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문이 3추가 모의 한 것을 치계하다
평안 병사(平安兵使) 성윤문(成允文)이 치계하였다.
"만포 첨사(滿浦僉使) 홍유의(洪有義)가 치보(馳報)하기를 ‘사지 역관(事知譯官)이 귀순한 호인(胡人)에게 좋은 말로 탐문(探問)한 바에 의하면 「건주위(建州衛) 호인은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했는데, 노추(老酋)에게 포로되었다 돌아온 북변(北邊) 번호(藩胡)가 말하기를 ‘홀온추(忽溫酋)의 이름은 부자탁고(夫者卓古)인데, 부자한고(夫者漢古)라고 칭하기고 하고 탁고(卓古)나 한고(漢古)라고만 칭하기도 한다. 【탁(卓)과 한(漢) 두 음(音)은 호인의 전한 말이 서로 같지 않아서 그러한 듯하다. 】 나이는 40세쯤 되었고 몸은 보통이고 얼굴은 약간 얽었는데, 사납고 용맹스럽기가 비길 데 없다. 노·소추(老少酋), 나리(羅里) 등과 항시 사신을 통하여 호의를 다졌고, 두 딸을 아내로 주었다. 탁고와 나리는 거주지가 가깝고 원래 4촌 형제 간으로 친분이 가장 두텁다. 이번 동관(潼關)에서의 승리를 즉시 노추에게 보고하니, 노추는 믿을 만한 수하인(手下人)을 보내 교전한 실상과 포로가 얼마나 되는지를 살펴보게 하였는데, 아직 보고하지 않았다.’ 하였다. 」 했다. 첨사는 계미년063) 사이에 비로소 종성(鐘城)에 홀적(忽賊)의 변이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이때부터 입구(入寇)하여 편안한 해가 없었다. 첨사는 홀온·여허(如許)·건주위의 3추(三酋)가 연합하여 화목하게 지내는지 여부를 알고자 하여 호인에게 물어 자세히 알아냈는데 지금 들은 것이 또 이와 같으니, 그렇다면 부자 탁고가 홀온추인 것은 분명한 듯 싶다. 대개 전일 들은 바로는 여허추(如許酋) 나리, 홀온추 탁고 등이 지난 계사 연간에 서로 더불어 모의하기를 「노가적(老可赤)은 본디 이름 없는 보통 사람으로 갑자기 일어나 추장이 되고 여러 부족을 합병하여 그 기세가 점점 강대해지고 있다. 우리들은 대대로 위명(威名)을 쌓았으니, 그와 동렬에 서는 것은 수치이다. 」고 하여, 불의에 병력을 합쳐 노추를 공격하여 모조리 멸망시키려고 하였는데, 노추가 첩보를 얻고서 크게 놀라 먼저 정병(精兵)을 길가에 매복시켜 놓고 고개의 낭떠러지에 기계를 많이 설치하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강을 따라 난 길이 좁고 험하여 적병이 대열을 이루지 못하고 수미(首尾)가 길게 늘어진 채 이르자, 그때 노추의 군대가 곳곳에서 돌을 굴려내리니 강에 빠져 죽은 병마(兵馬)가 부지기수였다. 후군(後軍)이 놀라서 무너지니 선봉은 모두 노추에게 사로잡혔다. 이때 나리(羅里)의 형 부자(夫者)가 전사하고 홀추 탁고도 사로잡혔는데 노추가 포박을 풀어 우대하고 성 안에 구류시켰다가 소추(少酋)의 사위를 삼았다. 노추가 원교 근공(遠交近攻)의 계략을 쓰고자 하여 비로소 탁고를 되돌려 보냈는데, 탁고는 죽이지 않은 것을 감사히 여기기는 하였으나 부끄럽고 분개하는 마음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번 통신(通信)은 실로 겉으로는 친한 체하고 속으로는 꺼린 것이니, 나리가 그의 형 부자의 죽음을 가슴 아프게 여겨 보복하려고 단단히 마음 먹고 있으므로 지금까지 병화(兵禍)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3추(酋)가 비록 정립(鼎立)하고 있는 형세지만 그 중에서 노추가 외롭고 위태로운 듯하다. 이번에 탁고가 소추의 사위가 되어 서로 내통하여 체결하고 있으니 무슨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방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105책 189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91면
- 【분류】군사(軍事) / 외교-야(野)
- [註 063]계미년 : 1583 선조 16년.
○平安兵使成允文馳啓: "滿浦僉使洪有義馳報: ‘據使事知譯官, 歸順胡人處, 善辭探問則 「建州 衛胡人, 或知或不知, 而北邊藩胡, 被擄於老酋來者 曰:『忽溫酋名夫者卓古, 或稱夫者漢古, 或單稱卓古、漢古, 【卓、漢二音, 胡人傳語, 或不相似而然。】 年可四十, 體中、面暫縛, 悍勇無雙。 與老ㆍ少酋、羅里等, 尋常通使講好, 而以二女妻之。 然而, 卓古與羅里, 所居地方稍近, 兩酋原爲四寸兄弟, 最爲親厚。 今次潼關之捷, 卽爲來報于老酋, 老酋使其手下可信人, 往問接戰形止, 俘獲多寡, 而時未回程。』」 僉使, 於癸未年間, 始聞鍾城有忽賊之變, 自是入寇, 殆無寧歲。 僉使欲知忽溫、如許、建州衛三酋, 連和與否, 訪問於胡人, 頗得其詳。 今之所聞, 又如此則夫者卓古之爲忽溫酋, 似爲分明。 大槪前日所聞, 如許酋 羅里ㆍ忽溫酋 卓古等, 往在癸巳年間, 相與謀曰:「老可赤本以無名常胡之子崛起爲酋長, 合倂諸部, 其勢漸至强大。 我輩世積威名, 羞與爲伍。」 不意合兵來攻老酋, 期於蕩滅之際, 老酋得諜大驚, 先使精兵, 埋伏道傍, 又於嶺崖, 多設機械, 以待。 而沿江峽路阻隘, 故敵兵不得成列, 首尾如長蛇, 而至老酋之兵, 所在放石, 兵馬塡江而死者, 不知其數後軍驚潰, 先鋒悉爲老酋所獲。 於是, 羅里兄夫者戰死, 忽酋 卓古, 亦被擒而來, 老酋解縛優待, 拘留城中, 作爲少酋女壻。 老酋欲爲遠交近攻之計, 始乃遣還卓古, 卓古雖以不殺爲感, 而其慙憤之心, 久而猶存。 今之通信, 實爲外親內忌。 羅里痛其兄夫者之死, 銳意報復, 至今兵連禍結。 三酋雖有鼎立之勢, 而其中老酋, 似爲孤危。 今者卓古爲小酋之壻, 相通締結, 不無其事。 在我防備, 不可小忽。’"
- 【태백산사고본】 105책 189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91면
- 【분류】군사(軍事)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