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 148권, 선조 35년 3월 1일 계해 2번째기사
1602년 명 만력(萬曆) 30년
헌부가 이흡 등을 찬출할 것을 아뢰다
헌부가 아뢰었다.
"이흡(李洽) 등이 간흉에게 이(蝨)처럼 빌붙어 어진 선비를 모함하여 죽인 죄가 어찌 문외 출송(門外黜送)에 그칠 뿐이겠습니까. 신들이 찬출(竄黜)하자고만 청한 것도 말감(末減)한 것이었습니다. 이목(耳目)을 담당한 관원의 신분으로서 한결같이 간사한 정철(鄭澈)의 사주를 받아 최영경(崔永慶)066) 을 다시 국문하자고 청하기까지 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옥사(獄事)를 이루려고 한 것입니다. 그저 간흉에게 아첨할 줄만 알았지 군부(君父)가 있는 줄은 모르고서 성조(聖朝)에 처사(處士)를 죽였다는 누명을 끼치게 하였으니, 그 흉참(兇慘)한 마음가짐이 어찌 간사한 정철과 조금인들 다르겠습니까. 급제 이흡·구성(具宬)·이상길(李尙吉) 등을 모두 찬출하여 물정을 통쾌하게 하소서."
- 【태백산사고본】 89책 14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358면
- 【분류】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註 066]최영경(崔永慶) : 자는 효원(孝元), 호는 수우당(守愚堂), 본관은 화순(和順)이며, 한성(漢城)출신으로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학문이 뛰어나고 명망이 높았는데 선조 22년(1589)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 때 그 배후자로 길삼봉(吉三峰)이란 의문의 인물이 등장하자, 강해(姜海)·양천경(梁千頃)에 의하여 그가 길삼봉이란 무고를 입고 투옥되었다가 특사로 석방되었으나 다시 투옥되어 국문을 받다가 옥사(獄死)하였다. 이듬해 동인(東人)의 집권으로 신원(伸冤)되고 대사헌에 추증되었으며 진주(晉州)의 덕천 서원(德泉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