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유형이 전후에 올린 상소
전유형이 전후에 올린 세 통의 상소에 대해 계(啓) 자를 찍어 내렸다. 이에 앞서 올린 유형의 상소는 시사(時事)에 대해 극언한 것이었는데, 상이 유중(留中)하고 10여 일 동안 내리지 않았다. 이에 유형이 연달아 세 통의 상소를 올려 상이 빨리 살펴서 시행하는 바가 있기를 기대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내렸다.
그 상소의 내용은, 첫 번째는 금위(禁衛)를 엄하게 하여 뜻하지 않은 사고에 대비할 것, 두 번째는 여러 왕자(王子)들을 애호하여 부자간의 은혜를 온전히 할 것, 세 번째는 공구 수성(恐懼修省)하여 변이(變異)를 없앨 것, 네 번째는 친히 사람을 기용하는 권한을 잡고서 조정의 붕당을 제거할 것, 다섯 번째는 군주의 위엄을 높여 기강을 진작시킬 것, 여섯 번째는 날마다 경연에 나아가 상하의 정을 소통시킬 것, 일곱 번째는 지나온 자취를 돌아보아 앞으로 다가올 일을 징험할 것, 여덟 번째는 천리(天理)의 공정함을 따르고 인욕(人慾)의 사사로움을 버릴 것, 아홉 번째는 총명(聰明)을 넓힐 것, 열 번째는 수령을 잘 선택하여 인심을 수습할 것, 열한 번째는 성지(聖旨)를 반포함에 있어 부질없이 헛된 문구만 숭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 열두 번째는 문과(文科)를 많이 뽑아 어진이를 취택하는 길을 넓힐 것, 열세 번째는 사람을 뽑을 때는 마땅히 대책(對策)으로 할 것, 열네 번째는 상서(庠序)013) 의 옛 제도를 회복할 것, 열다섯 번째는 성경(聖經)을 읽고 성훈(聖訓)을 행할 것 등을 언급하였다. 또 세 군데에 첩황(貼黃)이 있었는데, 첫 번째 첩황에는,
"오늘날 붕당의 권력 다툼이 이와 같아서 기필코 죽을 각오로 승부를 결정지으려 합니다. 전하의 천추 만세(千秋萬世) 뒤에 부귀를 도모하는 자들이 각각 이론(異論)을 세워 다툼으로써 큰 혼란을 야기시킨다면 국가가 반드시 망하고야 말 것이니, 어떻게 조처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동군이 어질어서 전하의 성덕(盛德)을 계승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사방의 민심이 귀의할 바를 알지만, 만약 하루아침에 요동된다면 난망(亂亡)이 순식간에 닥칠 것입니다.
옛날 한 고제(漢高帝)가 태자를 바꾸려고 하자 장양(張良)이 상산 사호(商山四皓)를 초치하였는데, 고제가 이를 보고 드디어 태자를 바꾸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이 여기에서 고제의 지혜가 백왕(百王)보다 낫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는 고제가 ‘나는 사호를 초치할 수 없는데 태자가 능히 그들을 초치했으니 태자의 어짊이 나보다 낫다. 그러니 종묘와 사직을 맡겨도 반드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여긴 것입니다. 고제의 뜻이 또 ‘사호는 금세의 백이(伯夷)나 태공(太公)과 같은 사람으로 이는 천하의 대로(大老)이다. 천하의 대로가 이미 귀의하였으니 천하의 백성들이 태자에게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성들이 이미 마음을 갖고 있다면 나라의 앞날은 자연히 반석보다도 단단해져서 만세토록 무궁할 것이다.’라고 여겨 조금도 의심치 않고 의연히 태자를 바꾸려던 마음을 고쳤습니다. 그러니 고제의 지혜가 어찌 백왕보다 뛰어났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천리는 지극히 공정한 것이어서 민심이 귀향하는 바가 곧 천리가 있는 데인 것입니다. 진실로 태자가 어질지 않아 위로는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마음이 없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인애하는 마음이 있지 않다면 천하의 백성들이 어찌 귀의하려 하겠습니까. 자기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것은 곧 자기 백성들을 인애하는 실상이며, 자기 백성들을 인애하는 것은 곧 자기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마음을 미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대개 임금이 태자에게 민심이 귀의하는 것을 보면 태자가 나에게 효도를 잘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호의 말에 ‘지금 듣건대 태자가 인효(仁孝)하여 천하 사람들이 목을 늘이고 태자를 위해 죽고자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하기 때문에 신들이 온 것이다.’ 하였으니, 참으로 미더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옛 임금은 정적(正嫡)이 없어서 서자(庶子)를 세워 적자(嫡子)로 삼았어도 이미 민심이 귀의함을 얻었으면 뒷날 정적이 정위(正位)에서 출산되더라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는 이미 후사(後嗣)로 세웠으면 군신(君臣)의 분의가 예경(禮經)에 정해져 있기 때문에 참으로 바꿀 수가 없어서입니다. 따라서 민심이 귀의함을 얻었다면, 사직과 종묘를 위해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어떻게 바꿀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근심이 없는 분은 아마도 문왕(文王)일 것이다. 무왕(武王)으로 자식을 삼았으니…….’ 하였으니, 아, 천하에 근심 없는 사람은 태자가 어진 것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전하께서 근심없는 것이 옛날 문왕과 더불어 전후 한결같으니, 만세토록 무궁한 아름다움을 지금부터 기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붕당의 형세가 이와 같으니, 신은 실로 그 점을 근심하고 있습니다. 옛부터 국가의 근심은 항상 나이 어린 군주를 세우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동궁께서는 연세가 한창이신데다 도가 밝고 덕이 확립되었으니 붕당이 없다면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빨리 붕당을 제거하여 나타나기 전에 완전히 없애기를 도모하소서. 붕당을 없애지 못할 경우에는 반드시 큰 절개를 지녀 뜻을 빼앗을 수 없는 사람을 신중히 선택하여 미리 동궁을 돕는 보좌관으로 삼아서 온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귀의할 바를 알게 하여 동요되지 않게 할 것은 물론, 동·서·남·북 골육의 당으로서 부귀를 도모하려고 하는 자들이 모략을 펴고 간교를 행할 곳이 없게 만든다면 국본(國本)이 견고하게 되어 만세토록 왕노릇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전에 전하께서 정원군(定遠君)014) 의 일을 주선하고 조호(調護)하실 때 말을 꺼내는 자들은 죄를 받았으니, 부자간의 정의(情義)에는 이와 같은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단지 자식을 사랑하는 정만 있고 신이 말씀드린 것을 알지 못하신다면 뒷날 동기간에 상잔하는 화가 반드시 이루 다 말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였고, 두 번째 첩황에는,
"임진년 5월의 당쟁(黨爭) 때 전하의 근심이 반드시 오늘보다 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심이 흩어지지 않는다면 왜적이 1백 년을 살육하고 약탈하더라고 한 치의 땅, 한 명의 백성도 끝내 왜적의 소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니, 실로 근심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그러나 붕당의 화가 왜란만 못한 것 같지만 끝내는 반드시 나라를 망하게 하고야 말 것이니, 실은 왜적보다도 심한 것입니다.
대체로 현우(賢愚)·사정(邪正)은 국가의 흥폐 존망에 관계된 것이니, 반드시 온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어진지 어리석은지 사악한지 정직한지를 분변하게 한 뒤에야 천하의 공론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진실로 천리(天理)의 공정함을 따르고 인욕(人慾)의 사사로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분변할 수 있겠습니까. 국가에 붕당이 생긴 뒤부터 군신 백료(群臣百僚)들이 각각 자기 당을 사사롭게 하여 서로 비호하면서 자기 당에 붙는 자는 기뻐하고 자기와 달리하는 자는 미워하였으므로 인욕의 사사로움이 극에 달했고 천리의 공정함이 인멸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오직 자기 당이 바른 줄만 알고 다른 당은 사악하다고 하여 서로 공격하여 원한을 쌓았으므로 현인 군자가 그 사이에서 나오더라도 양지(良知)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가 참으로 어진지 어리석은지 참으로 사악한지 정직한지를 분변치 못합니다. 그러니 천하의 공론이 무엇을 말미암아 정해지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과감하게 힘써 행하시어 한번 나아오게 하고 한번 물러가게 함을 모두 성충(聖衷)에서 결정하소서. 서서히 5∼6년을 기다려 사사로운 뜻이 점점 없어지고 공정한 도가 점점 행해져 원한이 저절로 풀리고 양지가 저절로 회복된 뒤에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에게 위임하여 그로 하여금 함께 화협하여 다스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한번 나아오게 하고 한번 물러가게 함을 모두 중의(衆議)에 따르고 자신의 사심에 따르지 않게 되면 태평 성대를 기약할 수 있으며 잘 다스려지는 정치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하께서 고립(孤立)되고 군당(群黨)이 횡행하게 되면 독단(獨斷)을 하고자 하시더라도 맡기어 부리는 사람들이 모두 편당(偏黨)의 사람들임을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므로 또한 끝내는 편당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대체로 지극히 공정한 일을 행하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지극히 공정한 사람들로 하여금 지극히 공정한 의논을 제창하게 한 뒤에야 지극히 공정한 사람이 나의 지극히 공정한 정치에 추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계책은 반드시 중립을 지켜 편당하지 않는 인사를 먼저 얻어 성덕(聖德)을 외롭게 하지 않게 한 뒤에야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서한(西漢)의 제도에 따라 별도로 일과(一科)를 설치해 상규(常規)에 구애받지 말고 어필(御筆)로 대책(對策)을 내시어 특별히 붕당설(朋黨說)에 대해 물어 공정함을 따르고 사사로움이 없으며 군당(群黨)과 관계없는 인사 1백여 명을 뽑으소서. 이들이 반드시 적임자이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지라도 오히려 붕당의 무리들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이 방법이 붕당을 제거하는 데 한 가지 도움이 충분히 될 것입니다."
하였고, 세 번째 첩황에는,
"어진이를 나아오게 하고 사악한 사람을 물러가게 하지 못하는 것은 어진 사람과 사악한 사람을 분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진 사람과 사악한 사람을 이미 분변하였다면 또 두렵고 어려운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누구를 비방하고 누구를 칭친하는 말들을 믿을 수는 없지만, 사적(事迹)이 분명히 드러난 경우에는 살려주어도 되고 죽여도 됩니다. 지난번 전하께서 사악하고 아첨하는 불충(不忠)한 사람을 통촉하시어 파직시키기도 하고 삭탈시키기도 한 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전하께서 다시 청현직(淸顯職)에 임용하셨으니, 이는 망하기를 스스로 재촉하는 일인데 종묘와 사직을 어찌하시렵니까. 신은 삼가 의혹스럽습니다.
일월 같은 밝음으로도 엎어 놓은 동이 아래를 비출 수는 없는 것이니, 성인의 지혜도 이와 같습니다. 빈드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인하여 밝힌다면 알 수 없는 것도 이로부터 밝아질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 이미 사악하고 아첨하는 불충한 자임을 알고 계시면서도 주벌(誅罰)의 법을 행하지 않고 도리어 청현직에 제수하였으니,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와 같이 한다면 알지 못하는 간사한 자들이 어찌 두려워하겠습니까. 반드시 멋대로 기탄없이 방자한 짓을 하여 전하의 나라를 뒤엎어 멸망시킨 뒤에야 그만둘 것입니다. 삼가 성명께서는 깊이 통찰하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2책 158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443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행정(行政) / 인사(人事) / 군사(軍事) / 윤리(倫理) / 사상(思想)
○全有亨前後疏三道, 踏啓字而下。 先是, 有亨上疏, 極言時事, 上留中十餘日不下。 於是有亨連上三疏, 冀上亟察, 而有所施設。 至是疏始下。 其疏
一曰: "嚴禁衛, 以備不虞。" 二曰: "愛護諸王子, 以全父子之恩。" 三曰: "恐懼修省, 以消變異。" 四曰: "親執用人之權, 以去朝廷之朋黨。" 五曰: "尊主威, 以振紀綱。" 六曰: "日御經筵, 以通上下之情。" 七曰: "觀已往之迹, 驗方來之事。" 八曰: "循天理之公, 去人慾之私。" 九曰: "廣其聰明。" 十曰: "審擇守令, 以收人心。" 十一曰: "頒聖旨, 不可徒尙虛文。" 十二曰: "多取文科, 以廣擇賢之路。" 十三曰: "取人當以對策。" 十四曰: "復庠序古制。" 十五曰: "讀聖經、行聖訓。"
又三處貼黃, 有曰:
方今朋黨之爭權如此, 期於必死, 以決勝負。 若殿下千秋萬世之後, 欲爲富貴者, 各立異論, 爭爲大亂, 則國家必亡, 當何以爲之? 今東宮之賢, 足以繼殿下之盛德, 故四方民心, 知所歸向, 若一朝搖動, 則亂亡頃刻矣。 昔, 漢 高帝欲易太子, 張良招致四皓, 高帝見之, 遂不易太子。 臣於此, 知高帝之智, 可以超百王也。 蓋高帝, 豈非以四皓, 我不能致, 而太子能致之, 太子之賢, 愈於我也。 必能堪宗廟社稷之托哉? 高帝之意又謂: 四皓, 今世之伯夷、太公也。 是天下之大老也。 天下之大老旣歸, 則天下之民, 所以屬心於太子者, 可知矣。 民旣屬心, 則我國之勢, 自然堅於磐石, 萬世無窮矣。 於是毅然改其欲易之心, 而無所疑也。 帝之知, 豈不可謂之超百王者乎? 蓋天理至公, 民心所歸, 卽天理之所在也。 苟非太子之賢, 上有以孝其親, 下有以仁其民, 則天下其肯歸向之哉? 孝其親者, 卽仁其民之實也, 仁其民者, 卽孝其親之推也。 大槪人君, 見民心之歸向於太子, 則足以知太子之能孝於我也。 故四皓之言曰: "今聞太子仁孝, 天下莫不延頸, 願爲太子死者, 故臣等來耳。" 信乎斯言也。 是以, 古之人君, 雖無正嫡, 立庶子爲嫡, 而旣得民心之歸向, 則他日正嫡, 雖出於正位, 不爲改易也。 蓋旣以立嗣, 則君臣之分, 已定於《禮經》, 固不可變易, 而又從而得民心之歸向, 則爲社稷宗廟計者, 其可改易乎? 孔子曰: "無憂者, 其惟文王乎? 以武王爲子, 嗚呼! 天下之無憂者, 孰如太子之賢哉? 今殿下之無憂, 其與文王, 前後一揆矣。 萬世無彊之休, 自今可卜矣。 不幸而朋黨之勢如此, 臣實憂之。 自古國家之憂, 常在於幼沖之主, 而東宮則年歲鼎盛, 道明德立, 不有朋黨, 何所憂? 伏願亟去朋黨, 圖之於不見焉。 不能去朋黨, 則必須極擇有大節不可奪之人, 預爲羽翼東宮之佐, 使一國之人, 知所歸向不可動搖, 而東西南北骨肉之黨, 欲爲富貴者, 無所逞其謀、行其姦, 則國本旣固, 萬世可王矣。 年前殿下以定遠君之事, 周旋調護, 使出言者受罪。 父子之間, 情義當如是也, 然徒有愛子之情, 而不知臣所云云之說, 則異日同氣相殘之禍, 必有不可勝言者矣。
又曰:
壬辰年五月, (黨)〔儻〕 殿下之憂, 必急於今日, 然人心不散, 則雖殺掠百年, 尺地一民, 終亦不爲倭賊之所有也, 其實不足憂也。 朋黨之禍, 雖若不及於倭, 而終必至於亡國, 其實乃甚於倭賊也。 蓋賢愚邪正, 國家之所由廢興存亡者也。 必使一國之人, 皆能辨其賢愚邪正, 然後天下之公論定矣。 苟非循乎天理之公, 而無人欲之私者, 孰能辨之? 國家自有朋黨以來, 群臣百僚, 各私其黨, 互相比護, 附己者喜之, 異己者嫉之。 人欲之私旣極, 天理之公泥滅, 惟知我黨之爲正, 他黨之爲邪, 互相攻擊, 積成仇讎。 雖或賢人君子, 出於其間, 而良知牿亡, 不能辨其眞賢愚、眞邪正矣, 天下之公論, 何由而定乎? 伏願殿下, 力行果斷, 一進一退, 皆出於聖衷, 徐待五六年, 私意漸去, 公道漸行, 仇怨自解, 良知自復, 然後委任賢能, 使之同寅協恭, 一進一退, 皆出於衆議, 不私於一己, 則太平可期, 至治可復矣。 雖然, 殿下孤立, 群黨方橫, 雖欲獨斷, 而所以任使之人, 皆不出於偏黨之人, 則亦終歸於偏黨而已。 蓋欲行至公之事, 必先使至公之人, 執至公之論, 然後可使至公之人, 趨吾至公之政矣。 然則爲今之計, 必須先得中立不黨之士, 使聖德不孤, 然後可以有爲也。 伏願殿下, 依西漢之制, 別爲一科, 不拘常規, 御筆發策, 特問朋黨之說, 擇取循公無私, 不涉群黨之士百餘人, 雖不可望其必得其人, 而不猶愈於朋黨之徒乎? 此足爲去朋黨之一助云耳。
又曰:
不能進賢退邪者, 以其賢邪之難辨也。 賢邪旣辨, 則又何有畏難之事乎? 其毁譽之說, 則雖不可信, 若事迹之昭著者, 則生之可也, 殺之可也。 頃者殿下, 燭見邪侫不忠之人, 或爲革職, 或爲削奪者, 非一二人矣。 未幾, 殿下復用之於淸顯, 是自促其亡也。 奈若宗廟社稷何? 臣竊惑之。 雖日月之明, 不能照覆盆之下。 聖人之智, 亦猶是也。 必因其所已知者而明之, 則其不能知者, 從此而明矣。 今殿下旣已知其邪侫不忠, 而不行誅殛之典, 反加淸顯之秩。 其所已知者如此, 則其不知之姦, 其有畏戢乎? 必且橫恣無忌, 覆滅殿下之國而後已也。 伏願聖明深察焉。
- 【태백산사고본】 92책 158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44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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