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변사가 유정에게 조만간 도일할 계획이라고 귤지정에게 알릴 것을 건의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유정(惟政)이 왕년에 여러 차례 가등청정(加藤淸正)의 진(陣) 속에 드나들어 청정과 문답할 때에 큰 소리를 치며 굴하지 않았는데, 청정이 이를 매우 좋게 여겨 매양 유정의 사람됨을 일본인에게 칭찬했기 때문에, 일본에서 탈출해 온 사람들이 많이 말하기를 ‘왜인들이 송운(松雲)의 이름을 전해가며 칭찬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당초에 휴정(休靜)을 시켜 통서(通書)하게 했던 것은 다만 훗날 유정으로 하여금 왕래하게 하는 장본을 삼고자 해서였습니다. 이번에 유정이 바다를 건너가면 당연히 고승(高僧)으로 지목되어 왜인들이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저 귤지정(橘智正)이야말로 대마도(對馬島)의 보통 왜일 뿐인데 유정 스스로가 가볍게 처신하여 내려가 서로 보게 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할 듯도 싶습니다.
지난번에 왜인이 유정에게 글을 보냈을 때에도 멀리 산 속에 있다고 하면서 즉시 답서(答書)하지 않았으니, 즉시 유정으로 하여금 귤지정에게 보내는 글 1통을 만들도록 하여 생각과 요량이 있는 사리(闍梨)052) 를 시켜 귤지정에게 전해 주게 하면서 개유(開諭)하기를 ‘내가 오래지 않아 바다를 건너가서 보진대사(保眞大師)의 뜻이 끝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 네가 어찌 꼭 손문욱(孫文彧)이 돌아온 다음에 돌아갈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면 일본 소식을 먼저 노사(老師)에게 말해서 알려야 하겠다.’라고 한다면 귤지정이 필시 기뻐하며 다행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편리하고 합당할 듯하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원수와 강화(講和)하는 것만도 이미 수치스러운 일인데, 또 일개 사문(沙門)의 힘을 빌려 일을 이루려고 하다니, 육식자(肉食者)053) 의 꾀가 비루하다 하겠다.
- 【태백산사고본】 98책 172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584면
- 【분류】정론(政論) / 외교-왜(倭) / 역사-사학(史學) / 사상-불교(佛敎)
○備邊司啓曰: "惟政, 昔年累度出入淸正陣中, 與淸正問答時, 大言不屈, 淸正甚好之, 每稱惟政, 爲人於日本, 故自日本走來者, 多說倭人傳稱松雲之名云。 當初以休靜爲通書者, 但欲爲他日, 令惟政往來張本也。 今惟政渡海, 則當目爲高僧, 使倭子等, 有所尊敬。 彼橘智正, 乃馬島一常倭耳。 惟政輕自下去相見之, 或未穩。 往者倭人, 致書于惟政, 而托以遠在山中, 不卽修答。 卽令惟政, 措辭爲一書橘倭處, 使其闍梨有心計者, 傳致于橘倭, 而開諭曰: ‘我當不久渡海前去, 以卒成保眞大師之志。 爾其必待孫文彧回還, 然後還去耶? 日本消息, 須先說與老師知之云云’, 則橘倭必以爲欣幸。 如是處之, 似爲便當。 敢啓。" 傳曰: "允。"
【史臣曰: "不共戴天之讎, 與之和好, 旣已羞矣, 而又籍一沙門, 欲成其事, 肉食之謀, 可謂鄙矣。"】
- 【태백산사고본】 98책 172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584면
- 【분류】정론(政論) / 외교-왜(倭) / 역사-사학(史學)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