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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132권, 선조 33년 12월 1일 경오 3번째기사 1600년 명 만력(萬曆) 28년

춘추관 낭청이 그동안 누락된 역사를 추수할 것을 건의하다

춘추관 낭청이 영사(領事)·감사(監事)와 여러 당상들의 뜻으로 아뢰기를,

"잘잘못은 일시에 행해질 뿐이지만 시비(是非)는 만세(萬世)토록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국가에서 사관(史官)을 중히 여겼던 까닭은 일시의 잘잘못을 기록하여 만세의 시비를 기다렸던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망할 수 있어도 역사의 기록은 빠뜨릴 수 없었던 것이니, 혼란하고 경황이 없는 때이더라도 역사를 기록하는 일만은 더욱 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일 춘추관의 일기(日記)를 상고해 보니, 임진년 한 해 동안의 일은 전혀 기록하지 않았고, 계사·갑오·을미 3년간의 일도 기록하지 않은 부분이 10개월이나 되는데, 당시 사관의 성명도 기록되어 있는 곳이 없기 때문에 상고하여 추수(追修)할 방법이 없습니다. 병신·정유·무술·기해 4년의 역사는 1년의 기록 중에 빠뜨리고 기록하지 않은 부분이 많은 경우는 8∼9개월이고 작은 경우도 4∼5개월 이상입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도 그대로 버려 두고 마음을 쓰지 않는다면 조선은 끝내 역사가 없는 나라가 되어, 후세에 논하는 자들이 오늘의 잘잘못과 성패에 대해 살펴보려 해도 의거할 곳이 없게 될 것이니, 이보다 더 한심스러운 일이 없습니다. 일이 비각(秘閣)에 관계된 것이어서 외인(外人)들이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9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아직까지 조정에서 대대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았으니, 이 역시 괴이한 일입니다.

지금 정리하고 바로잡아 고치려해도 매우 산만하여 착수하기가 쉽지 않은데, 세월이 더 흐른 뒤에는 사적(事蹟)이 인멸되어 세상에 전해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임진년 한 해 동안에는 좌사(左史)·우사(左史)가 갖추어지지 않아 참상(參上)으로 겸춘추를 삼아 사관의 일을 임시로 맡아 보게 하였으니, 그 당시 사필을 잡았던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내어 임진년의 역사를 추수하도록 독려하소서. 그리고 계사·갑오·을미 3년간에 재직했던 사관의 성명·직위·재임 시기의 선후를 이조로 하여금 조사해 내게 하고, 상고할 수 있는 다른 문서도 상고하여, 그 사람이 외직에 있거나 산직(散職)이거나 상중(喪中)에 있더라도 모두 와서 이 3년 동안의 역사를 추수하게 하소서. 병신년 이후 4년 동안에 재직했던 사관의 성명은 상고할 수 있으니 일일이 찾아내어 기한을 정해 추수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의거할 만한 것이 없는데 추술(追述)한다면 진실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반드시 의외의 폐단이 있을 것이니, 이 일은 매우 곤란하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환도(還都)한 초기에 경연관이 야사(野史)를 수합(收合)하도록 청하였으나 따르지 않더니, 이제 와서 또 이런 전교가 있었다. 이른바 의외의 폐단이란 무엇인가. 임금 자신의 시비와 잘잘못을 논하는 자들이 많을 것을 싫어한 데 불과할 뿐이다. 임금이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덕을 닦으며 현자를 등용하고 사악한 자를 물리쳐서 한 마디 말이나 한 가지 행동이 모두 후사(後嗣)의 본보기가 될만 하다면 무슨 폐단이 염려되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80책 132권 1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156면
  • 【분류】
    정론(政論) / 행정(行政) / 인사(人事) / 역사-사학(史學) / 역사-편사(編史)

○春秋館郞廳, 以領監事諸堂上意, 啓曰: "得失, 只行於一時, 是非, 乃定於萬世。 自古國家, 所以重史官, 以記一時之得失, 以待萬世之是非, 故國可亡, 史不可闕, 雖在搶攘顚沛之日, 尤謹於載筆之事。 近日就考館上日記, 則壬辰一年, 全然不記, 癸甲乙三年闕錄者, 多至十朔, 而其時史官姓名, 亦無載錄之處, 憑考追修, 其道無由。 至於丙申、丁酉、戊戌、己亥四年之史, 一年之內, 闕而不修者, 多者八九朔, 少不下四五朔。 今若因循放過, 則朝鮮終爲無史之國, 而後之論者, 於今日得失成敗之迹, 徵之無據。 事之寒心, 無大於此, 而事係秘閣, 非外人所得以知者, 故悠悠九年, 尙不爲朝廷一大擧措, 是亦怪事。 今欲釐正, 茫然散漫, 未易就緖。 若又悠久, 則其勢將至於湮沒而無傳。 壬辰一年, 則左右史不備。 或以參上兼春秋人員, 權行史官之事, 其時秉筆人員, 一一査考, 督令追修。 癸甲乙三年間, 史官姓名、職次、日月先後, 令吏曹査出, 或憑他可考文書, 本員雖在外任, 或閑散哀疚之中, 幷令追修。 丙申以下四年間, 史官姓名, 憑考有據, 一一査出, 刻期追修何如?" 傳曰: "若無可據, 而自意追述, 則非但失實, 必有意外之弊, 此事甚難。"

【史臣曰: "還都之始, 經筵官, 請收合野史, 而不從, 至是, 又有此敎。 所謂意外之弊者何也? 不過惡其議之者多也。 人君若正心修德, 用賢退邪, 一言一事, 皆可爲後嗣觀, 則其何弊之足慮。"】


  • 【태백산사고본】 80책 132권 1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156면
  • 【분류】
    정론(政論) / 행정(行政) / 인사(人事) / 역사-사학(史學)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