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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160권, 선조 36년 3월 20일 병자 2번째기사 1603년 명 만력(萬曆) 31년

난후 논상하는 폐단에 대해 군공청과 논의하다

군공청(軍功廳)이 아뢰기를,

"이기남(李奇男)·신여량(申汝梁)·구덕령(具德齡)·나덕신(羅德愼)·이극신(李克新)·송전(宋荃)·이섬(李暹)·위대기(魏大器)·조효남(趙孝南)·선여경(宣餘慶)·이언량(李彦良)은 마땅히 원신(元愼)의 예에 의하여 논상(論賞)하여 전후가 다르다는 원망을 없게 해야 하는데, 당상(堂上)의 중한 자급은 은명(恩命)에 관계되니 상께서 재량하여 시행하소서. 김득광(金得光)·정공청(鄭公淸)·송상보(宋商甫) 등은 모두 수급(首級)이 5급에 차지 않았으니 논상하지 마소서."

하니, 비변사에 계하(啓下)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난 후 논상한 것에 외람된 폐단이 없지 않았음은 진실로 성상께서 유시하신 바와 같은데, 수급(首級)을 계산해서 당상으로 올리는 것이 이미 규례가 되었으므로 전후를 달리해서는 안 됩니다. 이에 앞서 다시 의득(議得)하게 했을 때 모두 이 뜻으로 아뢰었습니다. 만약 수급을 벤 숫자를 그 당시의 장계(狀啓)에만 빙거한 것이라면 그 허와 실을 지금에 와서 조사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논상한 자는 사세상 일체 소급해서 고치기가 어려운데 이들에게만 상을 내리지 않는다면 아마 원망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미 그것이 잘못인 줄 알았다면 속히 그만두고서 허위로 외람되게 한 폐단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잘못된 것을 그대로 답습하여 행함으로써 그들의 기만하고 우롱하는 작태를 조장시켜 주고 일의 시비를 따지지는 않고 오직 오늘날 한 일이 전일에 한 일과 다르다고만 한다면, 일이 바르게 될 날이 없을 것이다. 이는 마치 범인(凡人)들이 사물에 접하고 일을 처리할 즈음에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처음부터 반드시 모두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데에서 나오기를 기필할 수 없으니, 뒷날 그것이 완벽한 데 이르지 못했음을 깨닫고서 문득 지금 내가 조처한 아무 일은 전에 처리한 아무 일과는 다르다고 핑계하여 드디어 그것을 끌어다 같은 것으로 만들고 그른 것을 옳은 것처럼 합리화하면서 반성하지 않는다면 일이 바르게 귀결될 때가 없게 되어 날이 갈수록 더욱 잘못되어 가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니, 이런 이치는 없을 것 같다. 이들에게 줄 자급을 아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참급(斬級)·헌괵(獻馘)의 실제와 응당 받아야 하는 데 대한 시비를 알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다시 대신과 자세히 의논하여 아뢰라."

"판하(判下)에 군공(軍功)에 있어서 사(射)라 하고 참(斬)이라 하고 1등이라 한것은 외람된 폐단이 없지 않은데 단지 각진(各陣) 군수(軍帥)의 장계에만 따라 구별없이 중상(重賞)을 실시했다고 하셨으니, 이는 실로 미안한 일입니다. 이미 미안함을 알았다면 일일이 소급하여 고칠 수는 없더라도 지금부터 상의 전교에 따라 논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소위 군공이란 것을 이러하다고 핑계해서 다 외람된 것으로 돌린다면 실제 공이 있는 사람은 억울한 생각을 품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전일 논상한 자가 지금 의의(議擬)된 자보다 먼저 공을 세운 것이 아니고 지금 논상하지 못한 자 역시 이미 상직(賞職)을 제수받은 자보다 뒤에 공을 세운 것도 아닙니다. 단지 군공을 조사하여 마감한 것에 선후가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공을 세운 자가 먼저 상을 받기도 하였고 먼저 공을 세운 자가 오히려 논의 중에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나는 상을 주었는데 하나는 주지 않았고, 나중에 세운 자는 얻었는데 먼저 세운 자는 얻지 못한다면 원망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사체에 타당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인심을 크게 잃을 것 같습니다. 지금 다시 의논하라는 분부를 받들건대 잘못된 것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또 오히려 폐습을 따른다고도 하셨으니, 전일 외람되이 제수한 것은 마땅히 모두 소급하여 고쳐서 국가에서 논상하는 법을 균일하게 시행해야 할 듯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 같이 어렵다면 전에 아뢴 대로 시행하여 그 공을 포장(褒奬)하도록 하라. 지금부터는 번신(藩臣)의 우롱에 빠지지 말아서 조정의 체통을 중하게 하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공을 세운 데는 진실로 선후가 있고 경중이 있는 것이니 논공(論功)하여 서용하는 데에도 마땅히 선후와 완급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논공하는 즈음에 사정(私情)을 앞세우고 공의(公義)를 무시하여 지구(知舊)의 친소(親疏)와 뇌물의 다과(多寡)로써 할 뿐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의리를 돌아보지 않고 멋대로 논상하였다. 상께서 의심을 일으켜 하문한 뒤에도 또 따라서 변명을 하여 임금으로 하여금 그 총명을 쓸 수 없게 함으로써 마구 따르게 하여 자신의 욕망을 이루었다. 이러니 지금 이른바 대신이라는 자들을 임금이 과연 신임할 수 있겠는가. 문득 나는 여기서 더욱 의혹이 짙어진다. 태평할 때에는 문신(文臣)들도 혹 공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전쟁 때에 성(城)을 공격하고 야전(野戰)하는 데 이르러서도 문신이 또한 뻔뻔스레 끼어 있으니 너무도 염치가 없었다. 그리하여 남의 죄를 무고(誣告)하고 남의 목숨을 잔인하게 죽여가면서 참여된 자까지 【이용순(李用淳) 같은 자이다. 】 있었으니 저 무고당한 사람은 무슨 죄인가. 저 힘을 내어 피흘리며 싸우는 무사들이 어찌 다시 마음을 다하겠는가. 살펴보건대 옛날 창업이나 중흥을 한 임금의 시대에도 유악(帷幄)에서 계책을 주도한 자 몇 사람 외에는 모두 삶을 가벼이 여기고 죽음을 잊은 무인들이었는데, 지금의 논공 행상은 역시 옛사람과 다르다. 선우(先友) 정승 권극례(權克禮)가 ‘사류(士類)의 집에 어찌 공신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는 바로 임금을 배반하고 원수를 섬겨서 공을 얻은 자를 기롱한 말이니, 또한 세상에서 공을 좋아하여 수치를 모르는 무리를 경계할 수 있겠다.


  • 【태백산사고본】 92책 160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460면
  •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역사-사학(史學)

○軍功廳啓曰: "李奇男申汝梁具德齡羅德愼李克新宋荃李暹魏大器趙孝南宣餘慶李彦良, 當依元愼例論賞, 俾無前後不同之冤, 而堂上重資, 係干恩命, 上裁施行。 金得光鄭公淸宋商甫等, 竝未準五級, 勿爲論賞事。" 啓下備邊司。 備邊司啓曰: "亂後論賞, 不無冒濫之弊, 誠如聖喩, 而計首級陞堂上, 已成規例, 固不可前後異同。 前此再經議得, 皆啓此意。 若斬級之數, 只憑其時狀啓, 其虛其實, 非今日所能査覈。 已論賞者, 勢難一切追改, 則此等人, 獨未蒙賞, 似爲冤悶。" 傳曰: "旣知其失當, 則斯速已之, 以正其虛僞冒濫之弊。 若踵謬襲訛而行之, 以長其欺瞞侮弄之態。 不問事之是非, 而唯曰今日之爲, 與前日之爲, 有異焉, 則凡人之接物處事之際, 動作云爲, 初未必皆出於無過不及之〔失〕 , 則後來覺其未至於十分之地, 而輒諉曰: ‘今吾之處某事, 與昔日之處某事, 有異’, 遂引而同之, 遂非而不省焉, 則事無歸正之日, 愈往而愈謬, 恐無此理。 非惜此人等之資級, 只欲得其斬級獻馘之資, 與夫應受之是非而處之, 更詳議大臣以啓。" 備邊司復啓曰: "判下內軍功之曰射、曰斬、曰一等者, 不無冒濫之弊, 而只從各陣軍帥狀啓, 混施重賞, 實爲未安。 旣知其未安, 則雖不得一一追改, 自今依上敎, 勿論, 可也。 但所謂軍功者, 諉以如此, 而盡歸之冒濫, 則實功或未免抱冤。 況前日論賞, 未必得功於今日擬議者之前, 而今之未論賞者, 亦非立功於已授賞職者後也。 只緣軍功査抄磨勘有先後, 故後功先已蒙賞, 而先功尙在論議之中, 一與一否, 後者得, 而先者不得, 不無冤悶。 非但事體未妥, 抑恐重失人心。 今承更議之敎, 不可承訛襲謬, 猶踵弊習, 則前日冒授者, 似當幷爲追改, 使國家論賞之典, 一體施行。" 傳曰: "若是其難焉, 則依前啓施行, 以褒奬其功可也。 今後毋陷於藩臣之瞞弄, 以自重朝廷之體。"

【史臣曰: "得功, 固有先後, 亦有輕重, 則敍功, 當有先後緩急, 而敍之之際, 私滅公、情勝義, 各以知舊之親踈, 賄賂之多寡, 不顧信必之義, 而恣意論敍, 及聖主設疑發問之後, 又從而爲之辭, 使人主無所用其明, 而甚至於驅率之, 以遂其所欲, 今之所謂大臣者, 人主果可信任耶? 抑臣於此, 尤有惑焉。 平治之日, 文臣亦或與有功焉, 及此用武之日, 至於爭城野戰之功, 文臣亦偃然當之, 而無恥焉。 亦有誣告人罪, 忍殺人之命, 而得參者, 【如、李用淳。】 彼見誣之人何罪, 彼出力血戰之士, 寧更盡心乎? 竊觀古者, 創業中興之主, 運籌帷幄者數人外, 都是輕生忘死之武弁, 則今日之論功行賞, 其亦異於古之人矣。 先友克禮之言, 曰: ‘士類家, 寧有功臣?’ 此乃譏叛君事讐, 而得功者, 亦可以警世之喜功無恥之輩。"】


  • 【태백산사고본】 92책 160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460면
  • 【분류】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