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 윤승훈 등과 《주역》 이괘에 대해 강하다
상이 별전에 나아갔다. 영사 윤승훈(尹承勳), 지사 한응인(韓應寅), 특진관 신잡(申磼), 행 대사간 권희(權憘), 특진관 기자헌(奇自獻), 참찬관 남근(南瑾), 집의 이효원(李效元), 시독관 이심(李愖), 검토관 이지완(李志完), 가주서 박대빈(朴大彬), 기사관 소광진(蘇光震)·정호선(丁好善)이 입시하였다. 상이 《주역(周易)》 이괘(頤卦)를 읽고 해석을 하고 난 뒤 이심이 대과괘(大過卦)의 서(序)부터 ‘대과지행야(大過之行也)’까지 강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른바 ‘멸몰(滅沒)’이란 나무가 물 속에 있어서 멸몰하게 된다는 것인가?"
하니, 이심이 아뢰기를,
"그렇습니다. 대과(大過)라고 하는 것은 성현의 도덕과 공업(功業)이 일반인보다 크게 지나치며 범상한 일도 모두 일반인보다 뛰어난 것을 말한 것이지 이치에 지나치다는 것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잘못된 점을 바로잡기 때문에 중도에 지나침을 면치 못하니, 이를테면 행동이 지나치게 공손하고 상(喪)을 당해서는 지나치게 슬퍼하며 검소함은 비록 지나치지만 실제로는 지나친 일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괘상(卦象)으로 말하면 손(巽)은 목(木)이고 태(兌)는 택(澤)이다. 물은 나무를 기르는 것이지만, 지나치게 되면 끝내 멸몰하게 되니, 이는 지나침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기둥이 흔들린다. [棟橈]’는 것도 지나침을 말한 것이다."
하니, 이심이 그렇다고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과(大過)의 대(大)는 양(陽)을 말한다. 이 괘의 중간이 양강(陽剛)하기 때문에 본말(本末)이 이기지 못하는 것인가?"
하니, 이심이 아뢰기를,
"그렇습니다. 효사(爻辭)로 말하면 ‘기둥이 흔들린다. [棟橈]’는 말은 대개 좋지 못합니다. 따라서 선유들은 양이 부족하다는 말로 보았습니다. 비록 군자가 성하고 소인이 쇠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양을 부식하고 음을 억눌러야 길이 다스려지고 편안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대과(大過)의 때가 크다.’고 한 것은 반드시 남보다 크게 뛰어난 재능이 있는 자라야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요순(堯舜)이 선양(禪讓)한 것과 탕무(湯武)가 걸주(桀紂)를 내친 것과 같은 일은 반드시 요순이나 탕무와 같은 재능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상(象)에 ‘군자는 이 대과괘의 상을 보고서 우뚝하니 서서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에 은둔하되 근심함이 없다.’ 하였는데, 이는 태택(兌澤)의 상을 취한 것으로 쓰여지게 되면 우뚝하니 서서 두려워하지 않고 버려지게 되면 세상에 은둔하되 근심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임금은 반드시 이렇게 우뚝하니 서서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 은둔하되 근심함이 없는 선비를 구해야 합니다. 인품으로 말하면 세상에 은둔하되 근심함이 없는 것은 비록 세상에 은둔하는 것이 귀중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근심함이 없음을 귀중하게 여기니, 이를테면 은거하면서 자기 지조를 지켜야 세상에 은둔하되 근심함이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돈(遯)’이란 글자는 ‘도(逃)’자의 뜻인가?"
하니, 이심이 그렇다고 하였다. 강을 마치자, 권희가 나아가 아뢰기를,
"어제 이항복을 해직하라는 명이 갑자기 내렸습니다. 대신의 진퇴는 매우 중대합니다. 그의 신병(身病)에 대해서는 신이 잘 모르지만 대개 광망한 유생의 상소 때문에 정고(呈告)한 것이라고 합니다. 만일 한 유생의 상소로 대신을 가벼이 체직한다면 부박(浮薄)한 무리들이 사람들을 선동하여 익명으로 글을 지어 대신을 동요하기까지 할 것이니, 이후로 다시 어떤 상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른바 유생의 상소란 어떤 사람이 상소를 말하는가?"
하니, 권희가 아뢰기를,
"지난번 청주(淸州)의 유생 박이검(朴而儉)의 상소 안에 이항복을 지척한 말이 있었으므로 항복이 스스로 편치 못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내가 만기(萬機)를 처리하느라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정철과 교분이 친밀하다는 말이 있었다. 이 말이 어찌 전적으로 영상만 지적한 말이기에 유독 영상만이 사피하는가?"
하니, 윤승훈이 나아가 아뢰기를,
"소신도 한창 비방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박이검의 상소 안에 ‘정철의 심복이 또한 정승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는 이항복을 가리킨 것이다.’고 하였답니다. 그러나 이항복은 정철의 복심이 아닙니다. 정철과 한때 서로 알고 지냈을 리는 있지만 정철의 문정(門庭)에 드나들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와 사귀었는가?"
하니, 윤승훈이 아뢰기를,
"교분이 두터울 리가 없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요즈음 조정의 진용이 바뀌어 이항복이 수상의 지위에 있으므로 비방이 백방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날 이조 판서를 의천(議薦)할 때에 홍진(洪進)을 의망하고 유영경(柳永慶)을 의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허물을 돌리고 있는데, 홍진은 실상 신이 천거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임국로(任國老)를 의망하지 않았다.’고 하는 등 비방하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영상이 만일 정철과 사귀었다면 잘못된 일이다. 정철과 교제하였다면 공론이 배척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니, 승훈이 아뢰기를,
"사귀지 않았습니다. 이밖의 많은 사람들의 말은 한두 마디로 다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외간의 부박하고 잡된 말은 대신이 진정시켜야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가 정고(呈告)한 이유를 나는 실로 알지 못하겠으나 그럴 만한 사유가 있을 것이다. 그가 정철과 사귀었는지의 여부는 내가 아는 바가 아니나 만일 정철과 사귀었다면 그 사람을 어디에다 쓰겠는가. 서로 사귀었다면 숨겨서는 안된다."
하였다. 상이 승훈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남쪽 변방의 방어에 관한 일이 오늘날 제일 급선무인데, 주사(舟師) 등의 일을 어느 정도 정제하였는가?"
하니, 승훈이 아뢰기를,
"신이 요즘 이덕형의 말을 보니 ‘주사를 지금 한창 정제하고 있지만, 어긋나는 일이 많아서 내려가더라도 손 쓸 곳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경상도부터 전라도까지는 그 사이가 매우 넓은데, 전선 70척으로 띄엄띄엄 배치하니 너무 엉성하지 않겠습니까. 격군(格軍)은 4번으로 나누어 세웠는데, 1번이 겨우 50인입니다. 매양 50일마다 서로 교체하므로 원망하고 고달파하니 또한 계속하여 세우기도 어렵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두만강은 어떠한가?"
하니, 신잡이 아뢰기를,
"강폭이 매우 좁아서 건너기에 어렵지 않습니다. 압록강 일대는 강물이 빠르고 거셉니다. 요즈음 민간에 노추(老酋)가 출동하려 한다는 기별이 들리므로 중외가 흉흉합니다. 그러나 동지(冬至)이후 1백 일이 지나면 강의 얼음이 반드시 풀리니 지금부터 가을 전까지는 근심이 없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습니다. 만포진(滿浦鎭) 건너편에 황성첩(皇城堞)이 있는데 만포에서 겨우 10리쯤 되는 거리입니다. 지금 듣건대 호인(胡人)이 기지를 수축하고 와서 거주할 계책을 하고 있다 하니, 이는 복심(腹心)의 도적입니다. 경원(慶源) 두만강 건너편에 석성현(石城縣)이 있는데, 호인이 한창 그 성을 수축하며 들어오고 있다 하니, 그 지역의 외로운 형세는 서방보다 더합니다. 지난번 김명원(金命元)이 무사를 단천(端川)에서 설과(設科)하도록 계청한 것은 이 점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정언신(鄭彦信)이 육진(六鎭)에 힘을 많이 들였으므로 덕분에 편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허물어지고 흩어져 형체조차도 없습니다. 이수일(李守一)도 이 점을 근심하여 체직되어 나오는 날이 살아나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박주(朴洲)는 어떠한 사람인가?"
하니, 기자헌이 아뢰기를,
"서울 사람으로 지금 원주(原州)에 있는데, 대수(代數)가 다한 서얼(庶孽)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신과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권희가 아뢰기를,
"이원익이 지금 성중에 있는데 여러 차례 양식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자봉(自奉)이 검소하였는데, 지금 병중에 있으니 음식물을 보내주어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아뢴 대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권희가 아뢰기를,
"의주 중강(中江)에 다시 개시(開市)하여 세금을 수납해서 국용(國用)에 보태는 것은 참으로 이익이 됩니다. 지금 만일 차관(差官)을 보내면 근신하지 않는 일이 있을까 염려되며, 또한 중국인이 왕래하는 일도 있으니 명망과 풍도(風度)가 있는 문관을 보내 자문 점마(咨文點馬)의 일을 겸해 살피게 하여 일로(一路)의 폐해를 제거하소서."
하고, 한응인(韓應寅)은 아뢰기를,
"의주 부윤이 백성을 다스리느라 겨를이 없어서 중강 개시의 일을 직접 집행하지 못하므로 반드시 허술한 폐단이 있을 것입니다. 전에 조도사(調度使) 홍세공(洪世恭)과 종사관 조정(趙挺)이 주관할 때에 거두어 들인 세금이 자못 많았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8책 147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349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정론(政論) / 행정(行政) / 사법(司法) / 군사(軍事) / 재정(財政) / 상업(商業) / 무역(貿易) / 사상-유학(儒學) / 인사(人事)
○乙未/上御別殿, 領事尹承勳、知事韓應寅、特進官申磼、行大司諫權憘, 特進官奇自獻, 參贊官南瑾執義李效元, 侍讀官李愖、檢討官李志完、假注書朴大彬、記事官蘇光震ㆍ丁好善入侍。 上讀《周易》 《頤卦》, 次釋訖, 李愖進講《大過卦》, 自序至大過之行也。 上曰: "所謂滅沒者, 謂木在水中, 而至於滅沒耶?" 愖曰: "然。 大過云者, 聖賢道德功業, 大過於人, 凡常事, 皆過於人, 非謂過於理也。 但矯其失, 故未免過中, 如行過乎恭, 喪過乎哀。 儉雖過於中, 非過擧也。" 上曰: "以卦象言之, 巽, 木也, 兌, 澤也。 水所以養木, 而若至於過, 則終致滅沒, 言過也。" 所謂棟橈, 亦言過也。" 愖曰: "然。" 上曰: "大, 謂陽也。 其中陽剛, 故本末不勝耶?" 愖曰: "然。 以爻辭言之, 棟橈之言, 大槪不好, 先儒以爲: ‘陽不足之語, 雖君子盛, 而小人衰, 必扶陽而抑陰, 乃可長治而久安也。’ 大過之時大矣云者, 必有大過人之才者, 乃可爲之。 如堯、舜之禪讓, 湯、武之放伐, 必有堯、舜、湯、武之才, 乃可。 象曰: ‘君子以, 獨立不懼, 遯世無悶,’ 取兌澤之象, 用之則獨立不懼, 捨之則遯世無悶。 人君必求獨立不懼, 遯世無悶之士。 以人品言之, 遯世無悶, 雖貴於遯世, 而必以無悶爲貴, 如隱居以求其志, 乃遯世無悶也。" 上曰: "遯字, 是逃字之義乎?" 愖曰: "然。" 講畢, 權憘進曰: "昨日, 李恒福遞命遽下。 大臣之進退極重。 若其身病, 則臣未知之, 大槪以狂妄儒生之疏, 呈告云。 若以一儒生疏, 輕遞大臣, 則浮薄之輩, 必人人扇動, 以至匿名爲書, 動搖大臣。 不知此後, 復有何疏乎?" 上曰: "所謂儒疏, 是何人疏乎?" 憘對曰: "頃者, 淸州儒生朴而儉疏中, 有指斥恒福之語, 故恒福因有不自安之心矣。" 上曰: "予萬機之中, 未能悉記, 有與鄭澈交密之語。 是豈必專指斥領相之語, 而何獨領相辭避乎?" 尹承勳進曰: "小臣亦方在積謗之中矣。 朴而儉疏中, 有曰: ‘澈之腹心, 亦占於台鉉。’ 渠因謂人曰: ‘是指恒福。’ 云。 恒福, 非澈腹心。 與澈或有一時相知之理, 而足不到澈之門庭云矣。" 上曰: "與之交乎?" 承勳曰: "無交厚之理。 不獨此也, 近日朝著變陣, 而恒福在首相之位, 故毁謗百出。 頃日議薦銓判之時, 以洪進擬望, 而不擬柳永慶, 故人皆歸咎, 洪進則臣實薦之矣。 至謂不擬任國老云, 多有謗言矣。" 上曰: "領相若交鄭澈, 則非矣。 交則公論斥之當矣。" 承勳曰: "不交矣。 此外多少人言, 有不可一二陳達矣。" 上曰: "外間浮雜之言, 大臣當鎭之, 不必言之。 其呈告之由, 予實不知, 有由然矣。 其與澈交否, 非予所知, 若交鄭澈, 其人何用? 若相交, 則不可隱匿。" 上顧謂承勳曰: "南邊防禦之事, 最爲當今第一務。 如舟師等事, 幾何整齊耶?" 承勳曰: "臣近見李德馨, 言: ‘舟師今方整齊, 而事多齟齬, 雖下去, 無措手之地云。’ 夫自慶尙道, 至全羅道, 其間極闊, 而以戰船七十艘, 落落排列, 不亦疎乎? 格軍則分立四番, 而一番僅五十人, 每五十日相遞, 頗爲怨苦, 亦難繼立矣。" 上曰: "豆滿江如何?" 磼曰: "其水甚狹, 不難渡矣。 鴨綠一帶, 江流迅急。 近日民間, 聞老酋欲動之奇, 中外洶洶, 然自冬至後一百日, 則江氷必析。 今則秋前, 可保無虞矣。 滿浦越邊, 有皇城堞, 距滿浦僅十里許。 今聞胡人, 修築基址, 爲來居之計。 此腹心之寇也。 慶源、豆滿江越邊, 有石城縣, 胡人方築其城以入云。 其地形勢之孤危, 有甚於西方。 頃者金命元啓請武士設科於端川, 蓋慮此也。 鄭彦信多致力於六鎭, 故其時賴以得安, 今者渙散無形。 李守一亦以此爲憂, 以遞出之日, 爲得生之日矣。" 上曰: "朴洲, 何如人耶?" 奇自獻曰: "京中人, 今在原州, 而代盡庶孽也。" 上曰: "議大臣處之。" 憘曰: "李元翼今在城中, 屢至絶乏云。 此人自奉素簡, 而今其病中, 當饋食物矣。" 上曰: "當依啓。" 憘曰: "義州 中江, 更爲開市納稅, 以補國用, 誠爲利益。 今若送差官, 恐有不謹之事。 且有唐人往來之事, 宜遣文官有名望風力之人。 且兼察咨文點馬之事, 以除一路之弊。" 應寅曰: "義州府尹, 治民不暇, 未能親執, 必有虛疎之弊。 前者調度使洪世恭、從事官趙挺句管之時, 所入之稅頗優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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