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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69권, 선조 36년 12월 28일 기유 3번째기사 1603년 명 만력(萬曆) 31년

북병사 이용순이 변방의 오랑캐가 저희끼리 싸우는게 아닌 것 같다고 보고하다

또 치계하기를,

"이달 15일 미시에 성첩(成貼)한 경원 부사(慶源府使) 이광영(李光英)의 치보(馳報)에 ‘당일 오시에 홀적(忽賊) 50여 명이 호인(胡人)을 뒤쫓아 강을 건너 장성(長城) 문 밖까지 왔다. 부사와 병사(兵使)의 군관(軍官) 정기남(鄭奇男)과 우후(虞候)의 군관 박응참(朴應參)이 한꺼번에 문을 열고 나가 에워쌀 듯이 하니, 적들이 곧바로 강을 건너서 밭 사이에 숨었던 호인 4명을 잡아 가서 현성(縣城) 문밖에 둔결(屯結)하였고, 대군(大軍)은 부여지(夫汝只)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하였습니다. 홀적의 우두머리 아질이(阿叱耳)가 스스로 대군을 거느리고 번호(藩胡)를 공격하여 가는 곳마다 온전한 데가 없습니다. 경원 지경의 부여지 등 일곱 부락은 호인이 많이 살아서 갑자기 침범할 수 없는데도 단번에 분탕질을 하고, 또다시 군사를 나누어 마구 살육과 약탈을 자행하면서 현성까지 침범하고 강을 건너 뒤쫓아 경원부까지 바짝 다가왔습니다. 이는 우리 나라를 깔본 나머지 이토록까지 거리낌없이 방자한 짓을 하는 것인데, 이 적이 하는 짓을 보면 저희끼리 서로 싸우는 따위는 아닌 듯합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6책 169권 8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555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軍事) / 외교-야(野)

    ○又馳啓曰: "今月十五日未時成貼, 慶源府使李光英馳報內, ‘當日午時, 忽賊五十餘名, 追逐胡人, 越江至長城門外, 府使及兵使軍官鄭奇男、虞俟軍官朴應參, 一時開門出去, 若將圍抱, 賊徒旋卽越江, 胡人四名, 田間隱伏, 被捉而去, 縣城門外屯結, 而大軍, 則夫汝只仍留事馳報矣。 忽賊阿叱耳, 自領大軍, 攻擊藩, 所向無全。 如慶源夫汝只等七部落, 居彌滿, 未可猝犯, 而一擧焚蕩, 又復分兵, 旁行殺掠, 至犯縣城, 越江追逐, 迫至慶源府。 其輕視我國, 縱恣無忌, 至於此極。 此賊擧措, 似非自中相戰之類事。" 啓下備邊司。


    • 【태백산사고본】 96책 169권 8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555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軍事)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