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부가 두목청 향례에 쓰이는 기명에 대해 아뢰다
헌부가 아뢰기를,
"난리 뒤에 국가의 저축이 탕갈되어 모든 응용(應用)의 물품을 대가를 주지 아니하고 시장 백성에게서 거두어 쓴 지 오래 되었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시장 백성이 재산이 파탄되어 이미 극도로 곤궁한 상황은 위에서도 반드시 통촉하고 계실 것입니다. 조사(詔使)를 접대하는 일에 있어서는 도감에서 전담하여 처리하는 일이니, 실로 계속 논할 수 없습니다마는, 지금 이 두목청에 소용되는 오정배 장대(五呈盃長臺) 등의 기구는 도감의 소관이 아니라 곧 향례(享禮) 때에 소용되는 것인데, 사옹원이 평소의 규례를 따라 강제로 상의원(尙衣院)에 명령하여 제조하게 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상의원이 부득이 시장 백성에게 오로지 책임지워 일시 향례의 소용을 위해 은자(銀子)를 마련한 것이 2백 30여 냥이나 많은 수량에 이르니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도감에서 두목의 술잔을 모두 사기로 대용하고 오직 이 오정배 장대만은 옛날 규례를 따름으로써 백성의 고혈을 착취하니, 저번날 백성들이 불쌍하다고 특별히 하교하신 뜻이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더구나 중국 사람도 우리 나라의 잔폐한 상황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으니, 비록 은기를 쓰지 않더라도 반드시 접대에 소홀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근일 시장 백성들이 거리를 메우고 머리를 모아 허둥지둥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니, 이 기상을 보고 신들도 목이 메고 애처로와 견딜 수 없었습니다. 두목청의 향례 때에 소용되는 기명을 유기나 사기로 대체하는 일은 해사로 하여금 다시 마련하게 하소서.
대사헌 정인홍은 지금 경상도 합천 땅 본가에 있으니 속히 올라올 것으로 하유하되 전례에 의하여 헌부의 서리(書吏)를 내려 보내소서. 지평 윤민일은 ‘평소에 성혼에게 수학하였으니 신은 곧 성혼의 문생이다. 영남·호남의 유생이 전후로 올린 소에 요로를 점거하고 있다는 등의 말이 있으므로 신도 배척을 당하는 사람중에 들어 있다. 풍헌(風憲)은 중요한 자리이므로 결코 무릅쓰고 있을 수 없다.’ 하고, 인혐하고 물러갔습니다. 성혼은 정철의 도당으로서 공론에 죄를 얻었으니, 수학한 사람까지 파급시킬 것은 없겠으나 그렇다고 언책의 자리에 둘 수는 없습니다. 지평 윤민일을 체차하라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오정배 장대로 쓴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어전에서 천사와 상대할 때 두목이 연청(宴廳)에 들어와 술을 마실 때 소용되는 것으로 진실로 유기나 사기를 대용할 수 없다. 폐단을 제거하겠다는 의사는 좋다만 형세상 그렇게 할 수 없다. 정인홍에게 글을 보내는 일과 윤민일을 체차하는 일은 윤허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8책 146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345면
- 【분류】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외교-명(明) / 재정(財政) / 식생활(食生活) / 사상-불교(佛敎)
○憲府啓曰: "亂後國儲蕩竭, 凡百應用之物, 不給價取辦於市民者, 久矣。 孑遺市民, 傾財破産, 已極倒懸之狀, 自上亦必洞燭矣。 至如接待詔使, 都監專治之事, 則固不可績續論之, 今此頭目廳所用, 五呈盃、長臺等具, 此非都監所管, 乃享禮時所用, 而司饔院尙循平時之規, 勒令尙方, 而製造者也。 以此尙方, 不得已專責於市民。 爲一時享禮之用, 取辦銀子, 至於二百三十餘兩之多, 不其過侈乎? 都監頭目酒盃, 皆代用以沙器。 惟此五呈盃、長臺, 獨遵舊規, 以浚民之膏血, 則頃日特下如傷之敎之意, 果安在哉? 況天朝之人, 無不知下邦之殘弊, 雖不用銀器, 必不謂輕蔑於接待矣。 近日市民等, 塡塞街巷, 聚首遑遑, 涕泣號訴。 觀此氣象, 臣等亦不勝哽咽而於悒也。 請頭目廳享禮時所用器皿, 代以鍮、沙器事, 令該司, 更爲磨鍊。 大司憲鄭仁弘, 今在慶尙道 陜川地本家。 請斯速上來事下諭, 依前府書吏下送。 持平尹民逸, 以平日受學於成渾, 臣卽渾之門生也。 嶺湖儒生, 前後疏中, 有忝據要津等語, 臣亦在詆斥之中。 風憲重地, 決不可冒處, 引嫌而退。 成渾乃鄭澈之徒黨, 而得罪於公論, 則受學之人, 雖不當波及, 而亦不可置諸言責之地。 持平尹民逸, 請命遞差。" 答曰: "五呈盃、長臺所用云。 然則是乃御前與天使相對, 頭目入宴廳饋酒時所用, 誠不可鍮、沙代用。 除弊之意, 則非不好, 而勢不可如是矣。 下書、遞事, 允。"
- 【태백산사고본】 88책 146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345면
- 【분류】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외교-명(明) / 재정(財政) / 식생활(食生活)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