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헌부에서 순화군의 정죄를 건의하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고수(瞽瞍)가 살인하여 고요(皐陶)가 법을 집행한다면 살인한 죄를 천자의 아버지라 하여 용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순임금과 같은 아들을 항상 죽이려고 한 것으로 보면 우매하고 정신이 나간 것이 어느 누가 고수보다 심하겠습니까마는, 살인죄는 우매하고 정신이 나갔다고 하여 놓아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전에는 순화군 이보에 대해 상심하여 실성(失性)했다고 했으나, 전부터 살인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고 수원(水原)에 안치된 뒤에도 연속 두 사람을 죽였는데 대간이 즉시 논계하지 않은 것은 어찌 다른 이유가 있어서이겠습니까. 아마도 곤장을 맞고 상해를 입어 오랜 뒤에 죽은 것을 가지고 거론한다면, 자애스러운 전하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므로 숨기고 드러내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공론이 울분에 차 있는데, 이번에 살해할 때는 손수 칼질을 하여 극히 잔혹하였으므로 보고 듣는 사람들이 놀라고 참혹하게 여겼으니, 어쩌다 저지른 과오나 우연히 살인한 경우와는 다릅니다.
전일 성비(聖批)에 ‘죄는 유사로 하여금 처단하게 하라.’ 하셨는데, 순화군은 이미 관직을 삭탈하고 또 안치하였으니, 유사가 처단한 일이란 나국하여 법을 적용하는 이외에 다시 무슨 율을 가지고 그 죄를 바로잡겠습니까. 삭탈 관직하고 안치했다하여 그 죄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더욱 기탄이 없어 방자한 행동이 날로 심해질 것이니 무고한 백성이 피살되는 일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대체로 살인죄는 본디 그에 따른 율이 있으니 어찌 존귀하다 하여 놓아주고 우매하고 미친 사람이라 하여 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성심(聖心)에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은 사정이고, 왕법상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공의입니다. 조그마한 죄악도 사정으로 공의를 가릴 수 없는데, 더구나 이처럼 막대한 살인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데도 다스리지 않으면 후일에 징계되는 바가 없어 오늘 한 사람을 죽이고 내일 또 한 사람을 죽여 살인이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왕법이 행해지지 않아 위에서 법을 범한다면 어떻게 백성의 잘못을 막겠으며, 국법이 한번 실추되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망설이지 마시고 빨리 율을 적용하여 정죄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 뜻은 나도 안다만 나국(拿鞫)할 수는 없다. 이는 대체로 공의(公義)를 실로 폐할 수 없으나 천륜의 은혜도 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2책 134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207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사법(司法) / 정론(政論) / 역사-고사(故事)
○司憲府啓曰: "瞽瞍殺人, 皐陶執之, 則殺人之罪, 不可以天子之父而赦之。 以舜爲子, 常欲殺之, 則愚頑喪心, 孰有甚於瞽瞍, 而殺人之罪, 不可以愚惑喪心, 而釋之。 前順和君 𤣰, 雖曰: "喪心失性, 而自前殺人, 非一非二, 及乎水原出去之後, 又連殺二人, 而臺諫不卽論啓者, 豈有他哉? 或以因杖致傷, 日久乃殞, 擧以論之, 有以傷殿下慈愛之心也。 隱忍不發, 公論已鬱。 今此戕殺, 手自刃之, 極其殘酷, 見聞驚慘。 非邂逅過誤, 偶然殺死之比也。 前日 聖批曰: ‘罪則令有司處之。’ 順和旣削其職, 又爲安置, 則有司之所以處之者, 拿鞫按法之外, 更將何律, 以名其罪乎? 謂已削爵安置, 而不擧正其罪, 則益無所忌, 縱恣日甚, 無辜被殺, 何所不至? 大抵殺人之罪, 自有其律。 豈可以尊貴而赦之, 愚狂而棄之哉? 聖心之不忍者, 私情也; 王法之罔赦者, 公義也。 尋常過惡, 猶不可以私情掩公義。 況此殺人莫大之罪, 而可以置而不治乎? 此而不治, 後無所懲。 今日殺一人, 明日殺一人, 殺人愈多, 而王法不行, 則自上犯之, 何以防民? 邦憲一墜, 何以爲國? 請勿留難, 亟命按律定罪。" 答曰: "此意予亦知之, 然不可拿鞫, 蓋義固不可廢, 而恩亦不可傷。 不允。"
- 【태백산사고본】 82책 134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20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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