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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28권, 선조 33년 8월 24일 갑오 1번째기사 1600년 명 만력(萬曆) 28년

대마도에 대한 대책을 논한 행 판중추부사 이덕형의 상차

행 판중추부사 이덕형(李德馨)이 상차하기를,

"삼가 들으니 중국은 군대를 완전히 철수하기로 하고 제장(諸將)들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백성들에게 고통이 되는 것은 중국 군대보다 더 심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 군대가 하루아침에 돌아가게 되면 당장 눈앞의 시원함은 약간 있겠습니다만 훗날 원기(元氣)가 떨어져 다른 증세라도 생기게 된다면 나라에서는 장차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겠습니다. 왜적이 가까운 시일 안에 침범할 생각을 할 것인데 이미 방어할 방법이 없고 임기응변할 계책도 없으면서 어물어물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이렇게 하고서 어느때 태평한 때가 돌아오겠습니까.

삼가 생각하건대, 대마도는 부산과 아주 가까우므로 해가 됨이 아주 절박합니다. 그곳은 땅이 메마르고 생산이 적어서 본디 관시(關市)에 의지하여 생활해왔으므로 하루도 본국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세종조(世宗祖)에 장수를 보내어 정벌했고 그 후에 납관(納款)을 승낙하여 도서(圖書)166) 를 하사하고 올 수 있는 때의 수를 지정하여 오가는 것을 기미(羈縻)하였으므로 변방이 편안한 지가 지금 2백 년에 이르렀으니, 선왕께서 오랑캐를 다스린 계책은 참으로 지극했던 것입니다. 신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우리 나라가 대마도에 대해 마침내 절교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다만 임진 왜란을 일으켰을 때에 본도(本島)가 향도 노릇을 하였으므로 반드시 중국 군대가 많이 모였을 적에 그 죄를 성토하며 위엄을 보여주어야만 거의 징계되어 기미시킬 수가 있을 것이니, 그것이 올바른 처사의 방편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외람되게 생각한 바를 아뢰고 이어 중국 장수에게 게첩을 보냈으며, 때마침 황신(黃愼)이 또 그 내용으로 진소(陳疏)하였으나 조정의 의논이 합치되지 못하고 신중을 기하는 쪽으로 힘쓰다가 마침내 기회를 놓치고 말았으니, 참으로 한탄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년 동안 조정에서 계획을 세운 것은 아직까지도 정한 대책이 없이 갈팡질팡하면서 시일만 소비하고 방비에 대해 말하면 모두들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왜적의 괴수가 이미 죽었으므로 적병이 크게 동원되어 다시 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과 같이 얕은 생각으로서는 언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대마도의 왜적이 수십 척의 배를 동원하여 들락날락하면서 우리를 시험한다면 이는 반드시 강화를 제대로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안위가 결정될 것입니다. 지금 만약 나라가 망하더라도 이 일은 행할 수 없다고 한다면 모르겠습니다마는 혹시 기회가 지난 뒤에 비로소 강화를 강구하거나 적이 움직인 뒤에 우리가 대책을 시행하려고 한다면 조종하고 신축하는 권한이 더욱 저들에게 달려 있어 치욕과 후회스러움이 심할 것입니다. 마땅히 속히 중국 조정에 주문하여 천자의 뜻을 받들어 시행해야 하니 적의 형편과 선왕 때에 백성을 위해 개시(開市)하였던 것과 중국 장수가 사신을 보내어 적을 물리친것과 요즈음 왜적이 여러번 사신을 보내어 강화를 희망한 사정을 하나하나 명백하게 중국 조정에 아뢰는 한편, 수군(水軍) 한 부대를 청하고, 완문(完文)을 작성하여 강화를 승낙하는 명이 중국 조정에서 나오게 하여, 포로로 데려간 사람을 돌려주도록 요구해서 스스로 성의를 보이게 하고 조약을 참작해서 그들의 마음에 맞게 한다면 남쪽 변방의 일은 아마 종결될 것입니다.

요즈음 중국의 처사를 보면 의심스러운 것이 많습니다. 왜노를 정성(正成)이라 하고 요시라(要時羅)를 대장이라고 하여 거짓으로 중국 조정에 알려서 사당에 고하여 포로를 바치게 하였으니, 변방의 실정이 중국 조정에 제대로 전달되는 것을 어찌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참작해서 후회가 없도록 하시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차자에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보았다. 나라를 근심하는 성의를 잘 알겠고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지혜를 매우 가상하게 여긴다. 중국 군대가 다 철수하게 되면 나는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의논해서 조처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8책 128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115면
  • 【분류】
    정론(政論) / 군사(軍事)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무역(貿易)

  • [註 166]
    도서(圖書) : 출입국 증명서.

○甲午/行判中樞府事李德馨箚子:

伏聞天朝, 統撤戍兵, 諸將戒行。 今之爲百姓所苦者, 莫甚於天兵, 而天兵一朝捲回, 其少快於目前則, 有矣, 後日元氣索然, 異症橫發, 則未知國家, 將何以善處耶? 賊之生心侵軼, 在朝夕矣。 旣無備御之方, 又乏權變之謀, 媕婀姑息, 苟度時月。 若此而終(脫)〔稅〕 駕於何地也? 竊念馬島, 密邇釜, 山爲害迫矣。 彼地瘠生薄, 素資于關市, 則一日未嘗忘本國。 世宗朝, 遣將往征, 其後許其納款, 賜圖書定船數, 羈縻往來, 邊境寧謐, 今至二百年, 先王之爲民, 而馭此夷者, 計固至矣。 臣妄意, 國家於對馬島, 終難絶矣。 但壬辰兵起, 本島爲嚮導, 必須天兵盛集, 聲罪示威, 然後庶有所懲, 而羈縻之, 斯得於處事之權矣。 用具冒達所懷, 仍具揭於天將(會)〔前〕 , 黃愼亦有此陳疏, 而廷議不同, 務在持重, 遂致差失事機, 良可歎也。 數年來, 朝家規畫, 尙無定計, 紛紛漫漫, 消費光陰, 言及防備, 俱曰: ‘無可爲矣。’ 賊酋旣死, 大擧再來, 非臣淺慮所(反)〔及〕 , 若馬島, 機駕數十船出沒試我, 則必以乞和之得不得而決矣。 今若謂國亡, 而此事不可行, 則已矣, 倘機過而始講, 或旣動而後, 我反欲行計, 則操縱伸縮, 益出于彼賊, 而羞(悔)〔侮〕 甚矣。 宜亟奏聞天朝, 奉旨乃行, 詳陳此賊形勢, 及先王爲民開市, 天將遣使退賊。 近日賊之累遣使乞和曲折,一一明白, 敷奏天朝, 仍請一枝水兵, 圖完文許和之令, 出於天朝, 或責以刷還被擄人, 自效其誠, 量其條, 約, 以中其心, 則南邊之事, 庶有歸宿矣。 近觀天朝處事, 亦多可疑, 以倭奴爲正成, 以要時羅爲大將, 瞞奏天朝, 告廟獻俘, 則邊上實情之得達朝廷, 安可必乎? 請令廟堂, 速爲酌量, 毋貽後悔, 不勝幸甚。

答箚: "省箚, 具見憂國之誠, 深嘉過人之智。 天兵盡撤, 予不知所以爲計。 當議處。"


  • 【태백산사고본】 78책 128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115면
  • 【분류】
    정론(政論) / 군사(軍事)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무역(貿易)