十同外, 令該曹加備二十同, 急急下送, 待渠輩來獻進上, 然後給送爲當。 明看乃等如約出送之意, 小弄耳處亦爲分明申飭言送。 且渠輩旣受職牒, 則等是我國舊胡。 渠雖與沙乙者古、縣城等胡結怨, 不可動兵, 來侵於近境之胡。 若强爲來犯則勿侵舊胡之約, 果安在哉? 今後一遵約束, 永爲懽好之意, 竝爲丁寧言送爲當。 此意, 監、兵使處, 遣宣傳官下諭何如?" 傳曰: "允。"
【史臣曰: "忽賊陰懷兇計, 狺然窺覦者有年, 而今者乞帖, 豈出於納款之心乎? 探我虛實; 伺我强弱, 欲售其竊發之心, 而朝廷不務修攘之策, 方以授職祿俸爲羈縻之良算。 吁! 縣城乃是我國之蕃胡, 而動兵侵擾, 其志必欲滅之而後已, 兇計豈在於縣城哉? 脣亡之勢, 誠可虞矣。 而恬嬉度日, 若無憂者然, 可勝痛哉?"】
- 【태백산사고본】 108책 199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192면
- 【분류】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역사-사학(史學) / 인사(人事) / 재정-국용(國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