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변사가 강화와 파주 개성부의 군기를 강화할 것과 적임자를 추천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가 비망기(備忘記)로 전교하신 말씀을 보건대, 신들은 지극히 감격스러운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강화(江華)는 조종(祖宗) 때부터 독진(獨鎭)이었는데, 근래에는 또 수령(守令)을 가려 보내고 요역(徭役)을 감면하였는가 하면 심지어는 본부(本府)의 무사(武士)까지도 무용번(武勇番)을 들지 않고 본처(本處)에 머물러서 조련케 하였으니, 본관(本官)이 착실하게 조치만 한다면 양식을 비축하고 군사를 훈련시키는데 반드시 두서가 있게 되어 경기를 방비하게 되리라 여겨집니다. 어사(御史)가 내려갈 때에 열시(閱試)할 것을 계청(啓請)하였습니다마는 떠날 날짜가 아직 멀었으니, 본사(本司)의 문관 낭청(郞廳)을 되도록 빨리 보내 군향(軍餉)의 실수(實數)를 살피고 또 조련 상황과 재예를 시험하고 오게 한 뒤 근일의 조치에 공효가 있는지를 보아서 상벌(賞罰)을 계품(啓稟)하게 하는 것이 온편하겠습니다.
용진(龍津)과 파사 산성(婆娑山城) 두 곳은 당초 인력을 많이 들여 겨우 성취시켰는데 중간에 보살피지 않아 군사가 죄다 흩어지고 수장(守將)도 자주 바뀌어 한갓 군기(軍器)만 유치해 두는 빈 성이 되었으므로, 본사가 이를 염려하여 전에 낭청(郞廳)을 보내 적간(摘奸)한 뒤 입계(入啓)하여 먼저 수장을 가리라는 전교를 받았습니다. 신들이 늘 생각하건대 수장을 곧 가려 보내야 하겠으나 군사와 양식을 규획(規劃)하여 지급하지 않으면 수장을 가려 보내더라도 보탬이 없을 것이기에 어렵게 여겨 이제까지 거행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근래 토적(土賊)이 여러곳에서 자주 일어나니, 요로(要路) 여러곳에 둔병(屯兵)을 하고 장수를 정하여 보낸다면 이익이 작지 않을 것입니다.
두 곳의 수진장(守鎭將)을 곧 계하(啓下)하되, 용진은 전일 양식을 받고 조련한 군사로서 여러곳에 흩어져 있는 자를 다시 찾아 모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사가 들어가더라도 본진(本鎭) 근처에는 경작할 만한 땅이 없어 사람들이 의지할 수 없으니, 봉안역(奉安驛)의 위전(位田) 중에서 역자(驛子)가 경작하는 것만 제외하고 모두 본진에 절급(折給)하여 진군(鎭軍)으로 하여금 둔경(屯耕)하게 하면, 그래도 의지할 바가 있게 될 것입니다. 파사성의 군사는 나올 곳이 없는데, 영서(嶺西) 부근 각 고을의 군사로서 강릉(江陵)·삼척(三陟) 두 진(鎭)에 들어가는 자들의 경우는 한만(閑漫)하여 낭비할 뿐이니, 그 부근인 파사로 들어와 수직(守直)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한다면 보탬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이 밖에 다른 군사도 뽑아 주어 영구히 지킬 방책도 함께 충분히 헤아려 시행하도록 병조에 명하소서.
파주 산성(坡州山城)에 대해서도 아울러 거행해야 된다는 점을 본사 역시 늘 유념하고 있었으나 바야흐로 죽주 산성(竹州山城)의 일이 급하였으므로 한꺼번에 품처(稟處)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경도(京都)의 후면은 이 성이 제일 긴요하나, 염려되는 것은 본주(本州)가 그 중에서도 더욱 형편없이 결딴이 나 경기의 물력이 탕잔(蕩殘)되었으므로 비록 방책을 세우고 규획하더라도 쉽게 성취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전일 산성의 사면 10리에 대해서만이라도 세공(稅貢)과 모든 잡역을 면제하여 먼저 백성을 불러모으는 데에 힘쓸 것을 청한 것은, 먼저 이 기틀을 마련해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마땅한 수령을 얻어야 모든 일을 착수할 수 있을 것인데 목사(牧使) 이원(李瑗)은 적임자가 못되니, 체차(遞差)하고, 그 후임자를 이조로 하여금 엄선하여 보내게 하소서.
파주의 본성(本城)을 이미 수리하였으나, 개성부(開城府)에서도 군졸을 조련하여 뜻밖의 일에 대비하게 하면 참으로 유익할 것입니다. 본부(本府)의 주민은 모두가 장사하는 사람들로서 괴로움을 견디고 행실을 익히며 하는 일에 근면하여 경성(京城)의 시정(市井)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신들이 요즈음 그곳의 사세를 듣건대, 갑자기 부르더라도 말을 가진 장정 5백∼6백 명 정도는 곧 모을 수 있다고 합니다. 착실히 정(精)하게 뽑아서 적부(籍簿)를 만든 뒤 장사하는 여가에 관가에 소속시켜 재예를 조련케 하고 조정에서 때때로 관원을 보내 시재(試才)하여 논상(論賞)한다면, 사람들이 반드시 용동(聳動)할 것입니다. 그리고 유수(留守) 허잠(許潛)은 전에 성주 목사(星州牧使)였을 당시 도체찰사(都體察使)의 중군(中軍)으로서 성심껏 군사를 조련하여 크게 성과를 거두었으니, 만약 이 일을 책임지우면 반드시 마음을 다해 봉행할 것입니다. 본사(本司)에서도 이미 이런 의논이 있었는데, 상교(上敎)를 받드니 지극히 윤당합니다.
무학(武學)을 이 곳에 설립하여 무사(武事)를 익히도록 권장하는 것은 오늘날의 급선무입니다. 다만 이곳 사람들은 장사가 아니면 글 읽는 것을 일삼아 무사를 익히는 것을 전폐(專廢)하고 있으니, 우선 먼저 장정을 뽑아서 시재한 뒤 논상(論賞)함으로써 진작시키는 근본으로 삼고, 무학은 사세를 보아 설립하는 것이 온당할 듯합니다. 그 사이의 처치하는 편의와 논상하는 절목(節目)에 대해서는 허잠으로 하여금 자세히 살펴 본사에 품보(稟報)하게 하고 그 말에 따라 계하하여 알려서 시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강도(江都)야 말로 국도(國都)의 인후(咽喉)와 같은 곳이다. 왜적이 걱정스러워서가 아니라 천하의 사변은 끝이 없는 법이니, 혹 뜻밖의 변고가 바다에서 생기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이 곳은 반드시 병선(兵船) 몇 척을 만들고 사공과 수부를 모두 정제하여 비상한 변고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곡식을 축적해야 한다. 곡식을 축적해두어야 군사를 양성할 수 있고 방수(防守)할 수 있으니, 강화의 전세(田稅)는 상납하지 말고 그 곳에 두게 하고, 하도(下道)의 전세도 적당히 덜어내어 강화에 두게 하라. 해마다 이렇게 하면 축적되는 곡식이 많을 것인데, 경중(京中)에서 옮겨다 쓸 일이 있을 때 그곳에서 하루면 실어올 수 있을 것이니, 경창(京倉)에 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 한 조목에 대해 호조(戶曹)로 하여금 헤아려 처치하게 하라. 대개 감사(監司)는 한 도의 방백(方伯)으로서 병마 절도사(兵馬節度使)를 겸하니 군사를 조련하고 험조(險阻)를 설치하는 모든 일을 감사가 주관하게 된다. 따라서 반드시 마음과 힘을 다하여 극진히 조치해야만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계사(啓辭)를 감사에게 하유(下諭)하라. 조치를 게을리 하면 감사를 책망할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특별히 개성·강화 등에 사신(使臣)을 보내 시재(試才)하여 논상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6책 167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547면
- 【분류】정론(政論) / 행정(行政) / 인사(人事) / 군사(軍事) / 재정(財政) / 교육(敎育)
○備邊司啓曰: "伏見備忘記傳敎之辭, 臣等無任感激之至。 江華, 自祖宗朝以來, 爲獨鎭, 而近來又擇遣守令, 蠲減徭役, 至於本府武士, 亦不上武勇番, 留在本處操鍊。 本官若着實措置, 則備糧鍊兵, 必有頭緖。 擬於京畿防備御史下歸時, 啓請閱試矣, 第其發行尙遠。 本司文郞廳, 從近發送, 査知軍餉實數, 又爲閱操試才而來。 觀近日措處有効與否, 而啓稟賞罰爲便。 龍津、婆娑兩處, 當初多費人力, 僅得成就, 中間不爲看護, 軍士盡散, 守將數易, 徒爲軍器留置空城。 本司爲是之慮, 曾遣郞廳, 摘奸入啓, 而伏蒙傳敎, 先擇守將。 臣等每爲商度, 守將卽當擇送, 而軍士及糧餉, 不爲規畫以給, 則雖擇一守將, 而無益矣。 以此爲難, 至今未擧。 近來土賊, 頻發於諸處。 若要路諸處, 設屯定將, 則利益非細。 兩處守鎭將, 卽爲啓下, 而龍津, 前日受糧操鍊之軍, 散在於諸處者, 更加搜括募集。 且軍士雖入, 而本鎭近處, 無可耕之地, 人不聊賴。 奉安驛位田, 除驛子起耕外, 盡爲折給本鎭, 使鎭軍屯耕, 則庶有所資。 婆娑城軍士, 無出處。 如嶺西附近, 各官軍士之應入於江陵、三陟兩鎭者, 閑漫浪費而已, 從附近來入於婆娑, 而爲守直之助, 則亦不爲無補。 此外他軍抽給永守之策, 竝令兵曹, 十分商量施行。 坡州山城竝擧事, 本司亦每爲留念, 而方以竹州山城爲急, 未遑一時稟處矣。 京都後面, 則此城爲第一緊關。 所慮者, 本州尤甚無形。 京畿物力蕩殘, 雖設策規畫, 而恐難容易成就。 前日只請山城四面十里, 除稅貢一應雜役, 先務招集人民者, 欲先成此基也。 但守令必得人, 然後凡事可以下手。 牧使李瑗弛緩, 請遞差, 其代, 令吏曹, 十分極擇差遣。 坡州, 旣修葺本城, 而開城府又鍊卒, 以備意外, 則允爲便益。 本府居民, 皆是商販之徒, 而耐苦習行, 勤於趨事, 與京城市井之人有異。 臣等近聞其處事勢, 則雖卒然號名, 而有馬丁壯五六百名, 可卽爲聚會云。 若着實精抄成籍, 興販之暇, 隷官鍊才, 自朝廷, 有時遣官試才論賞, 則人必聳動。 且留守許潜, 曾爲星州牧使, 以都體察使中軍, 誠心鍊兵, 大有成効。 若責以此事, 則必爲盡心奉行。 司中已有此議矣, 伏承上敎, 至爲允當。 武學設立本處, 勸奬業武, 今之急務, 但此處之人, 非商販, 則以讀書爲事, 專廢鍊武。 姑令先爲簽丁試才, 以爲論賞興起之地, 而武學, 則觀事勢設立, 似爲便當。 其間處置便宜, 與論賞節目, 令許潜, 詳察稟報本司, 以憑商度啓下, 知委施行何如?" 傳曰: "允。 江都, 乃國都咽喉之地, 非必以倭賊爲可虞, 天下之事變無窮, 安知或有意外之變, 由水路而生也? 此處須造兵船若干隻, 篙師、水手, 無不整齊, 以備非常, 且必積穀。 積穀, 然後可以養兵, 可以防守。 江華田稅, 勿爲上納, 留置于其處, 至於下道田稅, 量宜除出, 入置于江華, 年年如是, 則積穀必多。 設有京中移用之事, 自其處, 朝發而夕至矣, 與京倉留置, 何以異哉? 此一款, 令戶曹量處。 大槪監司, 爲一道方伯, 兼兵馬節度。 凡鍊兵設險, 皆監司所主管。 必須竭其心力, 極盡措置, 然後可期其効。 此啓辭, 監司處下諭。 若措置弛緩, 則當責監司。 且自上別遣使臣開城、江華等處, 當試才論賞矣。"
- 【태백산사고본】 96책 167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547면
- 【분류】정론(政論) / 행정(行政) / 인사(人事) / 군사(軍事) / 재정(財政) / 교육(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