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병사 이용순이 변방의 오랑캐와 접전했는데 중과부족이었음을 보고하다
또 치계하기를,
"이달 16일에 성첩(成貼)한 훈융 가장(訓戌假將) 남언상(南彦祥)의 수본(手本)에 ‘당일 사시에서부터 홀적(忽賊)의 대군이 부지기수로 부여지(夫汝只)로부터 본진의 지경인 중도(中島)로 나온 뒤 강변으로 향하여 수상진(水上鎭) 건너편 8리쯤에 있는 호동(胡洞)의 기암현(妓巖峴)을 넘어가서 곧바로 미전(美錢)으로 향하였다. 호기(胡騎)가 2운(運)으로 나뉘었는데 2백여 기(騎)가 장성(長城)의 문 근처로 달려가 둔치고서 칼을 휘두르고 횡행하며 활을 쏘므로, 계원장(繼援將)과 가장(假將) 홍대방(洪大邦)이 거느린 30여 명이 문을 열고 쫓아가 서로 싸우며 포를 쏘고 활을 쏘아 맞힌 것이 자못 많았으나, 저들은 많고 우리는 적으므로 쫓아가 베지는 못하였다. 신시 말에 대군이 모두 간 뒤에 이 적들이 뒤를 막으면서 갔다. 계원장(繼援將) 정기남(鄭奇男), 우령장(右領將) 신제업(申悌業), 우후(虞候)의 군관(軍官) 이개방(李開方), 부사(府使)의 군관 최유경(崔有慶) 등 6인이 본부(本府)에서 변고를 듣고 달려갔는데, 적들이 미전 쪽으로 향하였으므로 추격하여 나아갔다.’ 하였습니다. 홀적(忽賊)의 대군이 지금 바야흐로 돌아가므로 경영하여 쳐죽이고 싶으나, 각 진보(鎭堡)의 군사는 스스로 지키기에도 모자라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신의 영하(營下)에 입번(入番)한 군사로서 쓸 만한 자가 1백 명도 채 못되지만 그래도 있는 대로 모두 뽑아 우후 김거병(金去病)과 신의 군관 정기남·승진(承進)·신제업 등에게 나눠주어 거느리고 떠나게 하였는데, 중과(衆寡)가 현격한 차이가 나서 감히 당할 수 없으니, 북방의 병력이 지극히 한심합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6책 169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556면
- 【분류】행정(行政) / 군사(軍事) / 외교-야(野)
○又馳啓曰: "今月十六日成貼, 訓戎假將南彦祥手本內。 ‘當日巳時爲始, 忽賊大軍, 自夫汝只, 不知其數, 鎭境中島出來, 向江邊水上鎭越邊八里許, 胡洞妓巖峴越去, 直向美錢。 胡騎分二運, 二百餘騎, 長城門近處馳屯, 揮劍橫行發射。 繼援將與假將洪大邦所率三十餘名, 開門追逐相戰, 放砲發射, 或射中頗多, 彼衆我寡, 不得追斬。 申時末, 大軍畢行後, 此賊等捍後而去。 繼援將鄭奇男、右領將申悌業、虞候軍官李開方、府使軍官崔有慶等六人, 自本府, 聞變馳到, 賊徒指向美錢地, 追擊進去’ 事馳報。 忽賊大軍, 今方回還, 雖欲經營截殺, 而各鎭堡軍兵, 自守不足, 臣營下入番軍士可用者, 未滿百名, 沒數抄發, 虞候金去病及臣軍官鄭奇男ㆍ承進、申悌業等, 分領起送, 而衆寡懸殊, 不敢抵當。 北方兵力, 極爲寒心事。" 啓下備邊司。
- 【태백산사고본】 96책 169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55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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