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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63권, 선조 36년 6월 4일 기축 2번째기사 1603년 명 만력(萬曆) 31년

비변사에서 북방 오랑캐의 일을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노토(老土)086) 는 분탕을 당한 뒤에도 뉘우치는 기색이 전혀 없고, 회령(會寧)의 번호(藩胡)도 여러 차례 공격하여 겁탈하고 있으니 지극히 통분합니다. 이번에 감사 한효순(韓孝純)이 조목조목 진달한 각항의 사정에 의거하여 반복해서 상의해 보건대, 노토란 오랑캐는 매우 사납고 거만하여 말로 설득해서 그들의 태도를 고치게 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병마를 출동하여 국가의 위엄을 보이려고 하면 이 오랑캐가 박가천(朴加遷)으로 옮겨 갈 것이니 그럴 경우 우리 국경과의 거리가 매우 멀기 때문에 병마가 반드시 여러 부락을 지나가야만 비로소 그들의 소굴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형세가 용이하지 않으니 결코 경솔하게 행동하기는 어렵습니다.

토병을 간첩으로 보내 유인하여 계책을 쓰는 것이 비록 역사(力士)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노토에게 9명의 아들이 있는데 모두가 용맹스럽습니다. 여러 부락이 두려워하는 것도 그에게 이런 아들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설사 그런 계책을 성취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의 아들들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을 것이고 반드시 후환만 있게 될 것이니, 이 또한 경솔하게 시행하기는 어려울 듯싶습니다.

개시(開市)하는 일에 대해서 의논하는 사람들이 모두 ‘노토회령의 번호(藩胡)와 원한을 맺고 있으므로, 비록 본부에 성의를 바치고 싶지만 저들의 화를 입게 될까 두려워서 왕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산(茂山)으로 와서 정성을 다하여 귀순하겠다는 것이다. 그 말을 믿을 수는 없지만 사세로 보면 진정에서 나온 것인 듯하다. 무산보 같은 데에다 개시를 허락하여, 허수라(虛水羅)의 여러 부락 오랑캐들이 풍문을 듣고 몰려와서 마음대로 물건을 매매한다면, 노토 부자도 반드시 나와서 성의를 바치게 될 것이다. 그런 뒤에 마땅히 이해를 들어 반복해서 개유하여 기어이 그들 마음을 고치게 한다면, 당초에 이 오랑캐를 따르던 무리들을 우리가 모두 무마하여 소유하게 될 것이고, 회령의 번호도 안심하고 모이게 되어 변방이 자연히 튼튼해지게 될 것이다.’ 합니다.

그런데 혹자는 말하기를 ‘무산에다 개시를 하면 박가천(朴加遷) 깊숙한 곳에 사는 오랑캐들이 대부분 길목을 알게 될 것인데 하루아침에 뜻밖의 근심이 있게 된다면 여러 부락들이 풍문을 듣고 따라서 일어날 것이니 결코 방어하기 어려울 것이다.’고 하는데, 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차유령(車踰嶺) 밖에 살고 있는 호인(胡人)들이 우리 나라 산천의 험준한 곳과 평탄한 곳을 거의 알고 있으므로 한 사람만 나와서 길 안내를 해도 충분히 도적질을 할 수 있습니다. 어찌 꼭 개시를 한 다음에야 비로소 길목을 알게 되겠습니까.

지나간 일에 대한 경험으로 볼 때, 임진년 이후로 삼수(三水)·갑산(甲山) 지방에 있는 소소한 오랑캐들이 제멋대로 도둑질을 하곤 했었습니다. 지난 갑오년 무렵에 최호(崔湖)가 남도 병사로 있으면서 가을파지보(茄乙波知堡)에다 개시를 하도록 허락했었는데, 지금까지 10년이 되도록 도적에 대한 환란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도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이는 진실로 최호가 개시를 한 공효이다.’ 하고 있으니, 이러한 사실로 비추어 볼 때 무산에 개시를 하게 되면 이익은 있지만 손해는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토병의 사정으로 말하면, 육진(六鎭) 사람들이 개가죽 1영(領)으로 소금 7∼8말과 바꾸는데, 번호에게 소금을 사려면 소금 1말의 값이 조[栗] 8∼9말에 해당됩니다. 본보에다 개시를 한다면 단지 토병들만 이익이 있게 될 뿐만 아니라, 먼 곳에 들어가 일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본보에 모여들어 생활해 갈 계책을 마련할 것이니 성(城) 안의 인구가 많아지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저절로 많아져서 오래지 않아 자연히 큰 진이 될 것입니다.

다만 만호(萬戶)는 품계가 낮으니 반드시 올려서 첨사로 하고, 당상관으로서 명망이 있어 장령(將領)을 감당할 만한 사람으로 차임해 보내어 체면이 중하게 한 다음에야 여러 호인들을 진압할 수가 있으며, 개시를 할 즈음에도 두려워하여 꺼리는 바가 있게 될 것이니, 해조로 하여금 잘 가려서 차출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연회를 베풀어주는 문제에 있어서는 본보나 부령(富寧)의 관사같은 협착한 장소는 편리하지 못하고, 또한 연향에 쓸 기구 및 음악도 갑자기 준비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시행할 수 없습니다. 다만 노토(老土) 등 여러 오랑캐들에 대해서 이미 관시(關市)에 오갈 수 있도록 허락했으니 마땅히 회령의 번호와 원한을 풀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회령의 연향에 와서 참여하게 하더라도 반드시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개시의 절차는 오진(五鎭)의 준례대로 5일 만에 한 차례씩 하며, 농기(農器)·부정(釜鼎)·식염(食鹽) 등의 물건만 매매할 수 있게 하고, 그 나머지의 금물(禁物)에 대해서는 일체 엄중하게 금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변방 정세에 관한 일에 있어서는 대소(大小)의 수령과 변장들이 바로 그때그때 치보하여 감사와 병사의 처치를 기다려야 하는데, 부령 부사 김여율(金汝嵂)은 부임한 초기에 노토가 와서 뵙고, 그의 아들과 사위 등이 무산에 와서 성의를 바치기를 청했었는데 덮어두고 보고하지 않았으니 매우 미편한 일입니다. 감사로 하여금 추고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4책 163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487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외교-야(野) / 무역(貿易) / 물가-물가(物價)

  • [註 086]
    노토(老土) : 오랑캐의 이름.

○備邊司啓。" 老土旣被焚蕩, 不自悛悔, 會寧, 累次攻㤼, 極爲痛憤。 今據監司韓孝純條陳各項事意, 反覆商議, 則老土爲賊, 桀驁已甚, 似難以口舌開諭, 而使之革面, 至於調發兵馬, 欲示國威, 則此賊移居朴加遷, 距我境甚遠, 兵馬必穿過諸部落, 始到其巢穴, 其勢不易, 決難輕擧。 使土兵, 爲之間諜, 誘致行計, 雖曰一力士之事, 老土有九子, 皆有勇力。 諸部之畏憚, 以其有此子也。 設使就計, 不能盡除其子, 必有後患, 此亦恐難輕施。 若其開市一事, 則議者皆以爲: ‘老土旣與會寧結怨, 雖欲納款於本府, 恐被其禍, 不得往來。’ 此所以到茂山致款, 欲爲歸順。 其言雖不可取信, 以其勢言之, 恐或出於眞情也。 若於茂山堡, 許其開市, 虛水羅諸部之, 聞風輻輳, 任意買賣, 老土父子, 亦必出來納款。 此後當以利害, 反覆開諭, 期於革化其心, 則當初從賊之輩, 我可以盡撫以有之, 會寧, 亦當安集, 而藩籬自固矣。 或者以爲: ‘茂山開市, 則朴加遷深處之, 無不識路, 一朝有意外之患, 則諸部從風而起, 決難防禦云。’ 此則不然。 車踰嶺外列居胡人, 無不知我國山谿險易, 一人嚮導, 足以作賊。 豈必開市, 然後始識其路? 以已事之驗言之, 壬辰以後, 三水甲山地方, 零賊竊發無常, 往在甲午年間, 崔湖爲南道兵使, 茄乙波知堡, 許令開市, 至今十年之間, 絶無作賊之患。 南道人皆言, 此實崔湖開市之功。 以此觀之, 茂山開市, 有益而無害明矣。 以土兵言之, 六鎭人, 狗皮一領, 換鹽七八斗。 與藩買鹽, 則鹽一斗, 直粟八九斗。 本堡開市, 則非但土兵有生利, 至於遠處入作之類, 皆湊集於本堡, 以爲資活之計。 城內人丁, 不期足而自足, 不久當作巨鎭。 但萬戶秩卑, 必陞爲僉使, 以堂上有名望, 可堪將領之人, 差送, 以重體面, 然後可以鎭壓諸, 而開市之際, 有所畏憚。 令該曹, 極擇差出宜矣。 至於設宴, 則本堡與富寧館舍, 狹窄, 處所非便, 且其宴享器具及音樂, 猝備爲難, 不可設行。 但老土等諸, 旣許關市往來, 則當與會寧, 解怨釋仇, 雖使往參於會寧宴享, 必無所辭。 開市節次, 依五鎭例, 五日一次, 農器、釜鼎、食鹽等物, 許令買賣, 其他禁物, 一切嚴禁。 係干邊情事, 大小, 爲守令、邊將者, 所當登時馳報, 以候監、兵使處置, 而富寧府使金汝嵂, 到任之初,老土往見, 右子壻等, 到茂山乞款, 而汝嵂掩置不報, 極爲未便。 令監司推考何如?" 傳曰: "允。"


  • 【태백산사고본】 94책 163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487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외교-야(野) / 무역(貿易) / 물가-물가(物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