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149권, 선조 35년 4월 11일 임인 1번째기사
1602년 명 만력(萬曆) 30년
신흠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신흠(申欽)을 부총관(副摠官)으로, 신감(申鑑)을 예조 정랑으로, 【부박(浮薄)하고 행실이 없었다. 】 윤삼빙(尹三聘)을 형조 정랑으로, 신율(申慄)을 공조 정랑으로, 정혹(鄭㷤)을 군자감 정(軍資監正)으로, 정인함(鄭仁涵)을 병조 좌랑으로, 송석조(宋碩祚)를 승정원 주서로, 이충(李沖)을 【이양(李樑)의 손자이며 이정빈(李廷賓)의 아들이다. 사람됨이 흉악하고 간휼하여 조부의 심적(心迹)을 이어받았다. 】 문겸 선전관(文兼宣傳官)으로, 조존세(趙存世)를 【사람됨이 경박했다. 임진란을 당하여 사관(史官)의 신분으로 임금을 중로(中路)에 버리고 몸을 빼어 도주했는데, 상이 깊이 미워하여 ‘도망한 군인은 역사를 기록할 수 없다.’는 하교까지 내렸다. 】 옹진 현령(甕津縣令)으로, 홍영(洪榮)을 신창 현감(新昌縣監)으로, 이형원(李馨遠)을 경기 도사로, 【사람됨이 용렬하고 어리석었다. 】 김대덕(金大德)을 예문관 검열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89책 149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372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