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선조실록 160권, 선조 36년 3월 25일 신사 1번째기사 1603년 명 만력(萬曆) 31년

귤왜가 제기한 것을 자문을 만들어 군문에 치보하도록 비변사와 상의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적추(賊酋) 의지(義智)·조신(調信) 등의 서계(書契)를 반복하여 읽어 보았는데, 군문(軍門)에서 보낸 유첩(諭帖)의 내용이 엄준하였기 때문에 이 적들이 간략히 회답하였고, 전후 사람들을 쇄환시키는 것으로써 태도를 바꾸고서 성의를 바친다는 증험으로 삼는 것입니다. 가등청정(加藤淸正)이 복건(福建)에 보낸 편지는 내용이 매우 패만스러워 화호(和好)하는 일에 장애만 되었으므로 답한 말에 군색한 표현이 많은가 하면 죄를 청정에게 돌리면서 또 일본은 털끝만큼도 변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실정을 헤아려 보건대 조신 등이 먼저 귤왜와 포로가 된 사람들을 보내어 우리 나라를 떠보는 것으로 뒤에 가강(家康)이 위협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칭탁한 것입니다.

또 좌수사 이영(李英)의 장계 안에 있는 한찬(韓禶)의 공사(供辭)에서도 그들의 기미가 은밀히 노출되었으니, 노적(老賊)이 하는 짓은 참으로 흉악하고 교활합니다. 손문욱을 지금 또 내려보내어 귤왜와 문답할 때에 말을 만들기를 ‘만 군문(萬軍門)이 지난해 겨울에 병사(病死)하였으므로 건 노야(蹇老爺)가 그 직임을 대신하였는데, 만 노야가 관장하던 일을 건 노야가 아직 깊이 알지 못하니 태사(太師)가 그대들이 바라는 일을 이루어주려 하더라도 그 형세가 전일만 못하다. 조신(調信) 등은 어찌 쉽게 결정되기를 바라는가. 이 또한 그대들의 불행이다. 나는 다만 그대들의 사정을 중국에 자세히 품할 뿐이다. 건 노야가 만일 분부(分付)하는 것이 있으면 다시 부산(釜山)에 와서 전하는 말이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지금 청정의 패만스런 편지 때문에 논의가 매우 많고 건 노야 또한 부임한 지 오래지 않았으니 그간 왕래하며 품의하자면 날짜가 오래 걸릴 것이다. 금년말에 내가 나오도록 하겠다.’고 하여, 그들의 뜻을 시험해 보고, 또 이 뜻을 가지고 승문원으로 하여금 즉시 회답을 만들어 내려보내게 하소서.

건 군문이 부임하여 온 후 우리 나라에서는 따로 역관(譯官) 하나를 차임하여 걱정을 갖추어 보고하였는데, 왜사(倭使)가 또 나왔으니 서서히 귤왜가 제기한 말을 보아 가며 상의하여 자문(咨文)을 하나 만들어 군문에게 치보(馳報)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2책 160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464면
  • 【분류】
    외교-왜(倭)

○辛巳/備邊司啓曰: "賊酋義智調信等書契, 反覆看過, 則軍門諭帖, 辭義嚴峻, 故此賊略爲回答, 而以前後刷還人口, 爲革面輸誠之驗。 淸正通于福建之書, 辭甚悖慢, 爲和事魔障, 故所答多窘辭, 歸罪於淸正, 而又稱日本, 一毫無變, 執而揣摩其情, 則調信等, 先送橘倭與被擄人等, 以試我國, 而後將有托稱家康哄脅之事也。 且左水使李英狀啓內, 韓襸供稱, 密露其機。 老賊所爲, 誠爲兇狡。 孫文彧今又下歸, 橘倭問答時, 措辭說稱, ‘萬軍門上年冬病死, 蹇老爺代其任, 萬老爺句管之事, 蹇老爺時未深悉。 太師雖欲贊成爾所望之事, 其勢不如前日, 調信等, 何望其易決乎? 是亦爾之不幸。 我則但當以爾等事情, 細稟於天朝。 老爺如有分付, 則當更來釜山, 有所傳說。 天朝方以淸正悖書, 論議甚多, 蹇老爺又赴任未久, 其間往反稟議, 日字必多。 於今歲末, 我當出來云。’ 如是善爲說辭, 以試其意, 且以此意, 令承文院卽爲回答下送。 蹇軍門莅位之後, 我國當另差一譯, 具報賊情, 而使又至, 徐觀橘倭提起之語, 商略爲一咨, 馳報軍門何如?" 答曰: "允。"


  • 【태백산사고본】 92책 160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464면
  • 【분류】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