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훈을 영의정으로, 유영경을 좌의정으로, 기자헌을 우의정으로 삼다
임금이 대신이 오래 궐원(闕員)된 것을 들어 좌상(左相)과 우상(右相)에게 복상(卜相)하라고 명하였다. 윤승훈(尹承勳)을 영의정으로, 유영경(柳永慶)을 좌의정으로, 기자헌(奇自獻)을 우의정으로 삼았다. 【윤승훈은 정승이 된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자못 유능하다는 명성이 있었으므로 수상이 됨에 이르러서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성미가 조급하고 도량이 좁아 작은 일에 당해서도 성을 잘 내었으므로 자못 대신다운 도량이 없었다. 】
사신은 논한다. 기자헌은 사당(私黨)을 심지 않고 마음가짐이 공평 정직했다. 서전(西銓)에 있을 적에 전배(前輩)들이 뇌물에 의거하여 벼슬시키는 것을 통탄스럽게 여겨 그 폐단을 고치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전후 출신(出身)한 사람들을 기록하여 하나의 명부를 만들어 놓고 무술을 시험보이기도 하고 무서(武書)를 강(講)하기도 하여 우열을 매겨 놓고 차례대로 승용(陞用)하였으므로 사방의 무사들이 모두 모여 들어 말하기를 ‘기야(奇爺)가 병조를 맡으면서는 무재가 있는 사람은 진출하고 재물이 있는 사람은 물러가게 되었다.’ 하였다. 천관(天官)081) 의 장이 되어서는 더욱 세속을 진정시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아 견별(甄別)하고 주의(注擬)함에 있어 피차를 구분하지 않고 오직 현명한지 간사한지만을 가리어, 진실로 현명한 사람이면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서둘러 임용하였고, 진실로 현명하지 못하면 친애(親愛)하는 사이일지라도 수용(收用)하지 않았다. 이때 한두 명의 간사하고 망령된 무리들이 모해하려고 하여 화가 장차 헤아릴 수 없게 되었으므로 위태롭게 여기는 사람이 많았었다. 그러나 조금도 괘념하지 않고 엄연(儼然)하게 자신을 지키며 문을 닫고 들어 앉아 손님을 사절하였으므로 간계와 참소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송경(松京)의 유수(留守)가 궐원이 되었는데 기자헌은 ‘전유수 유희서(柳熙緖)는 탐심이 끝이 없으니 민생에게 피해가 미쳤을 것이다.’고 생각하여 거꾸로 매달린 듯한 급박함을 풀어주기 위해 성천 부사(成川府使) 허잠(許潛)을 발탁하여 제수하였다. 그러자 구도(舊都)의 부로(父老)들 수백 명이 서로 이끌고 찾아와 신중하게 가려준 데 대해 사례했으니, 그가 사람들을 감동시킨 덕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정사(政事)082) 를 맡아본 3년 동안에 대문에는 뇌물 꾸러미가 끊어졌고 대청에는 청탁하러 오는 손님이 없었다. 세도(世道)를 만회하여 큰 업적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그의 마음가짐을 궁구해 보면 또한 지극히 공정하고 사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정승이 됨에 이르러서는 서리(胥事)·위졸(衛卒)들조차 환호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모두들 ‘이조 판서가 정승으로 들어갔으니 조정이 편안해지고 만백성도 편안해지겠다.’고 하였다.
한준겸(韓浚謙)을 부제학으로, 윤수민(尹壽民)을 동부승지로, 【준례에 따라 승진한 것이다. 】 문여(文勵)를 집의로, 이정험(李廷馦)을 이조 정랑으로, 윤탁(尹晫)을 병조 정랑으로, 남복규(南復圭)를 형조 좌랑으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99책 174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612면
- 【분류】인사(人事)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
○壬申/上以大臣久闕, 命左右相卜相, 以尹承勳爲領議政, 柳永慶爲左議政,【承勳, 爲相旣久, 頗有能聲, 及(有) 〔爲〕首相, 人不爲異。 然性度褊急, 遇小事輒怒, 殊無大臣度量。】 奇自獻爲右議政。
【史臣曰: "自獻, 不植私黨, 持心平正, 其在西銓, 痛前輩官人以賄, 思革其弊, 記前後出身之人, 以成一籍, 或試弓馬, 或講武書, 第其優劣, 以次陞用, 四方之士, 咸聚而言曰: ‘奇爺主兵, 有才者進, 有財者退矣。’ 逮長天官, 益以鎭定流俗, 爲己任, 其於甄別注擬之際, 不分彼此, 唯擇賢邪, 人苟賢矣, 雖不相好, 用之是急, 苟爲不賢, 雖所親愛, 亦不收拾。 于時, 有一二邪侫之輩, 謀欲圖之, 禍將不測, 人多危之, 略不爲辨, 儼然自守, 杜門謝客, 奸讒不同逞。 松京闕留守, 自獻以爲, 舊留守柳熙緖, 貪饕無厭, 害及生民。 思解倒懸之急, 擢許潛於成川以授之。 於是, 舊都數百父老, 相與扶携委來, 私謝其愼簡之意。 感人之德, 據此可知也。 秉政三年, 門絶苞苴, 堂無私客。 雖不能挽回世道, 以建大有爲之業, 究其心, 則亦可謂至公, 而無私者也。 及爲相, 胥吏衛卒, 無不歡呼曰: ‘吏判入相, 朝廷定矣, 萬民安矣。 韓浚謙爲副提學, 尹壽民爲同副承旨, 【以例陞遷。】 文勵爲執義, 李廷馦爲吏曹正郞, 尹晫爲兵曹正郞, 南復圭爲刑曹佐郞。"】
- 【태백산사고본】 99책 174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612면
- 【분류】인사(人事)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