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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159권, 선조 36년 2월 18일 을사 5번째기사 1603년 명 만력(萬曆) 31년

남한산성을 수축하는 일을 비변사로 하여금 논의하게 하다

비망기로 일렀다.

"일찍이 남한산성(南漢山城)의 형세가 우리 나라에서 으뜸이라고 들었다. 광주(廣州)는 기전(畿甸)의 거진(巨鎭)으로 남도(南道)를 왕래함에 있어 요충(要衝)이 되는 곳이다. 만약 이곳에다 산성(山城)을 수축한 다음 한결같이 독성(禿城)에서처럼 군사를 조련하고 수령을 택하여 지키게 한다면 안으로는 경도(京都)의 보장(保障)이 되고 밖으로는 제진(諸陣)을 공제(控制)할 수 있을 것이다. 정유년에 산성을 지켜 내지 못한 이후 산성을 수축하는 것을 꺼리고 있는데, 우리 나라의 인정(人情)과 기습(氣習)이 이와 같으니 어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황칙(皇勅)에 있는 성지(聖旨)를 보지 못하였는가. 다만 그곳의 형세를 상세히 모르겠는데 수축할 만하다면 지금 마침 목사(牧使) 자리가 비어 있으니 본사(本司)에서 회의하여 그 일을 처리할 만한 재능이 있는 자를 엄밀히 가려 차출(差出)한 다음, 방략(方略)을 지시해 주고 헤아려 조처하게 함으로써 제도(諸道)의 본보기가 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먼저 계려(計慮)가 있는 사람을 보내어 잘 살펴본 다음 도형을 그려 오게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비변사에 일러서 의논하여 아뢰게 하라."


  • 【태백산사고본】 92책 159권 8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449면
  • 【분류】
    과학-지학(地學) / 건설-토목(土木) / 군사-군정(軍政)

○備忘記曰: "曾聞南漢山城, 形勢甲於東方。 廣州, 乃畿甸巨鎭, 南道往來要衝之地。 若於此處, 修築山城, 操鍊士卒, 一依禿城, 擇其倅而守之, 內有以爲京都之保障, 外有以爲諸陣之控制。 自丁酉山城不守之後, 以山城修築爲諱, 我國之人情氣習如此。 豈不謬哉? 不見皇勑內聖旨乎? 但其處形勢, 不能詳知, 如以爲可爲, 則適今牧使有闕, 本司會推, 極擇其才, 足以辦事者差出, 指授方略, 規畫措處, 以爲諸道倡如何? 先遣有計慮之人, 看審圖形而來, 似當。 言于備邊司議啓。"


  • 【태백산사고본】 92책 159권 8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449면
  • 【분류】
    과학-지학(地學) / 건설-토목(土木)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