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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129권, 선조 33년 9월 4일 갑진 4번째기사 1600년 명 만력(萬曆) 28년

전 행 부호군 정구의 대행 왕비 장지 선정 문제에 대한 상소

전 행 부호군(行副護軍) 정구(鄭逑)가 상소하기를,

"신이 듣건대 인산(因山)의 큰 역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는데, 박자우(朴子羽)란 자가 수화기극(水火忌克)의 설을 가지고 묏자리로서는 불리하다면서 소(疏)를 갖추어 올리자, 총호사(摠護使) 이헌국이 놀라움을 금치 못해 진계(陳啓)하니, 전날의 술관 등에게 명하여 얼굴을 맞대고 가리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서 사람들이 놀라와하여 원근이 흉흉합니다. 박상의(朴尙義)는 자신이 처음에 묏자리를 정하는 데에 참여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장황하게 부회하여 드디어 저지시킬 계책으로 삼았습니다. 풍수설은 신이 아는 바가 아니며 오늘날의 곡절도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는 어리석은 충정이 가슴속으로부터 우러나와 자제하지 못하겠기에 감히 상께 외람되이 진달하여 자우의 술이 전혀 믿을 것이 못됨을 밝히오니, 성상께서는 굽어살피시기 바랍니다.

신이 일찍이 지리가(地理家)에게 들으니, 그들의 설에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빈주(賓主)가 서로 공읍(拱揖)하는 형세인가를 보고 구작(龜雀)과 용호(龍虎)의 형세인가를 보며 이합취산(離合聚散)의 형태인가를 살피고 원만하게 모아져 물샐틈 없이 치밀하게 막혔는가를 보는 것 등은 산가(山家)177) 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며, 팔괘(八卦)와 간지(干支)의 수리(數理)를 써서 이리저리 참작하는 묘리를 붙이고 방위와 향배(向背)의 이름을 설정하여 순역(順逆)과 길흉(吉凶)의 상(象)을 붙이는 것은 산가들이 참고로 삼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산이 높고 낮은 것으로 화복을 논하고 물이 가고 오는 것으로 이해를 말하여 생극 쇠왕(生克衰旺)에 대한 설이 시대가 내려올수록 불어나 갈래와 주각(注脚)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사람들로 하여금 따를 바를 모르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올바르지 않은 책에서 나온 것으로 세상을 속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 바, 실로 산가들이 취하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호순신이나 오행서(五行書) 등을 일러 ‘멸만경(滅蠻經)’이라고 하니, 이로 인해서 만이족(蠻夷族)에게 멸망의 화가 있었다고 해서 이르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자우의 설 또한 만이족을 멸망시킨 찌꺼기로 산가들이 배척하는 바의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리설에 대해서는 선유(先儒)들의 분명한 정론이 있습니다. 주자(朱子)《가례(家禮)》정이(程頤)가 말한 ‘묏자리가 좋으면 신령이 편안하고 자손이 번창하며 묏자리가 나쁘면 이와 반대로 된다. 이른바 묏자리가 좋다는 것은 흙의 빛깔이 광택이 나고 초목이 무성한 것이 그 징험이다. 그런데도 얽매여 꺼리는 자들은 땅의 방위를 가리고 날의 길흉을 받는 데 혹해 있으니, 잘못이 아니겠는가.’라는 말을 실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주희(朱熹)의 논리는 산이 돌고 물이 감싸는 것을 주로 하고 모좌 모수파(某坐某水破)의 설은 취하지 않은 것입니다.

나대경(羅大經)은 송(宋)나라 말기의 명유입니다. 그도 또한 ‘옛날에 묏자리를 잡았던 것은 소중한 어버이의 유체(遺體)를 신중히 하려는 것에서였다. 그들이 묏자리를 애써 가렸던 것은 산수(山水)가 돌아 합치고 초목이 무성하여 어버이의 유체가 편안하였으면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생명의 장단과 자질의 현우(賢愚)에 대해서는 이미 정해진 대로 품부받고 태어나는 것인데, 어찌 천명이 다시 옮길 리가 있겠습니까.

사마광(司馬光)은, 조부(祖父)의 상을 당했을 때 삼촌들이 술사에게 의혹되어 의 말을 믿지 않고서 선대(先代)가 예로부터 묻힌 곳을 버리고 소목(昭穆)의 차례를 어지럽히려 하였는데, 이 말로 이겨낼 수 없음을 알고는 술사에게 후한 뇌물을 주어 여러 삼촌들에게 거짓으로 옛 묘역을 칭찬토록 하여 자기의 생각을 실천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예대로 장례를 치렀는데, 그 이후로도 가세가 매우 융성해지자 은 더욱 술사들의 말을 믿지 않았으며, 이런 내용을 인용하여 후세에 훈계를 남기기까지 하였습니다. 신이 그 글의 전부를 기억하지는 못하겠으나 대강은 이렇습니다. 풍수가들의 분분한 설은 들을 필요가 없으니, 대체로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신이 관서(關西)에서 서울에 올 때 들으니, 지리(地理)를 아는 유신(儒臣)과 술사들이 서로 상의해서 좋은 자리를 잡으라고 명하셨다 합니다. 신이 비록 산경(山經)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묏자리를 직접 보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혼자 생각하기를, 이미 유신들이 참여해 확정하였고 또 전하의 재가를 받았다면 술사들은 응당 자기의 견해를 고집할 수 없을 것이며 오늘의 일은 당연히 만세의 준칙이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큰 역사가 거의 끝나고 길월(吉月)이 이미 박두했으며, 인심이 이미 정하여졌고 신도(神道)178) 도 곧 평안을 누리려는데 갑자기 어떤 자가 저지하여 대사(大事)가 글러지고 길월이 미뤄지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걱정스럽고 민망함이 무엇이 이보다 더한 것이 있겠습니까.

박자우의 위인(爲人)에 대해서신이 일찍부터 알고 있었으나 지리에 대해 안다고는 아직 듣지 못하였으며, 오늘 올린 소의 내용도 어떤 내용인지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찌 호순신의 주장을 끌어모아 말을 만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박상의의 지식[術]이라는 것도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만일 조정에 기강이 있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헌국은 대신(大臣)이니 말 한마디면 의혹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렇게 동요되어 감히 상께 아뢰고 온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낙담케 한단 말입니까. 대신인데도 이와 같이 하는데, 더구나 여러 술관들 중에 누가 능히 자기의 견해를 고집하여 요동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다른 자리를 잡을 경우 십분 합당한 길지(吉地)가 있는데 또다시 자우와 같이 이설을 제기하는 자가 없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묏자리를 다시 잡아 일이 곧 마무리되려는데 또다시 박자우 같은 자가 나타나 이설로 현혹할 경우 장차 어찌하겠습니까. 자우가 설사 자신의 지식을 자신하여 나라를 위해 자기의 재주를 행하고자 하였다면 어찌하여 묏자리가 정해지기 전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신이 말하는 바는 단지 박자우가 뒤늦게 시끄럽게 하는 말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점입니다. 묏자리가 참으로 합당한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신도 또한 어찌 감히 보지도 못하였는데 합당하다고 하겠습니까.

신이 통탄스럽게 여기는 점은, 단지 길지(吉地)를 잡은 지 이미 오래 되어 역사가 반도 더 진행되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의 말 한마디에 저지되어 가만히 앉아서 낭패를 당하게 됨으로써 길월의 기한에 마칠 수 없게 되어 황황히 다른 묏자리를 잡느라 분주함이 마치 갓 초상난 날과 같은 점입니다. 비단 우리 나라의 신민들만이 걱정하고 당황해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성중에 가득한 중국 사람들로부터도 웃음거리가 될 것이며 또한 후세의 식견이 있는 자들로부터도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산(因山)은 어려운 일이라서 비록 안정되어 태평스런 때라 하더라도 재력이 탕갈 되어 백성들의 생활이 피폐해지므로 이웃 나라가 엿보게 됩니다. 그런데 더구나 지금은 10년간 전쟁에 시달린 뒤여서 겨우 살아난 백성들이 살아갈 길이 없어 울부짖는데이겠습니까. 중국 군사의 접대도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어서 곳곳에서 울부짖고 아우성치는 상황을 차마 볼 수가 없는 지경인데, 하늘이 또 재앙을 내려 갑자기 망극한 아픔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겨우 살아남은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 죽을 힘을 다해 후하게 장사를 치르려는 지극하신 뜻을 받들도록 하여, 이제는 이미 조금도 여력이 없습니다. 만일 전날 잡았던 자리가 과연 좋지 않고 앞으로 다시 좋은 자리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이런 따위는 참으로 따질 필요조차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온 나라의 명사(名師)179) 들과 여러 공경(公卿)들이 모두 모여 더할 수 없이 자세하게 하였는데, 갑자기 이처럼 의심하여 결단하지 못하니, 신은 예문(禮文)의 다섯 달 기한이 홀연히 흘러가 버리고 거의 죽어가는 백성들이 힘을 다 쓴 나머지 다시는 힘을 더 쓸 여력이 없게 될까 염려됩니다. 그리고 지금 남쪽과 북쪽의 근심이 아침과 저녁 사이에 어떻게 될지 몰라 모든 사람들이 짐을 꾸린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뜻밖의 헤아리지 못할 근심을 어찌하여 전혀 생각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전하께서는 신의 말을 받아들이시어, 이것이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실로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정론에서 나온 것이며, 산가(山家)의 좌향(坐向)이나 형세에 관한 설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바르지 못한 설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여기셔서 신의 소를 대신들에게 내려 의결하게 하소서. 또 산경(山經)들 중에서 호순신은 멸만경(滅蠻經)으로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는 말과 수파(水破)로는 성패를 증험할 수 없다는 실상을 모두 뽑아서 자세히 기록해 아뢰게 하소서. 그렇게 하시면 신의 말이 전하를 속이는 것이 아님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이 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예기(禮記)》에는 ‘염습(斂襲)할 때 시신을 싸는 의금(衣衾)을 반드시 성신껏 하여 후회가 없도록 해야 하며, 장례 때 관에 넣어주는 기물(器物)을 반드시 성신껏 하여 후회가 없도록 해야 한다.’ 하였으며, 《맹자(孟子)》에는 ‘오직 송종(送終)이 대사(大事)에 해당된다.’고 하였습니다. 천하의 대사 중에 무엇이 송종보다 더 중한 것이 있겠습니까. 신의 생각으로는, 오늘날 장례를 치르는 대례를 거행함에 있어 모든 송종과 관에 넣는 일에 있어서는 반드시 성신껏 하는 도리를 다해 최대한의 힘을 기울여서 해야 할 것으로 민생이 바닥나고 국사가 위태로와지는 것쯤은 따질 것이 못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 나머지 형식적인 예에 해당되는 것이나 공연한 것으로 별로 도움도 안 되는 데 드는 비용은 유사들이 충성을 다하는 성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비록 감히 한마디로 줄이라고 청할 수는 없지만 성상께서 백성을 보호하고 용도를 절약하는 마음으로 특별히 간략하게 치르도록 명을 내려 대행 왕비께서 평소 검박하게 하신 성덕(聖德)에 부합하게 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백성에게 은혜가 되고 후세에 법이 됨이 어찌 성대하지 않겠습니까. 성상께서는 양찰하소서."

하였는데, 소가 올려지자 으레 하던 대로 계하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8책 129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123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왕실-의식(儀式) / 정론(政論) / 군사(軍事) / 외교-명(明)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역사-고사(故事)

  • [註 177]
    산가(山家) : 지리가를 말함.
  • [註 178]
    신도(神道) : 귀신의 존칭.
  • [註 179]
    명사(名師) : 이름 있는 풍수.

○前行副護軍鄭逑上疏曰:

伏以, 臣竊聞因山大役, 庶將就緖, 而有朴子羽姓名人, 以水火忌克之說, 謂不利於宅兆, 將具疏以聞, 而摠護使李憲國, 不勝憂駭, 先自陳啓, 命前日術官等, 令與面辨。 以此人心驚惑, 遠近洶洶。 朴尙義, 自以不與於初, 附會張皇, 遂爲沮撓之計。 夫風水之說, 非臣所知, 今日曲折, 亦不得詳, 而憂國愚忠, 誠有弸中, 而不能自遏者, 敢冒陳於聖明之前, 以明子羽之術, 全不足取信, 願聖鑑之有以下察焉。 臣嘗聞地理之家, 其所以爲說者, 有二焉。 相賓主拱揖之勢, 定龜雀龍虎之形, 審聚散離合之情, 求融結關鎖之密, 此山家之所宗也。 用八卦干支之數, 寓推排參錯之妙, 建方位向背之名, 著逆順吉凶之象, 此又山家之所參取也。 外此而論禍福於山高山卑之間, 談利害於水去水來之際, 生克衰旺之說, 世益滋蔓, 枝葉注脚, 有不勝其多端, 令人茫然, 而莫之的從, 皆出於不經之書, 而爲誑惑世道之資, 實非山家之所與, 故與胡舜申五行書之類, 謂之《滅蠻徑〔滅蠻經〕言。 緣此而有蠻夷滅亡之禍也。 然則子羽之說, 其亦滅蠻之糟粕, 而爲山家之所擯者乎? 大抵先儒於地理之說, 明有定論。 朱子《家禮》, 載程頤之言, 以爲地之美, 則神靈安, 而子孫盛, 地之惡則反是。 所謂地之美者, 土色之光潤, 草木之茂盛, 乃其驗也, 而拘忌者, (感)〔惑〕 於擇地之方位, 決日之吉凶, 不亦戾乎? 故朱熹之論, 專主山回水抱, 而不取某山某水之說。 羅大經, 末名儒也。 亦以古之卜其宅兆者, 乃謹重親之遺體, 其所精擇, 不過欲其山水回合, 草木茂盛, 使親之遺體, 得安耳。 人之生也, 夭壽賢愚, 性分已定。 豈天命反爲所轉移乎? 至於司馬光, 則當祖父之喪, 以諸父惑於術士, 不信之言, 將棄先人舊葬, 而亂昭穆之序, 旣不能辨, 則厚賂術士, 保誑諸父, 令稱譽舊(榮)〔塋〕 , 得行其計, 而以禮葬焉。 其後家世極其隆顯, 以此, 益不信術者之言, 引此說, 以垂訓後世。 臣不能全記本文, 而大槪如是。 風水家紛紛之說, 其言不足聽, 蓋如是矣。 臣自關西入來之時, 伏聞命儒臣之曉解地理者, 與術人等, 相與商礭, 擇定吉地。 臣雖不識山經, 亦不得目見, 而竊以爲, 旣有儒臣參證, 又取裁於睿斷, 則術輩應不得全肆己見, 今日之擧, 當爲萬世準則。 不謂大役垂畢, 吉日已迫, 人心已定, 神道將安, 而忽爲人所沮, 將致誤大事, 延退吉月, 其爲深憂極悶, 孰有甚於是哉? 朴子羽之爲人, 臣曾知之, 而曉解地理, 則未之聞, 今日疏中之言, 亦未得聞其如何, 然豈非收拾胡舜申之論, 而爲之說者乎? 況朴尙義之術, 亦不過同一土苴也。 如朝廷有紀綱, 豈宜有是事哉? 李憲國, 大臣也。 一言足以破惑, 何遽爲所動, 乃敢上煩震聞, 使擧國之人, 心膽墜地也哉? 大臣而不免如此。 況諸術官等, 孰能自執己見, 不爲所撓乎? 將使卜他地, 則不知更有吉地, 十分恰當, 而無復有子羽者乎? 若又山旣卜、事將畢, 而有如朴子羽者, 更眩他說, 則又將如之何哉? 子羽設使自信其術, 欲爲國仰售, 則寧不有一言, 請獻於未定之日乎? 臣之所言, 只爲朴子羽追聒之言, 不足爲據, 至其爲山之眞可合與否, 則臣亦豈敢取必於所未覩哉? 臣之所痛者, 只是卜吉已久, 爲役過半, 而遽爲人一言所沮, 坐取狼狽, 旣不及吉日之期, 遑遑奔走於改卜, 有同初喪之日, 不惟一國臣民所共憂惑, 亦將爲滿城唐人所笑, 亦將爲後世識者所議。 且因山重役, 雖在太平安堵之日, 財力耗竭, 民生困悴, 有爲隣國之所窺覘。 況此十載喪亂之餘, 孑遺之人, 囂然無復有生理者乎? 天兵接待, 猶無以支堪, 叫囂(墜)〔隳〕 突之狀, 處處不忍。 天又降割, 遽遭罔極之痛, 遂使垂成之民, 更努萬死之力, 仰奉厚送之至意, 今旣更無一毫之有餘矣。 如前日之所卜, 果未爲盡善, 而將更得吉地, 則他固不暇計矣, 夫旣聚盡一國之名師, 與諸公卿, 反覆詳盡, 更無餘蘊, 而忽有此疑違不決, 臣竊恐禮文五月之期, 忽焉已過, 垂盡將死之民, 有如彎弓引滿之餘, 更無分外可開之勢。 且今南北之憂, 不知朝夕如何, 人皆荷擔遑遑, 意外難料之憂, 亦豈全不爲之慮及哉? 伏願殿下, 俯納臣言, 以爲此非臣百慮之一得, 實正論之緖餘, 而山家形勢坐向之說, 亦不外焉。 曲說當不足取信, 而下臣疏, 令大臣議決, 且令於《山經》中, 胡舜申 《滅蠻經》, 不足所信之論, 與水破已然, 成敗不驗之實, 一一摘出, 詳錄以啓, 則臣言庶幾不爲欺罔矣。 臣抑有所獻焉, 《禮》曰: "殯而附於身者, 必誠必愼, 勿之有悔焉可矣; 葬而附於棺者, 必誠必愼, 勿之有悔焉可矣。" 孟子曰: "惟送終, 可以當大事。" 天下之大事, 孰有過於送終? 臣愚以爲, 在今日襄(奏)〔奉〕 之大禮, 凡所以送終附棺之事, 則盡必誠必愼之道, 無所不用其極, 民生之竭、國事之危, 皆不得計矣。 其餘虛文外儀, 空費無甚益之所需, 則在有司竭忠之誠, 雖不敢一言請損, 而以聖上保民節用之心, 特命務從簡約, 以副我大行王妃平日好儉之聖德, 則其所以爲惠於斯民、爲法於後世者, 豈不甚盛矣乎? 伏惟聖上, 有以諒察焉。

疏入, 例爲啓下。


  • 【태백산사고본】 78책 129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123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왕실-의식(儀式) / 정론(政論) / 군사(軍事) / 외교-명(明)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