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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87권, 선조 38년 5월 4일 정축 3번째기사 1605년 명 만력(萬曆) 33년

아로가 아비를 배반하고 투항해 오자 심극명이 경솔히 그를 받아들여 후환이 생김을 아뢴 비변사의 계사

비변사의 계사(啓辭)에,

"유정(惟政)이 바다를 건넌 지가 이미 10개월이 되었는데 소식이 아득합니다. 도망쳐 돌아온 사람의 말로 보면 이미 일본의 국도로 들어갔을 것 같은데, 소선(小船)의 소식이 지금까지 오지 않고 있으니, 그가 자유롭게 되어 있지 못한 상황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전번에 유정의 사미승(沙彌僧)을 들여보내려 하였으나 경상 감사 이시언(李時彦)과 접반관(接伴官) 박엽(朴燁) 등의 보장(報狀)으로 인해 신들이 ‘이 참장(李參將)고 위관(高委官)이 본도에 머물러 있으니 사미를 보내는 것을 급급하게 할 필요가 없다. 다시 한두 달을 기다렸다가 형편을 보아 조처한다 하더라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회계(回啓)하여 윤허를 받았었습니다. 고 위관이 지금 올라오기는 했지만 등 위관(鄧委官)이 대신 내려 갔으니 중국 관원들에 대해 계속 피하기는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사세로 말하자면 적정(賊情)이 불순하여 일부러 잡아두었을 경우 사미승을 보낸다 하더라도 끝내는 무익하게 될 것입니다. 저 적들이 별다른 생각이 없다면 조만간 반드시 그가 돌아올 것입니다. 다시 한두 달 늦추면 의논하여 조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두 번째의 계사에는,

"삼가 김종득(金宗得)의 장계를 보건대 ‘본도에서 구원병을 많이 모으고 서울과 지방의 포수들을 보태어 각처에 나누어 방어하게 하는 한편 성벽을 굳게 쌓아 고수하면서 서늘한 가을 밤이 길어지고 곡식이 익고 말이 살찌기를 기다렸다가 일거에 위엄을 보이는 것이 아마도 사리에 합당할 것 같다. 무장을 갖춘 무사와 기사병(騎射兵)들을 미리 들여보내면 비용이 반드시 많이 날 것이다. 그러니 7월 초순 전에 길을 떠나게 하여 7월 그믐 무렵에 모이도록 정한다면 제때에 당도하지 못하는 걱정은 없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본도의 군병으로서 이미 구원하기 위해 길을 나선 자들과 서울의 포수와 평안도의 포수들이 모두 모인다면 그 수가 적지 않습니다. 이로써 방어에 보태더라도 부족함은 없을 듯한 까닭에 종득이 이와 같이 치계한 것입니다. 경기·황해·평안도 등의 무장을 갖춘 무사를 지금 일시에 내려보내면 군량을 소비하는 문제가 과연 염려스럽습니다. 이 무사들을 지금은 우선 멈추게 하였다가 장계대로 7월 초순에 내려보내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급히 3도의 감사들에게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세 번째의 계사에는,

"아로(阿老)가 그 아비를 배반하고 투항해 왔습니다. 당초 변신(邊臣)이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참으로 좋았을 터인데 회령 부사(會寧府使) 심극명(沈克明)이 경솔하게 성중에 머무르도록 허용하여 아무 탈없을 일을 탈냈으니, 대단히 잘못되었습니다. 하간 부락(下間部落)을 약탈하여 우리의 변경을 위협하는 것은, 필시 노토(老土)가 이로 인해 원망을 품고 흔단을 일으킨 것입니다. 전일 서성의 계사(啓辭)에 대해 신들이 생각하기를, 아로가 아비를 배반하였다고는 하지만 그간의 정상은 알기가 어렵고 더구나 그는 노을가적(老乙可赤)의 사위이기도 하니, 경솔하게 죽일 경우에는 후환이 있을까 염려된다고 하여, 그 때문에 결박하여 건네주어서 그네들 임의대로 처치하도록 하자는 내용으로 복계(覆啓)하여 하유(下諭)를 받았습니다.

지금 서성김종득의 장계를 보건대 ‘지금 그들의 공갈 협박 때문에 갑자기 결박하여 건네준다면 저들은 필시 아비를 죽인 악한은 천하가 함께 미워해야 하는 바인데, 우리를 두려워하여 부득이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들의 요청대로 참수(斬首)하여 건네준다면 지난날의 분풀이도 충분하고 뒷날의 근심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채로 그들에게 돌려주었다가 저들이 혹 어버이의 사랑이 아직 다 없어지지 않아 죽이지 않고 꾀를 바꾸기라도 한다면 아로가 죽을 때까지 원망할 것 또한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 또한 감사와 병사가 서로 사정을 헤아려보고 이렇게 치계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의 장계대로 노토나 혹 그의 차자(次子)를 불러다가 분명하게 개유(開諭)한 다음에 참수하여 건네주는 것이 아마도 기의(機宜)에 합당할 것 같습니다. 노토가 명색은 귀순하였다고 하나 무산 개시(茂山開市) 이후 한번도 와서 현신(現身)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또 그의 아들이 우리 나라의 변경에 투항해 온 것을 인해 공갈 협박하는 말을 하였고 또 침입하여 들어와 독기를 부렸습니다. 따라서 그가 직접 국경에 나아오는 것을 기다리지도 않고 갑자기 참수하여 건네준다면 이 또한 우리의 약함을 내보이는 것임은 물론 저들의 기세를 돋구어주는 것이 됩니다.

지금으로서는 마땅히 타이르기를 ‘그대의 아들이 그대를 배반하고 온 줄을 전연 모르고서 우선 머물러 있도록 허락했었다가 그대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아비를 배반한 자식은 사람이면 모두가 베여야 하는 것이니 우리가 어찌 털끝만큼인들 아낄 리가 있겠는가. 지금 그대가 와서 알현한다면 그대가 보는 앞에서 바로 참수하여 그대에게 주겠다…….’라고 해야 합니다. 이같이 말을 전해놓고 그들이 하는 것을 보아가며 조처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결말이 나기 전에 아로가 혹 들어 알게 된다면 반드시 홀적(忽賊)에게로 도망쳐 들어갈 것이니, 걱정이 적지 않습니다. 아로노호(奴胡) 등을 내지(內地)의 각 고을에 나누어 수금(囚禁)하고 십분 옥(獄)을 굳게 지켜 도망하거나 자진(自盡)하는 폐단이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급히 선전관을 보내어 이런 뜻을 감사와 병사에게 비밀리에 알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는데,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4책 187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2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軍事)

    ○備邊司啓辭: "惟政渡海, 今已十箇月, 消息茫然。 以逃還人之言觀之, 似是已入於日本國都, 而小船之報, 至今不來, 其不得自由之狀, 蓋可想矣。 前者, 惟政沙彌欲爲入送, 而因慶尙監司李時彦、接伴官朴燁等所報, 臣等以 ‘李叅將高委官在本道時, (少)〔沙〕 彌之行, 不必急急發送。 雖更待一兩月, 觀勢處之, 亦爲未晩。’ 回啓, 蒙允矣。 高委官今雖上來, 而鄧委官亦已繼往, 唐官則似難繼避。 而但以事勢言之, 賊情若不順, 而故爲拘留, 則雖送沙彌, 終歸無益。 彼賊若無別情, 則早晩必見其還, 更遲一兩月, 容有議處。"

    (○) 其二: "伏見金宗得狀啓: ‘多聚本道援兵, 添入京鄕砲手, 分防各處, 堅壁固守, 徐待秋涼夜長, 穀熟馬肥然後, 一擧示威, 恐合事宜。 裝束武士、騎射軍兵, 預爲入來, 耗費必多, 須使發程於七月旬前, 期會於七月晦間, 則庶無不及之患。’ 云云。 本道軍兵已赴援者及京砲手、平安道砲手, 竝爲聚會, 則其數不少。 以此添防, 似無不足, 故宗得如是馳啓也。 京畿黃海平安等道, 裝束武士, 今若一時下送, 則耗費糧餉, 果爲可慮。 此武士等, 今姑停行, 依狀啓, 七月初生, 發送爲當。 此意, 急急下諭于三道監司處, 何如?"

    (○) 其三: "阿老叛其父而來投。 當初邊臣, 拒而不受, 則固爲大善, 而會寧府使沈克明, 率爾容接於城中, 以致無事生事極爲非矣。 搶掠下間部落, 以脅我邊者, 必是老土, 因此生怨而起釁也。 前日徐渻之啓, 臣等以爲, 阿老雖云叛父, 其間情狀, 有難的知, 而係是老乙可赤女壻, 若輕易殺之, 則恐有後尾, 故以縛而給之, 任意處置之意, 覆啓下諭矣。 卽見徐渻金宗得狀啓: ‘今若因其恐脅之言, 遽爲縛給, 則彼不曰: 「弑父之惡, 天下之所共嫉, 而以爲畏己而不得不從也。」 且因其所請, 斬首而給, 則足洩前時之憤, 可絶後日之患矣。 如生擒以與之, 彼或慈天未泯, 不殺而改圖, 則阿老沒齒之怨, 亦不可不慮’ 云云。 此亦監、兵使相與揣度事情, 如是馳啓也。 依其狀啓, 招致老土, 或其次子, 明白開諭後, 斬而與之, 恐合機宜。 但老土, 名雖歸順, 而茂山開市之後, 一不來現, 今又因其子之投入我境, 旣發恐脅之言, 又肆侵軼之毒, 不待渠之躬詣邊上, 遽爾(斬給)〔斬級〕 , 則是亦示我弱而增彼勢也。 今當諭之曰: ‘爾子之叛爾而來, 初不知之, 姑許留接, 及聞爾言。 叛父之子, 人所共誅, 我豈有一毫靳惜之理? 今爾來謁, 則於爾所見處, 卽當斬而付爾。’ 云云。 如是傳說, 觀其所爲而處之, 爲當。 但此事未結末之前, 阿老若或聞知, 則必走入忽賊, 爲患不細。 阿老奴胡等, 分囚內地各官, 十分堅牢, 俾無逃躱, 或自盡之弊, 亦當。 急遣宣傳官, 密諭此意于監、兵使, 何如?" 傳曰: "允。"


    • 【태백산사고본】 104책 187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2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