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형과 중국군 청병과 그에 따른 향은 문제를 논하다
상이 편전에 나아가 이덕형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이 제독을 만나 보니 그의 생각이 어떻던가? 4천∼5천의 병력을 청하였다고 한것은 무슨 뜻인가? 향은(餉銀)도 아울러 청하였는가?"
하니, 덕형이 아뢰기를,
"제독이 신을 보고 한 말은 ‘이곳 사람들이 중국군을 싫어하여 속히 떠나게 하려고 하니 앞으로 청병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만약 본색(本色)과 절색(折色)을 귀국이 마련할 수 있으면 수하(手下)의 병력을 즉시 머물게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오직 철수하여 갈 뿐이다.’ 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신이 답하기를 ‘어리석은 백성 중에 원대한 생각이 없는 자가 그렇게 말하였더라도 지금 다 철수하게 되면 사람들은 모두 어찌할 줄 모를 것인데 다만 향은 문제 때문에 병력을 많이 머물게 해달라고 청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병이 들어 한 그릇의 물을 얻으면 살 수 있고 얻지 못하면 죽게 되었는데 차마 그 한 그릇의 물을 아끼겠는가. 대인(大人)께서는 끝까지 구해줘야 할 것이다.’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전일 자문(咨文)에 잘못 말한 자를 치죄하였다는 것으로 내일 주문(奏文)을 하여야 비로소 청병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니, 덕형이 아뢰기를,
"상께서 각별히 게첩하시고 주문은 내일 지어서 보여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아문의 게첩에는 비록 그러한 말이 있다고 하더라도 치죄한 것으로 주문하기는 어렵다. 어쩔 수가 없다면 앞서 청한 대로 3천의 병력을 요구하는 것이 좋겠는가?"
하니, 덕형이 아뢰기를,
"3천 병력을 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쌀로 왜놈들을 먹인다는 말은 너무도 무리하다. 중국인은 실없는 말을 하는 것이 가장 장기인데, 매우 미안하다. 경은 비변사의 기타 대신과 상의하여 주문의 초안을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
하고, 상이 또 이르기를,
"양 경리(楊經理)169) 는 지개(志槪)와 기골(氣骨)이 가장 높아 대접하기는 어려워도 그 사람은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자이다. 비록 화가 났더라도 설득하면 풀어지니 세상에 일이 있으면 그 사람이 반드시 감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 경리(萬經理)170) 와 같은 자는 일을 이루지 못할 사람이다. 아문 자신이 직접 탐욕을 부리는 일도 있지만 아랫사람이 한 일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니, 덕형이 아뢰기를,
"양 경리는 지개와 기골이 매우 좋습니다. 일찍이 자부하기를 ‘황상(皇上)의 충신이고 중국의 남자다.’라고 하였습니다. 만 경리는 뇌물을 받고 장수를 임명하니 참으로 탐욕스러운 사람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훈련 도감이 요즈음 해이해졌는데 경이 지금 제조로 있으니, 노력하는 것이 좋겠다."
하니, 덕형이 아뢰기를,
"장관(將官)은 반드시 앞으로 전직(轉職)이 될 계제가 있은 뒤에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의 제도는 좋지가 못하다. 전조(前朝)에서는 수십 만의 병력을 여러번 동원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수만의 병력도 모집할 수가 없으니, 이는 제도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하니, 덕형이 아뢰기를,
"무변(武弁)이 부진한 것은 송(宋)나라의 말기와 같은데, 논의만은 대단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말만 앞세우는 것은 헛된 일이다."
하였다. 덕형이 아뢰기를,
"서울에 오영(五營)을 설치하여 군사를 조련시키면 근본이 강하게 될 것이니, 그러면 한편으로는 변방을 방어하고 한편으로는 수위(守衛)하기에 가장 좋을 것입니다. 전일 무학(武學) 설치 계획이 참으로 좋았었는데 지금은 버려두어 휴지 공사(休紙公事)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지금은 수군만을 다스리고 육군은 잊고 있으니 이는 잘못이다. 그리고 내가 서쪽에 있을 때 보니 성지(城池)가 견고하지 않아 허술한 곳이 많았다."
하였다. 의논을 끝마치고 나갔다.
- 【태백산사고본】 78책 128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119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정론(政論) / 행정(行政) / 군사(軍事) / 외교-명(明)
○上御便殿, 引見李德馨。 上曰; "卿見提督, 其意如何? 請四五千云者, 何意? 銀餉亦幷請乎? 德馨曰: "大人見臣所言, 不過此處人, 厭天兵, 使之速去, 此後請兵至難。 若本折色, 爾國辦出, 則手下兵卽留, 不然則惟有撤去耳。 臣答曰: ‘小民輩, 無有遠慮者, 雖或有之, 今此盡撤, 人皆遑遑, 而以餉銀之故, 不得多請留兵。 今有人得病, 得一器水則生, 不得則死。 其忍惜一器水乎? 大人, 當終始拯救可也。’ 提督曰: ‘前日咨文誤語者以治罪, 而明日奏文, 始可得請矣。" 上曰: "然則何以爲之?" 德馨曰: "自上各別揭帖, 而奏文明日製示如何?" 上曰: "衙門中揭帖, 雖有如此之辭, 難以治罪爲奏矣。 無已則依前請三千可乎?" 德馨曰: "請三千兵可矣。" 上曰: "以米餉倭子之言, 無理極甚。 中原人浮言, 最是長技, 極爲未安。 卿與備邊司他大臣, 相議爲之。 奏文草示之可也。" 上曰: "楊經理, 志槪氣骨最高, 雖難待接, 而此人可以辦事者也。 雖有怒意, 開陳得釋。 天下有事, 必此人當之矣。 若萬經理, 則不能建事之人也。 衙門雖有貪鄙之事, 不無下人之所爲也。" 德馨曰: "楊經理, 志骨甚好。 嘗自許曰: ‘皇上忠臣, 中原男子。’ 萬經理, 以賂任將, 眞貪汚之人也。" 上曰: "訓鍊都監, 近來解弛。 卿今爲提督, 勉力可也。" 德馨曰: "將官, 必有後路遷轉之階, 然後乃可爲之。" 上曰: "我國制度不好。 前朝累用數十萬兵, 今則數萬兵, 不能收集, 此制度之使然也。" 德馨曰: "武弁不競, 如宋之末, 而論議則盛矣。" 上曰: "言論, 虛事矣。" 德馨曰: "京中當立五營操鍊, 則强幹弱(技)〔枝〕 , 一以禦邊, 一以守衛, 最好矣。 前日武學最好, 而今則棄置, 不過休紙公事。" 上曰: "今則但治水兵, 而忘陸兵, 誤矣。 且在西路, 見城池不祥, 無理處多矣。" 罷黜。
〔宣宗昭敬大王實錄卷之第一百二十八〕
- 【태백산사고본】 78책 128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1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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