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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86권, 선조 38년 4월 26일 경오 6번째기사 1605년 명 만력(萬曆) 33년

비변사가 병조·호조에 저장된 목면을 북변에 운송하는 것, 군사 증강 및 성의 보수 등을 회계하다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북쪽 변방에 군량을 조달하는 것이 오늘날 제일 급무입니다. 성교대로 면포로 중국과 우리 지방에서 무역하게 되면 곡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병조와 호조에 저축된 목면을 일체 긴급하지 않은 곳에는 쓰지 말고 연속적으로 본도에 들여보내 그것으로 곡식을 사들여 군량을 조달하는 것이 과연 편리하고 유익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두 조의 각 20동(同) 및 황해도 병영의 목면 10여 동을 보내 목전의 다급함을 구제하고, 이어 두 조로 하여금 여러모로 조치, 준비하여 계속 들여보내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각도의 재상 속목(災傷贖木) 및 사헌부와 형조의 속목 같은 것도 하찮은 것 같지만 역시 반드시 일일이 수합하도록 계하하여 통지하고 그것을 내려보내 보태 쓰게 해야겠습니다. 하삼도와 황해도에 경관(京官)을 차출해 보내 별도로 사목을 만들어 모속(募粟)하는 관례처럼 방편을 써 조치하도록 하는 것도 무방하겠습니다.

또 우리 나라의 성은 험준한 데에 웅거하지 않고 광활하게 하는 데만 힘써 견고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성교와 같습니다. 회령성은 둘레는 매우 넓은데 안에 우물이 없으니, 수어(守禦)하는 데에 적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조경과 의논하니 ‘본부는 고령(高嶺)보을하(甫乙下) 양진의 사이에 있는 바 참으로 이곳은 요충지로 적을 견제하는 지역이니 결코 다른 곳으로 옮겨 설치할 수 없다. 다만 성 안에 옛적에는 백성들이 조밀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60∼70호만 있어서 객군(客軍)을 많이 증강하지 않으면 성을 지키기 어려우며 동쪽 넓은 곳에 요량하여 성을 쌓아야 한다. 또 서문 밖에 큰 시내가 있는데 성까지의 거리가 겨우 수십 보이니, 도랑을 파 물을 끌어들이고 시냇가 험준한 곳에 포루(砲樓)를 설치하고 그 양쪽에 양마장(羊馬墻)을 높이 쌓으면, 위급한 상황에서도 물을 길어다 쓸 수 있어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새 부사가 내려갈 때에 이 뜻을 일러 보내, 그로 하여금 감사와 병사에게 상의하여 지형을 살펴보고 급급히 계문하도록 하여 그에 의거해서 의논해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지금 이 홀적은 진을 침에 있어 계책이 있고 행군하는 데에 기율이 있어 지난날의 좀도둑질이나 하는 하찮은 적과 비할 바가 아니니, 장래의 걱정이 참으로 작지 않습니다. 동관은 견고한 성이라고 일컬어졌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함락당하였습니다. 요사이 왕래하는 선전관을 통하여 들으니 ‘참호가 얕고 좁은 데도 수리하지 않고 말목(抹木)이 드물고 짧은 데도 다시 설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로써 미루어보면 기타의 여러 진도 대략 알 수 있으니, 오랑캐가 만약 많은 군사를 동원하여 성을 육박해 오면 함락당함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육진 중에 가장 요충지가 되는 지역에 산성을 한두 군데 쌓아 웅거하여 지키는 계책을 마련하는 것이 사의(事宜)에 합당할 것 같으니, 감사와 병사로 하여금 형편을 살펴보아 치계하도록 한 뒤에 다시 의논하여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또 여러 진에 지금 군사를 증강하여 그들에게 변란을 대비하는 여가에 성을 보수하고 참호도 깊이 파, 적을 방어할 수 있는 도구를 완벽하게 정리하여 대비하도록 할 것을 감사와 병사에게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4책 186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59면
  • 【분류】
    군사(軍事) / 외교(外交) / 재정(財政)

    ○備邊司回啓曰: "北邊繼餉, 爲今日第一急務。 依聖敎, 以綿布換貿於彼我地方, 可以得穀。 兵、戶二曹所儲木綿, 一切勿用於不緊之處, 連續入送本道, 使之貿穀, 以資軍食, 果爲便益。 先將二曹各二十同及黃海兵營木綿十餘同, 以救目前之急, 仍令二曹, 多般措備, 鱗次入送爲當。 如各道災傷贖木及司憲府、刑曹贖木, 雖似零星, 亦須一一收合啓下, 知委下送, 以爲補用之資。 差送京官於下三道及黃海道, 別爲事目, 如募粟之例, 方便措得, 亦無所妨。 且我國城子, 不爲據險, 務廣闊、不堅壯, 誠如上敎。 會寧城子, 周回甚廣, 內無井泉, 其於守禦, 似爲齟齬。 今與趙儆相議, 則本府在高嶺甫乙下兩鎭之間, 實是要衝控制之地, 決不可移設於他處。 但城內, 昔時則民居稠密, 今則只有六七十戶, 若不多添客軍, 難以守城, 就東邊空闊處, 斟酌進築。 且西門外有大川, 距城僅數十步, 若鑿渠引水, 設砲樓於川邊斗絶處, 於其兩傍, 高築羊馬墻, 則臨急可以汲用, 似無所患云。 新府使下去時, 以此意言送, 使之商議於監、兵使, 審察地形, 急急啓聞, 以憑議處爲當。 今此忽賊, 布置有計慮; 行軍有紀律, 恐非前日零賊狗偸之比也, 將來之憂, 誠爲不細。 潼關號爲堅城, 而一夕見陷。 近因往來宣傳官聞之, ‘壕塹淺, 而不爲修設; 抹抶木踈短, 而不爲改排。’ 云, 以此推之, 其他列鎭, 槪可知矣。 虜若擧衆薄城, 則得免陷敗難矣。 六鎭中最爲要害之地, 設築山城一二處, 以爲據守之計, 似合事宜。 令監、兵使, 相度形便馳啓後, 更議處之爲當。 且列鎭, 今方添兵, 使待變之暇, 修補城子, 深鑿壕塹, 凡可以隄防此賊之具, 無不整理以待之意, 下諭監、兵處, 何如?" "允。"


    • 【태백산사고본】 104책 186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59면
    • 【분류】
      군사(軍事) / 외교(外交) / 재정(財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