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록》 교정청에서 종부시가 작성한 초고에 대해 아뢰다
《선원록(璿源錄)》 교정청(校正廳)이 아뢰기를,
"신들이 전일 종부시가 찬록(纂錄)한 첫 초고를 교정해 보니, 기록한 것이 소략하여 십중 칠팔을 빠뜨렸을 뿐더러 윤서(倫序)까지도 착오가 많았습니다. 지금 보완하기에 믿을 만한 것은 경외(京外)에 살아 있는 자손이 바친 단자(單子)밖에 없는데, 원파(遠派)는 자손이 거의 다 대진(代盡)하여 선대의 이름을 모르는 자도 있고, 혹은 후손이 아주 없어서 물어볼 데가 없는 경우도 있으니, 그것을 전적으로 믿고서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또한 견강 부회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세족(世族)·명가(名家)의 족보 가운데는 어느 경우도 종실의 지파(支派)에 관계되지 않은 데가 없으니, 거두어 참고하면 참으로 도움이 많을 것이기에 소문에 따라 뽑아 와서 참록(參錄)하였습니다.
또 예전부터 파보(派譜) 가운데에는 위로는 열성(列聖)의 어휘(御諱)부터 공주·옹주 이하 부인의 이름자와 나이를 모두 적고 식년(式年)마다 그 뒤에 난 자손도 다 첨록(添錄)하였으니 신중히 하고 상세히 한 뜻이 깊은 것입니다. 그런데 난리 후에는 기록한 것이 잘못되었을 뿐더러 바친 단자가 전혀 구규(舊規)에 벗어납니다. 세대가 소원하여 이름자를 모른다면 혹 말이 될 수도 있겠으나, 살아 있는 사람일지라도 부인의 이름자는 꺼려서 쓰지 않아 유식한 무리도 ‘어머니의 이름이나 할머니의 이름은 자식으로서 차마 쓰지 못할 일이다.’ 하고, 심한 경우에는 서로 전하여 알려 써서 바치지 못하게 합니다. 살펴서 다스리는 길이 없으면 구규를 본떠서 모아 보완하려 하더라도 마침내 성취하기 어려울 것이니 매우 답답합니다. 심한 경우는 유사를 시켜 나타나는 대로 죄를 다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부인의 이름자는 반드시 쓸 것은 없다. 다시 의논하여 시행하라."
하였다. 【《예기(禮記)》에 ‘임금 앞에서는 사휘(私諱)가 없고 묘중(廟中)에서는 휘(諱)하지 않는다.’ 하였다. 더구나 보첩(寶牒)의 기록에는 열성도 휘하지 않는데, 어찌 신하로서 이름을 적지 않겠으며 부인들은 신하가 아니겠는가. 오늘날의 식자들이여, 딱하도다. 】
- 【태백산사고본】 95책 165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511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璿源錄》校正廳啓曰: "臣等就校前日宗簿寺所纂初草, 則非徒所錄草略, 什遺七八, 至於倫序, 亦多錯悞。 今之所恃而纂完者, 不過京外時存子孫所呈單子, 而遠派則子孫率皆代盡, 或有不知其先世名號者, 或有後裔絶盡, 無從訪問, 專靠取質, 又涉傅會。 世族名家族譜中, 宗室支派, 無處不係, 收取憑考, 實多裨益, 隨所聞取來參錄。 且自古派牒中, 上自列聖御諱, 公主、翁主以下, 婦人名字年歲, 無不書錄。 每等式年, 其後生子孫, 亦皆添錄, 謹重詳密之意, 至矣。 亂後所錄, 非徒錯悞, 所呈單子, 專失舊規。 世代疎遠, 不識名字, 則容或可言, 雖生存之人, 婦女名字, 則忌諱不書, 有識之輩, 亦曰母名、祖母之名, 人子所不忍書, 甚者傳相告語, 使不書呈。 若無檢治之路, 則雖欲倣舊纂完, 終難成就, 極爲悶慮。 甚者, 令攸司, 隨現治罪何如?" 傳曰: "婦人名字, 似不必書。 更議施行。" 【記曰: "君所, 無私諱, 廟中不諱。" 況寶牒之錄, 列聖所不當諱。 豈以人臣而不名也? 婦人獨非人臣耶? 時之有識者, 哀哉!】
- 【태백산사고본】 95책 165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511면
- 【분류】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