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전에 나아가 《주역》을 강하다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가 《주역(周易)》을 강하였다. 영사 유영경(柳永慶)이 아뢰기를,
"지난번 가미이진탕(加味二陳湯)을 지어 올렸는데 진어(進御)하신 후에 기후(氣候)가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지금 복용하는 중이다. 내 병은 일조일석에 얻어진 것이 아니어서 언제 나을지 기약이 없다. 매번 경이 와서 애써 문안하니 그 때문에 병이 중해진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삼가 주상(主上)을 살피건대 춘추가 아직 높지 않은데 질병이 계속되어 약이(藥餌)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듣건대 작년 가을 전교에 ‘천하에 어찌 어미 없는 나라가 있겠는가.’ 하면서 군신(群臣)들을 협박하여 급급하게 나이 어린 비(妃)를 맞아들였다. 주부(主婦)가 없는 예(禮)로 논한다면 맞아들인 후에는 알묘(謁廟)의 의식과 증상(蒸嘗)의 제사를 한결같이 예제(禮制)에 따라야 할 터인데, 옥당(玉堂)의 차자(箚子)에 대해 윤허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재취(再娶)하지 않는 예(禮)로 말한다면, 1후(后) 3부인(夫人) 9빈(嬪) 27세부(世婦) 81어처(御妻)가 이미 등극하던 초기에 갖추어졌으니, 1후가 훙(薨)하였어도 궁(宮)을 대신 다스릴 사람이 있는데 재취하는 데 급급한 것은 어째서인가. 옛날 송 태조(宋太祖)를 보건대 잠자리에서 늦게 일어났다는 것으로 궁녀를 죽였으니 이는 좀 지나친 듯하지만 그가 여색(女色)에 연연하지 않은 뜻을 상상할 수 있다. 제갈양(諸葛亮)은 추녀인 부인을 두었었다. 선유(先儒)들은 이에 대해 흥망(興亡)을 자기의 책임으로 삼은 자로서는 행동을 당연히 이와 같이 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가 한번 패란된 후로 기세가 쇠약해져서 위망(危亡)의 조짐이 한둘이 아니었다. 중흥(中興)에 대한 계책 가운데 급박한 것이 많은데도 먼저 백성에게 국모(國母)가 없는 것을 걱정하였으니, 질병의 발생이 아마도 여기에서 말미암았을 것이다. 치료하는 데의 묘방(妙方)은, 마땅히 마음을 깨끗이 가지고 욕심을 적게 하여 홀로 거처하며 잡념을 줄이면 병을 낫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질병 때문에 한두 달이 지나도록 경연에 나아가지 않으니, 옛날 한 고조(漢高祖)는 천하를 다투다가 상처가 극신해졌어도 함양궁(咸陽宮)으로 돌아가 척희(戚姬)를 대하지 않았었다. 지금 이 천리의 나라는 바로 자기 한 사람의 물건인데도 병 때문에 일을 폐하니, 기미를 아는 군자라면 반드시 미리 근심하였을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92책 160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458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역사-사학(史學) / 역사-고사(故事)
○癸酉/上御別殿, 講《周易》。 領事柳永慶曰: "頃者劑入加味二陳湯, 不審進御後, 氣候何如?" 上曰: "方服之。 予病非一朝一夕所得, 差復無期。 每勤卿問, 病因以重。"
【史臣曰: "竊觀主上, 春秋尙未高邁, 而疾病連仍, 藥餌未絶。 然聞昨年秋傳敎之言, 曰: ‘天下豈有無母之國?’ 以脅迫群臣, 急急娶年幼之妃。 以無主婦之禮論之, 則旣娶之後, 謁廟之儀, 蒸嘗之事, 當一依禮制, 而玉堂之箚, 未見兪允。 以不再娶之禮言之, 則一后、三夫人、九嬪、二十七世婦、八十一御妻, 已備於冕迎之初。 一后雖薨, 攝宮有人, 而急於再娶, 何耶? 觀於古昔, 宋 太祖, 以晩起, 殺宮鬟。 擧雖過中, 其不戀色之意, 可想也。 諸葛亮蓄醜婦, 先儒以爲, 以興亡爲己任者, 制行當如是。 國家一敗之後, 氣勢萎薾, 危亡之兆, 不一而足, 中興勝算, 最急者多, 而先以民無國母爲念, 疾病之生, 恐由於此。 治療妙方, 當淸心寡慾, 獨處省念, 則差可少病矣。 況以疾病之故, 或經一兩月, 不御經筵? 昔漢 高祖, 賭人之物, 病創甚, 猶不還咸陽宮, 對戚姬。 今此千里之邦, 乃是一己之物, 而以病廢事, 知微君子, 必先見豫虞矣。"】
- 【태백산사고본】 92책 160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458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역사-사학(史學)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